[284호 커버스토리] 메멘토 0416: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

패닉, 그리고 애통
4월 17일 목요일 아침, 수업을 하러 강단에 오르는데 생전 처음으로 다리가 떨렸다. 호흡도 가쁘고 눈물이 마구 쏟아져 참으로 난감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는 것. 강의 10년 만에 처음 겪는 당혹감이었다.

‘그래, 아직 희망이 있다고 했어. 에어포켓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잖아? 울지 말자. 아이들은 살아 있어, 그럴 거야. 그래야 해. 믿음 없이 울어버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고, 첫날 수습되었던 희생자들 중 박지영 승무원과 정차웅 학생의 의로운 행동을 전하며 힘을 내어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겠어요? 나는…, 얼마나 높이 올랐나, 얼마나 오래 살았나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인생, 그 삶과 죽음의 순간을 되돌아보아 가치 있다, 의미 있다고 생각해주는 인생, 그래서 자꾸 다시 이야기되는 그런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잊지 맙시다. 박지영, 그리고 정차웅이라는 이름을….”

끝내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방송에서는 아직도 희망을 말하고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에어포켓 위치를 설명하고 생존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데도, 그걸 보며 애써 믿으려 했는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 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구역질도 났다. 결국은 저녁 먹은 것도 다 비워냈다. 체한 듯 온몸에 식은땀도 났다. 결국 온 우주의 생명은 서로 맞닿아 있고 교통하는 법인지라, 숨 못 쉬고 죽어간 수백 명 아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나 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평소엔 무디고 바빠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엄마’여서 그랬는지 그렇게 그 아이들과 처절하게 맞닿아 있었다.

엉엉 주저앉아 통곡을 하는 나에게 놀란 남편이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떻게 해요. 죽나 봐요. 저 아이들이 모두 죽나 봐요.”

그 뒤로 일주일쯤은 뜬눈으로 밤을 샌 거 같다. 눈을 감으면 자꾸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면 어느새 나도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꿈을 꾸었다. 부활주일 아침에는 한 여학생이 죽은 듯 구조되었다가 “엄마”하고 눈을 뜨며 손을 뻗어 옷자락을 잡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건만 단 한 명도 더 이상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나만 애통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또래 아이들을 둔 엄마들, 아빠들. 그만한 손자 손녀 하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삼촌, 이모…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대한민국이 통곡했다. 누가 시켜서랄 것도 없이 자원자들이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애도의 촛불을 켰으며,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은 아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안산에, 서울에,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분향소가 설치되고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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