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애통과 분노를 ‘공동기억’으로 승화하기

기사승인 [284호] 2014.06.23  14:25:13

공유
default_news_ad1

- [284호 커버스토리] 메멘토 0416: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

패닉, 그리고 애통
4월 17일 목요일 아침, 수업을 하러 강단에 오르는데 생전 처음으로 다리가 떨렸다. 호흡도 가쁘고 눈물이 마구 쏟아져 참으로 난감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는 것. 강의 10년 만에 처음 겪는 당혹감이었다.

‘그래, 아직 희망이 있다고 했어. 에어포켓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잖아? 울지 말자. 아이들은 살아 있어, 그럴 거야. 그래야 해. 믿음 없이 울어버리면 안 되지!’

마음을 다잡고, 첫날 수습되었던 희생자들 중 박지영 승무원과 정차웅 학생의 의로운 행동을 전하며 힘을 내어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겠어요? 나는…, 얼마나 높이 올랐나, 얼마나 오래 살았나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인생, 그 삶과 죽음의 순간을 되돌아보아 가치 있다, 의미 있다고 생각해주는 인생, 그래서 자꾸 다시 이야기되는 그런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잊지 맙시다. 박지영, 그리고 정차웅이라는 이름을….”

끝내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다고 믿으며 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방송에서는 아직도 희망을 말하고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에어포켓 위치를 설명하고 생존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데도, 그걸 보며 애써 믿으려 했는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 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구역질도 났다. 결국은 저녁 먹은 것도 다 비워냈다. 체한 듯 온몸에 식은땀도 났다. 결국 온 우주의 생명은 서로 맞닿아 있고 교통하는 법인지라, 숨 못 쉬고 죽어간 수백 명 아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나 보다. 내가 이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평소엔 무디고 바빠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엄마’여서 그랬는지 그렇게 그 아이들과 처절하게 맞닿아 있었다.

엉엉 주저앉아 통곡을 하는 나에게 놀란 남편이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떻게 해요. 죽나 봐요. 저 아이들이 모두 죽나 봐요.”

그 뒤로 일주일쯤은 뜬눈으로 밤을 샌 거 같다. 눈을 감으면 자꾸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면 어느새 나도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꿈을 꾸었다. 부활주일 아침에는 한 여학생이 죽은 듯 구조되었다가 “엄마”하고 눈을 뜨며 손을 뻗어 옷자락을 잡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건만 단 한 명도 더 이상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나만 애통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또래 아이들을 둔 엄마들, 아빠들. 그만한 손자 손녀 하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삼촌, 이모…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대한민국이 통곡했다. 누가 시켜서랄 것도 없이 자원자들이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애도의 촛불을 켰으며, 어떤 모습으로든 결국은 아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안산에, 서울에,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분향소가 설치되고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분노의 공적 표현들
그렇게 애통하는 일만으로도 벅찼는데… 이후 사고의 원인이 드러나고 초동구조의 실패 원인이 보도되면서 우리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과적한 분량만큼 평형수를 뺐다고 한다. 아니, 세월호 자체가 이미 노후 선박이라 더 이상 운항하면 안 되는 배였단다. 그걸 ‘이윤’과 ‘효율성’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에서 수명 연장을 해주었단다. 전복되기까지 짧게는 20분, 길게는 2시간까지도 구조 시간이 있었다는데 무슨 연유였는지 통신도, 보도도, 해경의 구조 활동도 다 올스톱이었단다.

그 와중에 선박직 선원 열다섯 명은 재빠르게 빠져나왔다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속옷 바람에 제일 먼저 구조 보트에 오른 이준석 선장은 아마도 세계 해양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이름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거다. 이들이 모두 구조되는 동안 바로 옆 창문에서 꺼내 달라 소리치고 안타까운 몸짓으로 절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함께 보여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컸다.

그뿐인가? 대통령을 위시해서 온갖 장관급 고위관료들이 팽목항을 방문하는 동안 높으신 분들 의전 문제로 구급차 진로를 막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잠수부들의 출발을 지연했단다. 사망자, 생존자 집계 리스트 앞에서 인증샷까지 찍은 인사도 있었다. 현장에서는 전혀 구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보도 따로 현장 따로인 날들이 너무 많았다 한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는데, 어이없고 분하여 가슴을 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실종자 가족들을 향하여 믿을 수 없는 막말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를 또 분노케 했다. 교통사고 연간 사망자 수에 비하며 그리 큰일이 아닌 듯 말했다는 언론인, 국민 정서 ‘미개’하다는 철없는 아들의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정치인 가족,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불국사나 갈 일이지 왜 배는 타서 그 사단이냐 말했다는 목사, 심지어 세월호 침몰이 하나님의 뜻이라니! 아, 총체적 난국이구나! 세월호 사건이 ‘사고’에서 ‘참사’로 확대된 이유가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우리의 의무, 영원히 기억하기
처음 2~3일간 실질적인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들을 하며 심지어 ‘학살’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마땅히 밝혀져야 할 일이다. 하여 주말마다 시민들이 중심이 된 촛불집회가 밤을 밝혔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진실을 원합니다.” 이러한 국민적 분노가 시민적 압력으로 작용하여 세월호 특검, 세월호 특별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제 됐잖아. 뭘 더 어쩌란 말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자, 자, 생업으로 돌아갑시다! 슬슬 이런 소리들이 들려오는 지금, 그러나 나는 지금이야말로 이제 감정적 슬픔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비로소 냉철하게 따져 묻는 작업, 책임질 사람들로 책임지게 하는 작업, 나아가 어이없게 스러진 수백 명의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작업, 그 기억을 통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적 공동기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본다.

고등학교 2학년, 그 예쁜 젊음을 급작스럽게 많이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었다는 데 있다. 도대체 21세기 최첨단 과학문명의 시대에, 망망대해도 아니고 연안에서, 급하게 침몰된 것도 아닌 그리 오랫동안 떠 있던 배에서, 스스로 기어오르고 서로 도와가며 탈출한 승객들 말고, 해경이 재빠르게 구해낸 선박직 선원들 말고, 어떻게 단 한 명도 구해내질 못했단 말인가? 금세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조그만 통통배 수준의 어선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덩치 큰 세월호로 겁도 없이 달려들어 45명 이상을 구해냈다는데, 어쩌자고 훈련받은 인력과 장비를 가진 해경은 그리 망부석처럼 꼼짝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특검이 얼마만큼이나 밝혀낼지 모르겠지만, 이를 감시하고 계속 공론화하는 시민단체의 노력이 필요할 일이다.

그러나 그러고 난 후에, 원인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밝히고, 대가를 다 치르게 한 후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본다. 바로 그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약속했잖나!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기억할게.” 자고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데, 그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 약속을 우리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시민적 공동기억’을 위한 ‘공동 의례’ 행위이다. 국민적 차원의 단일 의례가 가능한지 몰라도, 적어도 교회만큼은 연대하고 연합하여 이 아이들을 기억하고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회악을 잊지 않는 ‘의례’를 만들었으면 한다.

사회학적으로 ‘의례’란 일상과 구별되어 공동체적으로 수행되는 반복 행위이다. 그것이 ‘성스럽다’면 그 의례가 반복을 통해 전달하고 참여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내용이 ‘세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은 생명보다 이윤과 자리를 우선시했던 우리 삶의 방식이 빚어낸 참사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의 소유주가 이름 지었다는 ‘세월(世越)’은 ‘세상을 초월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종교색이 짙은 이름이다. 구원파와 직접 연결된 사람이니 그 이름이 가진 기독교적 색채로 인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그가 초월하고자 했던 세상이 궁금하다. 도대체 기독교신앙을 어찌 이해하면 정작 초월해야 할 것은 움켜쥐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영역에서는 그리 훌쩍 초월할까?

시민적 공동기억을 위한 ‘세월절’을 제안하며
이 마당에 문득 든 생각은 ‘세월절’ 지키기였다. ‘세월절’을 제안하며 유대인의 ‘유월절’이 떠올랐다. 최근 몇몇 목사님들의 ‘망언’처럼 대한민국 전체를 회개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유월절의 어린 양들처럼 세월호 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쓰셨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럴 리 없으신 분이다. 당신이 낳은 생명은 풀 한 포기 참새 한 마리도 아끼시는 분이다. 생명이 스러지는 것을 그 어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시는 ‘창조자’이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찌 그 예쁜 아이들을 제물로 쓰셨겠나! 어림없는 발상이다!!

다만, 내가 ‘세월절’을 제안하며 ‘유월절’을 연결하게 된 까닭은 한 공동체가 함께 경험했던 역사적 사건을 의례화했을 때 갖는 힘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땅도 정치체도 없이 유리방황하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을 나는 ‘유월절’이라는 큰 유대 절기의 반복 의례 덕이라고 본다. 물론 유월절은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는 의례였다.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났던 기쁨과 그 과정 가운데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절기였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애통할 일이었다.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참사였다. 그런 일을 무엇하러 절기를 지켜가며 의례화해야하나?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가 광복절은 지켜도 한일합방이 되었던 날을 ‘국치일’로 절기화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공동체는 그 비참한 사건과 그날의 교훈을 잊었고, 하여 여전히 일본 관료인지 대한민국 관료인지 모를 사람들이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본다. 치욕스런 일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기쁘게 소고 치며 노래를 부를 일이 아니므로, 애통하고 분노하는 방식으로 의례를 만들면 될 일이다. 어찌 즐겁고 기쁜 일만 기억할까?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공동체의 기억,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그날의 애통함을, 분노를 계속 잊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예수께서 굳이 유월절을 택하여 예루살렘행을 감행하셨던 까닭도 공동체적 기억을 상기시키고자 함이 아니셨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성전 중심의 제사장들과 율법에 메인 랍비들을 놀래게 한 일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이 회칠한 무덤아! 외식하는 자들아! 마음이 완악한 것들아! 백주에 권세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맞짱을 뜨며 믿음을 통한 신자 개인의 신적 소통 능력을 3년 내내 공포했던 예수였다. 로마황제에게, 헤롯에게, 거기다 유대성전 지도자들에게 삼중으로 부담을 져야 했던 예루살렘 민중들 다수는 안식일에도 제대로 안식할 상황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본래의 안식일이 가졌던 정신은 다 잃어버리고, 장로들이 만들어놓은 세부조항에 얽매여 다수의 이스라엘 민초들을 ‘안식법을 범한 죄인’이라 정죄하는 그들에게 예수는 ‘너희 눈의 들보나 봐라’ 야무지게 비웃어주신 분이다.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중심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미 밉보일 만큼 밉보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굳이 공동체적 기억의 절기인 ‘유월절’을 택해 죽을 줄 알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인간이 만든 안식‘법’을 내세우며 사람 살리는 일조차 율법을 범했다고 시비를 걸던 완악한 마음을 향해 분노했던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대로 일을 내셨다. 속죄제의를 통해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성전을 온통 시장 바닥 같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탐욕스런 마음을 향해 예수는 행동하는 분노의 영성을 표출하셨다. ‘이런’ 성전이라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져라’ 저주마저 퍼부었다. 그리고 결국은 당시 정황상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십자가를 맞이했다.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니 자유를 얻었던 그 처음의 유월(pass-over) 사건처럼, 그렇게 예수께서는 믿는 이들이 제의종교가 아닌 각자의 믿음으로 ‘아버지’이신 사랑의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선포하시다가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였던’ 탐욕스런 성전 제사장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거다. 유대교는 예수의 핵심 메시지를 거부했고, 오늘의 기독교는 예수께서 스스로 상징이 되시면서까지 가르치고 싶으셨던 ‘유월절의 핵심 메시지’를 오해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해마다 4월 16일이 되면…, 팽목항에서 노란 종이배를 띄우며 예배를 드리든, 서울광장에서 노란 바람개비를 만들어 평화행진을 하든, 아니면 안산에 모여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겹게 부르고 그날 하루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온종일 웃지 않기로 약속하든,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 사건을 참사로 몰아간 원인과 진상을 규명케 하는 시민적 압력의 날로 삼든, 그 형식과 내용은 계속 의논할 문제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라도 ‘세월절’ 의례가 반복된다면 그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메시지! 그것이 전도(顚倒)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기억하는 공동체적 의무!

작지만 나는 제자들과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억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월호 아이들을 영원히 잊지 않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아이 한 아이를 글로 다시 살려내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섣불리 유가족을 찾아뵙는 무례한 폭력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세월호 아이들의 사연 중 유난히 관심이 가는 ‘동생’에게 편지쓰기 형식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책의 출판은 내년 4월 16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마저도 천천히 기도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의논하며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나와 제자들이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했던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세상에 내어놓을 것이다. 기억하기! 그것이 ‘새로움’을 우리의 제도적 삶에 가져올 수 있는 첫 번째 임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망한다. 한국교회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시민적 공동기억’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그것이 우리의 애통함과 분노가 현재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달리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까이 오게 하는 일이라 믿는다.

백소영
이화여대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다. 대학교양강의와 글쓰기, 그리고 대중특강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배우며 삶에 관여하는 구체적인 신학을 하려 노력하며 산다.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사회윤리학 goscon@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책과 함께

1 2 3 4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