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무브먼트 투게더 Ⅱ] 독일 녹색당 베어벨 호엔 의원에게 듣는 ‘에너지’ 이야기

   
▲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 2층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간담회 ⓒ복음과상황 이범진

독일연방의회 환경핵안전위원회 의장인 녹색당 베어벨 호엔(Baerbel Hoehn) 의원이 지난 10월 27일 한국 녹색당을 방문해 초청간담회를 가졌다.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방한한 호엔 의원은 간담회 참가자들에게 독일의 탈핵과 에너지전환정책을 설명했다. 호엔 의원과 참가자들은 이를 어떻게 한반도에 적용할지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이들은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평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 탈핵의 길 들어섰지만
핵폐기물 100만 년 관리 골칫거리
독일의 탈핵운동은 1975년부터 시작됐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던 시기였고, 각자 핵무기를 배치한 상황이었다. 이때 100만 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핵무기 반대와 민간의 원자력 사용을 반대하는 탈핵운동을 전개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사회민주당(사민당)이 탈핵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문제는 보수당들이 원자력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갈등이 거듭되다가 1998년 독일 녹색당이 참여한 연립정부가 구성되었고, 2000년 탈핵정책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보수당도 탈핵정책 노선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탈핵의 길은 결코 정책 결정만으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독일은 이제 바야흐로 탈핵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간 쌓여온 핵폐기물 처리예요. 핵폐기물은 무려 100만 년 동안 관리가 필요한데, 이 일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듭니다. 아직 독일 시민들도 핵폐기물의 위험성에 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해체, 핵폐기물의 처리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태양열 등 재생가능에너지가
정책결정 민주화 불러온다

‘핵폐기물 처리’라는 난제를 해결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호엔 의원의 조언이다. 그는 태양열 에너지를 예로 들며, 생산 비용이 2006년 이래 약 8년 만에 46% 절감되었다고 말했다. 태양열 에너지의 경쟁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00만 년 뒤 후손들까지 핵폐기물 처리를 떠안게 하기보다 지속가능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발전소 생산 비용면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의 두 배에 달한다. 독일은 2014년 기준 재생가능에너지가 26.2%, 원자력이 15.8%이다.

“더 위험하고, 더 비싸고, 군사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가 바로 원자력입니다. 반면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점점 늘린다면, 탈핵에서 더 나아가 화력발전도 줄여 대기 오염도 줄일 수 있겠지요.”

이에 더해 호엔 의원은 ‘에너지 민주화’에 관한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에너지전환정책이 ‘정책결정의 민주화’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에너지전환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에너지 민주화’입니다. 150만 명의 독일 사람들이 에너지를 단순히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생산하고 있어요. ‘에너지 생산을 시민들의 손’에 넘겨준 것이죠. 원자력, 화력은 대부분 대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이들은 정부와 긴밀한 유착관계를 맺어 정부정책에 매우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죠. 그러나 재생가능 에너지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생산합니다. 결국,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생산의 민주화’뿐 아니라, 대기업의 정부정책 영향력 또한 낮추는 ‘정책결정의 민주화’까지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독일 녹색당과 연정을 맺고 있는 사민당은 석탄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석탄 감축 목표와 관련해 기업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사민당은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하는 편과 에너지 대기업들을 지지하는 편으로 갈리기도 했다. 에너지 대기업들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담자로 나선 박진희 동국대 교양학부 교수가 에너지전환정책과 관련하여 더욱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석탄산업 감축은 전기료 상승을 불러올 것입니다. 베를린에도 전기료를 내지 못하는 ‘에너지 푸어’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있나요?”

박 교수의 실제적 질문에 호엔 의원의 구체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독일에서 가정용 에너지 비용이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독일 시민들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좋아해요. 어떤 전력 시설이 들어오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72%가 태양광 전력단지를, 61%가 풍력시설이라고 답했어요. 70~80%의 국민이 우리의 에너지전환정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죠. 반면 에너지 대기업들의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어요. 이런 대기업들의 이윤이 떨어지면서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죠. (에너지 대기업과 유착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이 탈핵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가격을 높게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에 소비자가 내는 비용도 줄어들어야 마땅하지만, 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호엔 의원은 에너지 대기업과 벽을 쌓기보다는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도 저희 주에서 환경농업장관을 했을 때, 에너지 대기업들을 수차례 만났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는 건 중요합니다. 에너지 기업들이 새롭게 투자할 수 있는 다른 분야가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해와 바람이 없을 때 꾸준히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 관리 분야 등에 에너지 대기업의 참여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참여의 여지는 다양합니다.”

에너지전환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첨예한 갈등과 불가피한 희생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밟아나가야 한다.

통일 대비,
북한과 에너지 공유 가능할까?

“북한이 남한보다 에너지 빈곤, 에너지 기본권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요. 북한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핵무기를 선택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유럽과 독일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을 듯합니다.”

대담자로 참석한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의 질문은 간담회의 초점을 한반도로 바꾸어놓았다. 마침 호엔 의원은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막 방한한 터였다.

“이번에 평양과 개성을 모두 방문했는데, 소형 판을 이용한 소규모 태양광 발전이 많았습니다. 개인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사용하는 것 같았어요. 3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에서 150명 규모의 비정부 단체들과 만났었고 북한주재 독일 대사와 이야기를 했는데, 북한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논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이 ‘김 씨 일가’에게 가는 게 아니라 민중에게 가는 거라는 확신이 없어 지원계획을 중단했었습니다.”

이에 이강준 연구원은 에너지와 대북지원을 연관지었다. 남한에서 북한 아이들을 위한 아동병원 등 기반시설을 지어주었는데, 이를 가동할 전기가 공급되지 못해 운영이 안 되는 곳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에너지가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의료, 복지 등의 문제와 직결된 현실이기에 에너지 지원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언을 구했다. 호엔 의원은 남북관계의 상황은 남과 북이 더 잘 알 것이라며 구체적인 발언은 조심하면서도 재생에너지 관련 협력은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농촌 지역을 방문했을 때, 불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전력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나 평양은 3년 전보다 더 좋아 보였어요. 고급 승용차도 많아 보이고. 이것이 김정은의 전략이구나, 생각했죠. 대형 프로젝트는 김정은의 선전사업에 이용될 여지가 큽니다. 각 지역, 농촌의 북한 주민 개개인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럽 내 각국 간의 투자보다 남북은 더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 베어벨 호엔 연방의원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구는 하나,
계속 살아가야 할 인류를 위하여

지금의 한국 녹색당처럼, 독일 녹색당도 처음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경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정책의 소중함을 깨달은 많은 시민이 생겼다. 호엔 의원도 “독일 녹색당에서 국회의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지향과 이념이 옮고 우리 후대를 위해 옳다는 걸 믿었다”며 “지구는 하나이며, 인류는 계속 살아가야만 하며, 그래서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신념과 지향은 옳으며 그 힘으로 투쟁하여 우리 모두와 후손들을 위해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간의 세계전쟁, 지역 간 분쟁, 내전은 대부분 화석연료와 석유 등을 이유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까닭에 재생에너지는 평화를 일구기 위해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누구도 바람(풍력)을 두고 서로 갖겠다고 싸우진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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