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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의 실패, 대한민국의 좌절

기사승인 [306호] 2016.04.22  15: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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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6호 시사프리즘] 보수 정치학자가 보는 2016년 남북관계 진단

2016년은 남북관계 변천사에서 아주 중요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16년은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에서부터 시작되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어져온 남북 화해의 역사를 완전히 1972년 이전으로 돌려버린 해이자, 남북관계를 한국전쟁 이후 최고도의 긴장상태로 되돌려버린 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 퇴행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미사일 기술 확보가 단초가 된 것이지만, 남한의 정책 결정자들(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의 판단 착오와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미국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월 3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_청와대 페이스북)

북한의 핵무장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고 준비에 착수한 것은 1990년대 초라고 봐야 한다. 1980년대 말 소련 등 동구권이 개방정책을 쓰자 미국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조지 워커 부시의 아버지)는 주한 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선언했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였다. 그러다 1992년 들어 한미합동 군사행동이 재개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뒤이어 1994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였다. 미국과 맺은 계약은 믿을 수 없음을 북한은 앞서 확인했으리라.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파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전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의 중재로 위기는 봉합되었고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문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은 뿌리 깊은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보 불안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 나라다. 그들에게 미국은 세계 역사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이며 한국전쟁을 통해 북한 땅을 초토화했던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수로를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북한이 완전히 신뢰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설사 경수로를 지어주었다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핵무장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는 북한의 기본 방향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많은 공산 정권의 붕괴를 지켜본 미국은 북한 정권 또한 곧 붕괴되리라고 예측하였고, 그래서 경수로를 지어준다는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복귀했던 NPT와 IAEA를 2003년에 완전히 탈퇴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 미국과 남한의 직·간접 공세로부터 체제를 지킬 자신감이 약해지고,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오자 핵무장만이 체제를 지킬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경제적인 길이라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정책적 기조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1998년에 대통령직에 올라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은 핵무기를 갖출 능력도 의도도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한은 햇볕정책으로 인해 핵무장을 잠시 늦추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핵국가인 미국을 주적으로 인식하는 한 핵무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렇다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의지를 다소 완화시켰고 핵무장의 속도를 다소 둔화시켰을 것으로 본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쏟은 돈이 핵무기 개발에 도움을 줬을 거라는 주장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핵무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면 다른 곳으로 들어갈 돈을 절약해서라도 핵무장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의 진보 정권이 추진해오던 햇볕정책은 조지 워커 부시의 대북 강경책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북한은 오랜 계획대로 핵무장에 성공하였다.

특별히 북한은 미국이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이라크가 대량살살무기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갖지 못했기에 침략을 당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핵무기를 포기했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하루속히 핵무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2005년 북한은 ‘핵무장’을 발표하고 김정은 정권은 헌법까지 개정하여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선언했고 핵을 포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제 북한은 국제적으로 핵국가로 인정받고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다른 핵국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것은 주권 국가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핵을 가졌다면 왜 북한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되느냐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실패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는 데 실패했다. 아무리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북한을 핵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남한과 미국의 정책 실패를 살펴보려면 1970년 초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보좌관의 데탕트 외교정책에서부터 살펴야 한다. 키신저는 국제정치가 제시하는 게임의 법칙에 동의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안정성을 해치는 가장 큰 문제라고 확신하여 한국전쟁 후 국제정치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던 중국을 국제 질서에 편입하는 작업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그와 더불어 한반도에서도 남북의 긴장완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여 남북 대화의 추진을 권장했다. 북한은 이러한 제의를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7·4남북공동선언에 서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바라던 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잠재력을 경시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때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서방 제국과 국교를 맺고 미국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제도적 장치를 구축했다면 북한은 오늘날 훨씬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북한은 1974년 박정희의 유신정권이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하자 박정희 정권과의 대화를 단절해버리고 만다.

그 후 북한을 연착륙시킬 기회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소련 및 동구가 개방되고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 때였다. 북한은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 외교정책을 긍정적으로 이해했고 남북의 교류가 열리는 것 같았다. 1991년 북한의 총리 연형묵과 남한의 총리 정원식이 맺은 남북의정서 합의사항만이라도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북한은 핵무장의 길로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1993년 미국은 빌 클린턴 정부 하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재개했고, 이에 북한은 배신감을 느껴 핵 위기가 발생했으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이다. 그 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의 2인자인 조명록이 백악관을 방문하는 화해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아마도 이때가 미국이 북한을 비핵화로 유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미국의 새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고 어떠한 대화나 원조도 중지했고 거기에 한국의 보수 정권들도 협조했다. 결국,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했지만 부시는 물론 그를 이은 진보 성향의 대통령 오바마까지도 ‘전략적 인내’ 정책이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 역시 흡수통일만을 꿈꾸며 북한의 화해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은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이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의 핵 능력만 증강시킬 것이라고 꾸준히 경고했지만, 미국과 한국은 귀담아듣지 않고 아무런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2005년에 핵무장을 선언한 북한은 2016년 수소폭탄 개발 선언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발표했다. 이제 북한은 미국 서부에까지 핵폭탄을 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수 있는 무력을 지닌 ‘강대국’이 된 것이다. 미국이 적잖이 당황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판단 착오 그리고 안일한 대처가 가져온 결과이다. 

미국의 딜레마
전 세계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미국의 힘든 경제 상황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어마어마한 군비 지출이 주요 원인이다.  그래서 미국은 군사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절대적 필요가 있고 이 군사비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또 하나의 변수는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의 위치를 점하여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라는 인식이 미국 내에 팽배하다. 아시아에서 패권 유지를 위한 군사비 지출의 압박을 받는 미국은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 전가하려고 한다. 자국 보호와 관련하여, 쇠퇴하는 미국의 힘만을 믿을 수 없는 일본은 자체 방어만이 유일한 길임을 자각하고 있다.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여 출현한 것이 바로 아베 극우정권이라 할 수 있다. 아베는 미국 대신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사명을 담당하고 그 대가로 유엔상임위 상임이사국 자리 등을 차지하여 국제적인 강국으로의 지위 격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과 일본 두 나라는 자기들의 연합전선에 당연히 한국이 종속적인 파트너로서 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 공조가 자신들이 그리는 태평양의 국제 지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미국은 ‘일본의 도움 없이는 한국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면서 한일 군사공조를 압박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상하는 중국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본과 해결해야 할 과거사 문제들도 중차대하지만, 그보다 한국의 방어를 일본에 의지한다면 결국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나라에 우리의 영토를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꼴이 된다. 이것은 민족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영토 보존 문제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미·일 연합전선에 가담하여 중국과의 냉전을 복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냉전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운다 해도 미국은 과거에 소련과 대결하던 모습으로 중국과 대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무역불균형이 있고 상당액의 미국 채권과 달러를 중국이 소유하고 있으며, 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고 있다. 무역적자를 메울 수 없는 미국은 달러를 거의 무한정 발행하여 국제경제를 어지럽게 만들고 중국과 같은 채권국에 대한 채무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 중국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다는 게 미국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니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치도 한계가 명확하다. 그 한계성을 미국도 중국도 서로 잘 알고 있다.

미·중의 극한 대치를 피해야 하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두 나라 간 경제적 밀착 관계가 아니어도, 중국은 아직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주도적 역할을 계속해주기를 바란다. 중국은 아직 중동이나 유럽 혹은 아프리카에서 미국과 겨루어 가면서 패권을 다툴 수 있는 국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이 자체 판단이다. 그래서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들여놓으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맞설지언정 극한까지는 밀어부칠 수는 없는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좌절
2016년의 북한 수소폭탄과 미사일 발사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일본이나 한국은 이미 오래전 북한 포사격의 사정권 안에 있었고 북한이 마음먹고 군사 공격을 한다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익히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능력의 향상을 심리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내성을 지녔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남한정부도 구경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범위도 좁고, 또 모든 가능한 조치의 실효성이 없는데다, 무엇보다 국익을 생각하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정책이어서 딱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니까 맨 처음으로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을 재개했다. 이 대북 심리전은 북한이 질색을 하고 특히 김정은을 비난하거나 체제 붕괴를 자극하는 데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수소폭탄에 대한 대응책이 확성기를 통한 대북 선전 방송이라니 누가 보더라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미 김정은은 그 대응책으로 남한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방 방송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공조해 대북 경제 제재를 포함한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서 통과시키려고 했는데, 그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미온적인 태도라는 암초를 만났다. 박 대통령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중국은 남한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중국의 비협조에 분노한 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사드 협정 추진을 명령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극도로 냉각되었다. 
한반도 지형적 특성상 사드가 남한에 효과적인 방어체계가 아니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사드 협상 진행에 대해 중국은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라는 식의 모욕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미·중 외상회의에서 미국은 사드 배치를 포기·연기할 수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안보리 북한제재안에 합의했다. 사드 배치 유보 기류는 당장에라도 들여올 것 같았던 한국 정부의 장담을 머쓱하게 했다. 정작 한국 땅에 배치될 무기의 설치 여부나 설치 연기 여부를 상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철저히 소외된 것이다. 이는 한국이 국제질서에서 처한 위치와 한미관계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라는 명분으로 개성공단의 폐쇄를 지시했는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결국 개성 인근이 북한의 군사기지가 된다면 안보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성급한 결정들은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부메랑이 되어 남한에 손해를 끼치는 정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그 핵 위협을 무력으로 중지할 힘과 의지가 없는 한 나머지 수단은 효과가 없기 마련이다. 북한이 애초부터 핵무장으로 가지 않게끔 유도하는 정치적 외교적 정책과 방안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던 결과다.

북한이 핵무장을 1990년대부터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면, 북한은 핵을 가질 의도도 능력도 없으리라고 믿었던 진보 진영의 환상과 북한이 곧 붕괴되거나 압박하면 핵무기를 포기하리라고 생각했던 부시·오바마 행정부의 무사안일주의와 그에 동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나태함과 오판이 한몫을 했음이 틀림없다. 물론 이 모든 사태는 핵국가인 미국을 주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입장과 동북아 정세를 주관하는 미국의 정책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남한의 ‘위치’가 구조적으로 만든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딱하기 짝이 없다.

남한은 결국 미국에 의존하여 미군의 각종 무기를 동원하여 합동 군사작전을 펴서 북한에 힘 자랑 하는 정책을 펴고 한국의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런데 원래 힘 자랑은 진짜 공격할 때 취하는 정책이 아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군의 대대적인 북한 공습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고 북한도 알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이 한국 정부에게는 국익에 반대되는 최강경책을 쓰게 해 놓고 정작 자신들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한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중국이 중재자로서 역할을 한다. 시진핑의 중국은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이 중국의 계속적인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원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미국이 이 문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작년부터 북한과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자 대화해왔으며, 이 대화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평화협정 체결이 남한에 해가 되느냐 아니냐는 다시 따질 문제지만, 남한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배제한 채 북한과 미국이 직접 협상을 한다는 것은 남한 정부로서는 커다란 모욕이고 좌절이다. 실상 북한은 이미 핵을 가진 처지이고 보면, 북한의 핵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주는 일뿐이다.  

미국-북한 협상 과정에 미국이 반응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핵 실력을 늘리고 계속 압박을 가하겠다는 북한의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유엔 등의 제재로 약간의 경제적 곤란을 겪겠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핵국가로 인정받고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으리라고 전망된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북한의 지구력이 상당한 수준이기에 가능한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주한 미군의 철수 문제가 자연스레 언급될 것이며, 계속 주둔할 명분도 없는 미국으로서는 무엇보다 자국 국방비를 줄여야 하는 필요와 맞물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 한국은 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한반도에서 세력 균형의 붕괴와 한국 국민들이 만날 심리적 공황상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주권을 제대로 소유하지 못한 남한의 미래이다.

냉전의 극복과 주권의 확립
1990년 소련의 몰락으로 세계의 냉전은 종식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첫 희생물로 국토가 분단되었고 한국전쟁의 비극까지 겪은 한민족으로는 이 냉전의 종식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화해의 시대에 한반도에서만 냉전이 다시 복원되어 미국과 북한 그리고 북한과 한국이 극심한 긴장을 만들어 가면서 군비경쟁을 한다면 민족에게는 재앙이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도와가며 평화와 번영의 파트너로 일하더라도 국가 발전은 쉽지 않은 시대인데 우리만이 동족 간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군비경쟁을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민족적 재앙이다. 그리고 이 냉전의 운명을 결정하는 교섭이나 담판에서 대한민국은 거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냉전의 구도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 그리고 정부 당국자들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친미 보수주의자들이 인식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첫째, 미국의 이익이 늘 대한민국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고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 입장을 명백히 밝히려면 대한민국이 외교주권과 군사주권을 공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시군사작전권은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는 것이 좋고 조만간 미군 철수가 거론되더라도 지레 공포심을 갖지 말고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이에 더해 북한이 곧 붕괴되리라는 근거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 북한을 현실체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치할 때는 대치하되 협상할 때는 협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북한되 협대치가 가져오는 위험되 비용은 남한과 북한의 번영에 절대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군사적 외교적 역량을 증강하지 않으면 자주외교로 미국을 상대해온 북한과의 대결에서 밀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은, 첫째, 미국이나 남한이 북한을 쉽게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남한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은 아주 뿌리 깊으며 진보적인 정부의 일시적인 어떤 정책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북한이 미국을 신뢰하리라는 기대도 환상에 불과하다. 설사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해도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둘째, 무장력은 무장력에 의해서만 견제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무장력의 균형이 없이는 남한은 북한과 제대로 된 협상조차 할 수 없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울 수 있다는 각오와 준비를 해야 평화다운 평화와 공동체의 존엄함을 지켜낼 수 있다. 셋째, 통일 문제에 진보적 민간단체가 나서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북한은 민간인이 없는 전체주의적 동원 조직 사회이다. 그래서 남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통일운동을 할 때도 늘 정부와 보조를 맞추어야 함을 명백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남남갈등이 극복되지 않으면 북한과의 관계에서 북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권 담당자와 실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설사 북한이 핵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화 창구는 열어 놓아야 하며, 한반도에서 냉전을 피하는 길은 남북화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떻게 핵무기를 포기시킬 것인가 하는 비현실적인 문제를 의논하기 전에 어떻게 화해를 이룰 것인가를 미국, 중국과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래서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같은 성급한 조처를 막을 안전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북한과 군사적 세력균형을 이룰까, 방도를 고민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국이 대한민국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쉽사리 친미 일변도의 정책으로 나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국이 펼치려는 한·미·일 연합의 종속 파트너가 된다면 한국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북한이 각축하는 한반도에서 스스로 위치를 지켜가면서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길은 자주국방과 자주외교의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에 서는 일이다. 자주 주권을 바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문규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 아이다호주립대학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다. 오랫동안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가르쳐 왔고 지금은 학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한의 현대 정치를 논한 《뜻으로 본 한국정치》가 있으며, 최근엔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박문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날대학 학장, 정치학 박사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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