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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 될까, 십자가를 질까

기사승인 [307호] 2016.05.23  1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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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7호 독서선집] 한국전쟁과 기독교 / 윤정란 지음 / 한울 펴냄

   
 

토지개혁으로 공산당에게 땅을 빼앗기고 학교와 집을 포기한 채 월남한 서북지역 출신의 기독인들에게 소련 군정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세력은 666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던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 황제처럼 잔혹한 용이었다.

왜 아니었겠는가. 서북 출신이 아니더라도 한국전쟁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산당은 끔찍한 사탄처럼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6·25 때 우리 아버지에게도 공산군은 끔찍한 공포였다. 큰아버지는 당시 경찰이셔서 정부를 따라 부산에 계셨고, 아버지께서 할머니와 고모를 데리고 피난을 다니셨다고 했다. 당시 14살이던 아버지는 인민군이 지나간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나름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며 집으로 오셨는데 며칠 뒤에 인민군이 다시 돌아왔단다. 군경 가족은 발각되면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는 땅에 파묻어 놓은 항아리에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숨어 계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땅속 항아리 안에서 보낸 시간은 가늘고 위태했으리라. 할아버지는 전쟁 중 총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인민군의 총이었는지 국군의 총이었는지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박정희의 쿠데타 직후에 경찰이 되신 우리 아버지에게도 6·25전쟁을 일으킨 공산당은 사탄 마귀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산당만 그랬던가? 국경을 넘어온 인민군도 악하지만, 국경을 내준 국군도 악하다. 국경을 지키는 군대의 약함은 곧 악함이다. 전쟁 중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다. 평시엔 약한 것도 선할 수 있지만, 전쟁 중 약한 것은 악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지키겠다는 방송을 내보내고는 소리 없이 한강을 건넌 직후 다리를 폭파해 피난길을 끊어버리고,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수만 명을 굶어 죽게 하고,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방기했던 이승만 장로의 약함은 곧 악함이었다. 누가 사탄인가? 내 편이면 사람이고, 네 편이면 사탄인가? 전쟁은 모든 사람을 사탄으로 일그러뜨린다.

마녀 감별법과 ‘거룩한’ 전쟁
1368년 유럽에선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라는 마녀 감별법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다. 1600년까지 28판이 발행되었고, 이 책에 소개된 마녀 감별법에 따라 200여 년 동안 최소 20만 명의 마녀가 처형됐다. ‘마녀의 망치’에 소개된 마녀 감별법 중 하나다.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여자는 마녀다.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마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교회에 안 나가는 마녀와 교회에 잘 나가는 마녀를 어떻게 구별했을까. 구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마녀인지 아닌지 감별 ‘대상’이 된 여자는 마녀여야 했을 테니까. 전쟁 중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죽여도 되는 사탄이어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사탄, 마귀, 악마, 마녀라 불리는 그들은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도 사탄과 직면하신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십자가를 지며 수난을 당할 것에 대해 베드로가 정색을 하며 반대하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 불렀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곤, 예수와 베드로는 함께 길을 갔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실 때 뭔가 연기 같은 게 피유웅하며 베드로에게서 빠져나가지도 않았고, 서로 칼을 빼 들지도 않았다.

사탄, 마귀, 악마는 결국 사람이다. 가까이 만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사탄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도록 유혹하거나, 하나님의 길을 막아서거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박해하는 개인이나 세력을 사탄, 마귀, 악마라 부른다. 사탄은 사람 중에 있다. 사탄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유령처럼 벽과 벽 사이를 통과하거나 공중을 떠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벽 앞에 좌절하고 땅에 발을 딛고 선 보통 사람의 인격 중에 불쑥 솟아난다. 그래서다. 사탄이라고 해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는 사탄을 죽여도 되는 사람으로 여겼다. 유럽에선 주로 돈 많은 과부들을 마녀로 몰아 죽였고, 한국교회는 공산당원과 좌익분자를 사탄으로 규정해 처형했다. 한경직 목사는 제주도에서 있었던 4·3사건에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한 서북 출신의 기독청년들이 개입했음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 《한국전쟁과 기독교》, 224쪽 (김병희 편저, 《한경직 목사》, 55~56쪽 재인용)

 “《영락교회 50년사》의 자료 수집 위원이던 영락교회 교인… 김성보는 당시 영락교회의 청년들이 서북청년회를 주도했기 때문에 영락교회가 사무실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했다는 서북청년회는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을 사탄이라 여기고 죽였을까. 4·3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최소 1만 명이다. 당시 좌익 계열의 무장대는 최대 500명이었다고 하는데, 9천5백 명 중 몇 명이 좌익이었을까? 좌익이면 죽여도 되는 것일까. 현기영은 소설 〈순이 삼촌〉에서 사람 머리통만치나 크게 자란 고구마를 묘사한다. 고구마밭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제주도에서 활동했던 교회 청년들도 그 고구마를 먹었을까.

   
 
   
 

교회 청년들은 고구마가 사람 머리통만큼 커지도록, 사람의 피가 밭에서 ‘젖과 꿀’이 되어 흐를 때까지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마귀’들이기 때문에 ‘전멸’ 시키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낙 자손을 진멸했던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을 진멸하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죽거나 죽이거나
4·3사건과 6·25전쟁은 시기적으로 겹친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황해도 신천에서 기독교인들이 봉기한다. 황석영의 《손님》에 등장하는 ‘류요한’이라는 기독교 청년의 기도에서 당시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자유의 십자군덜이 저이 믿음으 형제덜을 해방하려고 지척에 왔으나 사탄으 군대넌 아직도 저이럴 위협하고 있습네다. 저이 가운데 미가엘 천사장이 임하사 여호수아랑 다윗에 내려주셨던 지헤와 용기럴 내레주옵소서.
- 황석영, 《손님》 중에서

후퇴하던 인민군들이 신천의 기독교인들을 죽였고, 인민군이 빠져나간 후엔 미군과 기독교인들이 인민군 치하에 있었던 주민들을 죽였다. “북한쪽 주장에 따르면 미군이 신천을 점령한 52일 동안 3만5천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었다고 한다. ‘여호수아랑 다윗에 내려주셨던 지혜와 용기’로, 기독교인은 사탄의 군대와 아울러 이웃 주민들까지 죽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두려움 때문일까, ‘여호수아랑 다윗에 내려주셨던 지혜와 용기’ 덕분일까.

5년쯤 전인가. 어떤 원로 목사님에게 좌파 목사란 말을 들은 적 있다. 직접 들은 말은 아니고, 목사님들 모인 자리에서 나에 대해 ‘좌파’라고 말씀하셨단다. 내가 좌파 목사라는 의혹을 받은 게 2012년이 아니고, 1950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식은땀이 난다. 1950년에 제주도에 혹은 황해도 신천에 있었다면, 나는 좌파여서 기독교인들을 죽였을까, 사탄이라는 죄목으로 기독청년한테 죽었을까. 내 편은 하나님의 군대이고 네 편은 사탄의 군대라는 틀 속에선 죽임과 죽음 사이에 틈이 없다. 죽이거나 죽어야 한다.

예수께선 죽임과 죽음 사이에서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께서 우리 현대사에 오신다면 십자군이 되어 공산당을 죽였을까, 아니면 공산당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까. 단언컨대 예수께선 십자군이 되어 악한 사람들을 죽이신 게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십자군이 되어 죄인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죄인을 위해 죽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탄 베드로를 위해 아침밥을 준비하셨다.(요21:12) 예수께선 사탄에게 총을 쏘지 않고, 밥을 쏜다. 사탄은, 그리고 사람은 총이 아니라 밥에 순종한다. 총 말고, 밥들 쏘시라. 

 

김영준
감리교회 예배당을 빌려 예배드리는 장로교 목사.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예배드린다.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 발기인이며 발달장애인들과 자조모임을 꾸렸다. 그림과 소설과 역사를 좋아해서 김포지역에서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강좌를 열었고,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김영준 민들레교회 목사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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