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사람과 상황]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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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기본통계자료에 따르면, 고교 졸업자의 올해 대학진학률은 69.8%로 2010년부터 하락추세지만 여전히 70%에 육박한다. 대졸자 취업률은 2014년 기준 58.6%였다. 대학 진학률과 대졸자 취업률의 간극, 즉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직장은커녕 실업과 그로 인한 학자금 빚 문제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년 11월 셋째 주가 다가오는 때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관한 수험생 건강관리 비법 같은 수능 단골 뉴스가 반복되는데, 수험생들의 ‘공부 잘하는 약’ 오용의 심각성은 올해도 심화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DHD 치료를 위한 약물인 메칠페니데이트계 약물 처방 건수가 최근 5년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인 반면 대입 수험생 나이에 해당하는 만 18세 연령에서는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64% 증가. 만 16세는 19%, 만 17세는 37% 증가). 그리고 익히 알고 있듯, 수능 날에는 수험생 자살 소식이 저녁 단골 뉴스로 보도되곤 한다. 연말엔 수험 스트레스를 소비로 해소하라는 듯 수험생 할인 마케팅이 연례행사로 쏟아진다. 1월이면 다시 공·사교육이 ‘차별 없이’ 입시체제에 돌입한다.

지난 10월초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문아영 평화프로젝트 모모 대표 역시 “대학만 가면 돼” “(그러니) 너희들은 공부만 해”라는 반복 세뇌를 들으며 수험생 시절을 지났다. 그때를 “행복하지 않았던 교육의 경험”이라고 했다. 물론 대학만 가면 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진학 후에도 나쁜 교육과 선생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미해결된 질문들은 그를 방황하게 했다. 그러나 방황의 시간을 거쳐 그는 다시 교육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시험) 공부’ 이외의 교육이라는 시간이 도무지 허락되지 않는, 입시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교육의 상황에서 ‘모모’가 펴나가는 ‘평화 교육’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학생시절의 “행복하지 않았던 교육 경험”이 모모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떤 경험인지 궁금하다.
초·중학교 시절 내리 반장을 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날라리 친구들과 담임 사이를 중재하면서 보람을 느끼곤 했고, 문학을 좋아했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소위 공부 잘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모아서 재경쟁을 시키니 그 안에서 자기 존재를 다시 확증해야 했다. 이전까지의 나는 모두 사라지고, 첫 시험 성적으로 내 존재감이 결정 나는 구조. 그 안에서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반에서 40등을 한 적이 있는데 내 뒤 두 명은 펜싱부 학생이었다. 사실상 꼴찌를 한 셈이었다. 담임선생이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중학교까지 성적을 봤을 거고, 왜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는지를 걱정하며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담임이 딱 한 번, 나를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그저 “네 IQ가 네 등수보다 높다”였다. 그리고 끝이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 말고 누구에게 인정 욕구를 부릴 수 있을까. 내가 관심 열외 학생임을 확실히 안 이후로는 고2 때 학교 보충수업이랑 자율학습을 ‘째고’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고 포켓볼을 치러 갔던 기억이 거의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 그런데, 교육학을 전공했다.
교원대에서 독일어 교육, 초등교육을 전공했다. 선택한 건 아니다. 원래는 정치외교 쪽이 궁금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다. 대학 때도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몰라서 고민이었다. 독일어나 공부해서 한국을 뜨려고 독일어 교육과에 갔다. 당시 교대 입시가 최고점을 찍은 때였는데 취업난이 심했던 때라 주위 사람들이 보험처럼 초등교육을 복수전공 하라기에 그렇게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부를 도대체 왜 하는지, 교사가 왜 되려고 하는지, 왜 가르쳐야 하는지, 결국 우리가 배우는 것의 본질에 대한, ‘왜’를 묻는 질문이 완전히 삭제된 채 모두가 시험 준비만 거듭 하고 있는 게 끔찍했다. 돈벌이로 교사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지나친 도덕적 순결성을 전제한 건지 모르지만 당시엔 그 고민이 컸다. 임용고사는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돌고 돌아 교육으로 되돌아오긴 했다. 모모를 시작하면서 예비교사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다. 선생은 무엇인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분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겠다.

― 평화를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의미의 ‘모모’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가장 이상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다. 거기서 너무 많은 한계를 봤다. 그 이상인 곳은 없을 텐데, 차라리 더 나이 들기 전에 내가 지금 시작하기로 했다. 난 ‘가르치는’ 것이 너무 싫고 ‘가르치는’ 사람도 정말 되기 싫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경험한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 “너희들은 공부만 해” “대학만 가면 돼”와 같은 무책임한 말들을 내뱉는 선생들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가르치지 않는(서로에게 배우는) 사람들을 양성하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싶어 ‘모두가 모두에게 배운다’의 앞 글자들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모모의 취지를 적어 초대하는 편지를 세 명에게 보냈다. 그중 두 분에게서 화답이 왔고 창립 멤버가 되었다. 스카이프 영상 통화로 창립 발기를 하고 귀국해서 준비모임을 했다.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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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청어람ARMC 청년사역콘퍼런스에 발제자로 참여했다. 당시 발제문 제목이 “시간을 되찾아 오는 평화교육”이었는데, 시간과 평화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계속 평화와 교육의 문제를 고민해 오면서 한국사회가 폭력적인 사회가 되는 주요한 원인을 ‘시간 없음’의 문제로 보았다. 모모를 구상할 때 독일에 있었는데, 거기선 내가 더 많은 것들을 하면서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시간을 많이 누리고 있더라. 독일은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어 있는 사회니까. 그러나 한국처럼 (특히 IMF 이후로는) 극한의 자본주의 사회, 1%가 모든 걸 갖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머지 99%는 생존을 위해 몸과 시간을 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 없음’이 당연한 사회가 되면 사람과 사람, 서로가 돌보고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들을 그냥 덮고 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 문제는 곪아서 더 큰 갈등이 되고, 혼자 힘들어하는 누군가는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극도로 시간 없는 한국사회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되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평화교육을 하고 싶었다. 어릴 때 읽으며 자란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주인공 모모는 사람들의 ‘빼앗긴 시간’을 찾아오려고 시간이 저축된 은행 금고를 턴다. 나도 모모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시간을 찾아주는 교육으로 평화를 만드는 방향을 찾았을 때,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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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시간을 되찾아주고 싶은가.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 책에 “들길 같은 시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들길은 한 방향이 아니다. 헤매면서 다니는 길이고, 헤아려 보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허용되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되고, 서로 고유한 존재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어지는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직선의 시간만을 허용한다. 영화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경련하는 노동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안도 없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하고 반응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현 상황에서 전환의 가능성을 같이 찾자고 이야기하는 거다. 어떤 공간에서 문화가 발생하려면 할머니 세대가 잉여의 시간에서 아이들과 노닥거리던 것과 같은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데, 지금대로라면 문화는 곧 소멸하겠구나 싶다. 어떤 면에서는 종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천천히 오면 1%의 사람들만 편하게 살다가 편하게 죽을 거 같아서.

― 모모의 교육 철학을 ‘P.E.A.C.E 페다고지’라고 했다. 간단히 소개한다면?
다섯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 모모 프로젝트의 방법론이자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참여적(Participatory), 대화적(Exchange), 문화예술적(Artistic-cultural), 비판 창조적(Creative-Critical), 그리고 낯설게 하기(Estranging)다. 영어 앞 글자를 땄다. 비판적 페다고지 개념은 특히 브라질의 파울로 프레리가 민중교육을 하면서 정립한 개념이다. 이 교육 개념에서는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인 문해(文解)교육을 할 때 이야긴데, 알파벳을 아무리 가르쳐도 못 외우는 벽돌공에게 벽돌 단어부터 가르치기 시작하니까 실마리가 풀리더란다. 결국 교육은 참여자의 삶의 맥락과 닿아 있는 참가자 중심의 교육이어야 하는 거였다. 여기서 교사는 가르치는 위치가 아니라 참여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관계 맺는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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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프로그램에서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어떤 건지 궁금하다.
누구든 모모로 찾아오면 ‘환대’하는 것, 환대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한테 “버튼 누르면 작동하듯 환대하는 거 아니냐” 묻는 분들도 있는데, 누가 오면 정말 반가워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뭐라고 찾아왔을까’ 싶어 고마워하게 된다. 워낙 많이 찾아오면서 계속 환대를 하는 상황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 존재를 묵상할 시간이 부족해지니까. 그래도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환대라는 건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공간의 분위기, 톤을 중요시한다. 조명 색깔, 식물의 배치를 염두에 두고 계속 고민한다. 프로그램 내용 못잖게 중요하다.

또한 참여자의 선택권이 많은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명찰을 만들 때도, 획일적이지 않고 원하는 색깔을 고르도록 하는 것 같은. 이건 모모의 대훈 씨 아이디어였다. 시작부터 참가자들이 선택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서. 처음엔 귀찮아서 저항했지만, 원하는 색깔의 용지에 원하는 닉네임을 적도록 해보니까 정말 반응이 달랐다. 그래서 나도 ‘아하’ 하고 배웠다. 작은 것이라도 선택의 기회를 계속 보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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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은 수업이 있나?
용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수업이다. 담임이 나쁜 사람이었다. 수업 전부터 반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도 아무런 안내나 정보도 보내 주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서야 그 반에 심각한 왕따 학생 한 명이 있다는 걸 알았다. 수업에서 원으로 앉으려고 하는데 원이 만들어지지 않는 과정에서 알아차렸다. 원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은 왕따인 걸 두세 번씩 계속 각인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겪는 도전이었다. “준비해 온 프로그램을 할 수 없다”면서 그때만은 “이 반은 너무 잘못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원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어떤 사람도 그 이하의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며, 그 상황을 묵인하는 여러분도 폭력의 가담자라고 설명했다. 왕따 학생을 지목할 수 없었다. 대신 UN 세계인권선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주고받으니 한 학생이 “알겠으니 이제 활동 좀 하자” 하더라. 첫 활동이 짝 활동인데, 학생 수가 홀수였다. ‘할 수 있을까’ 난감해하고 있는데 짝 활동을 셋이 하면 안 되느냐고 아이들이 도리어 제안해 왔다. 아이들에게 또 한 번 배우는 순간이었다. 몸으로 만나는 시간, 왕따였던 친구도 웃으며 함께 활동했다. 그 친구가 수업이 끝날 때 우리 연락처를 요청하더라. 선생님들이 가고 나면 친구들이 똑같을 수 있다면서. 그 반에서 증오하는 건 담임이다. 왕따를 방조하여 조장하는 사람. 선생의 역할이라는 게 맡은 학생들의 권리가 훼손되고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면 개입해서 바로잡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담임을 선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시대는 아이들 못잖게 선생님들도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 같다.

― “요즘 아이들 무섭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들의 악함은 예전과 비슷하다. 다만 노골성이 짙어졌다. 그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우리 사회 자체가 너무 ‘노골적’이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들을 까발리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들이 아파트 동, 평수에 따라서 아이들을 줄 세우지 않나. 다 드러나고 노골화되지 않으면 시원해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안전거리, 숨 쉴 수 있는 거리를 상실한 거 같다. IMF 이후로 내 살길, 우리 가족 살길을 찾는 것이 정당한 발로로 나타난 게 이기심 같은데, 이런 게 진짜 망한(!) 거 아닌가.

― 그런 상황에서 평화를 찾는다는 건 어떤 작업인가?
평화를 ‘순백색의 무엇’이라 생각하면 허상이다. 편안하고 따뜻하기만 한 ‘쉼’도 아니다. 아플 수도, 힘들 수도 있다. 평화학에서는 평화를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로 나눈다. 내가 평화롭고 주변이 평화로운 상태여서 내가 안전함을 느끼는 건 소극적 평화다. 평화 없는 타인에게 평화가 오게 하는 것이 적극적 평화다. ‘나는 평화로운데 왜 저 사람은 평화롭지 않을까’ 고민하다 보면 구조의 폭력을 발견하게 되고, 구조를 개선하려고 뭐라도 하는 게 적극적 평화인 것이다. 또한 평화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는 과정이 결과이기도 하다. 평화는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의미가 있고, 결과도 이미 그 안에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여성적인 부분이 있다. 오지 않아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 평화다.

   
▲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세계교육포럼에서 ‘돌직구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백순근 한국교육개발원장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발표 이후 발언권도 없이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적극적 평화의 한 예로 보였다.
당시 행사의 발표 내용도 포럼의 구성도 가관이었다. 90분 내내 자랑거리를 늘어놓기만 하는 자리였고, 중년 남성들만 가득했다. 염재호 총장은 그 자리에서, 청년들이 결혼도 출산도 원치 않는다면서 한국은 교육열이 높아서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대학을 보낸다고 말하더라. 한국의 청년들, 부모들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학자금 대출로 죽어 나가는 청년들이 생각나서 화가 났다. 질문 시간에도 나 포함해서 남자 둘, 딱 세 명만 손을 들었을 뿐이었는데 남자에게만 질문권이 돌아가더라. 순간 젠더 불균형이 눈에 들어와 기지를 발휘한 거 같다. 여자도 목소리를 내게 해달라고 발언했다. 마이크가 꺼졌지만 소리를 더 크게 내서 말을 했다. 플로어 참가자들이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면서 주변으로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인권 감수성의 핵심은 ‘배제된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것 아닌가? 수천수만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 날 그렇게 만든 거 같다. 다음 날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점심을 못 먹었다. 기사가 막 뜨고, 경찰들이 계속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대더라. SNS 댓글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 그날의 어려움 외에도, 5년차 평화교육단체 대표로 우여곡절이 많았을 거 같다.
늘 위기가 찾아온다. 지금도 위기다. 정기적으로 재정 위기가 찾아올 때면 그때가 항상 최대 위기다. 후원 회원을 적극적으로 모집하진 않았어서 주로 상근자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번 돈으로 운영을 한다. 모모 시작할 때 사실 평화로 돈을 벌겠다는 포부였는데, 이상하게 늘 돈이 없다!(웃음)

― 고민이 많겠다.
요즘은 교육을 바꾸는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수단일 수밖에 없으니까. 사회가 변하지 않고는 교육의 변화도 더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평화의 문제가 삶으로 스며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내년에 야심찬 계획을 구상 중이다.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사회에서 이질적이고 배제되고 불편해하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모여드는 공간.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살롱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일에 필요한 돈은 아직 없다!(웃음)

   
▲ 모모의 상근 활동가들. (왼쪽부터 박은경, 김주원, 문아영, 전세현) ⓒ복음과상황 이범진

― 평화가 오게 하는 교육의 길에서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을 가장 바꾸고 싶은가?
입시제도! 그걸 풀면 다른 많은 문제의 해결 고리가 보일 거 같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도 지금의 사교육이 아닌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재벌이 없어져야 한다. 재벌이 존속되는 한 계급사회가 지속될 텐데 세계인권선언이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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