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호 커버스토리]

우리는 이 땅에 국가가 건설된 이후,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미지와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일 지역에서 오랫동안 같은 생업에 종사하며 비슷한 삶을 반복했던 산업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나 노인의 기억에서 큰 도움을 얻지 못한 채,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새날을 살아야 하는, 그야말로 ‘유동사회’ ‘유동시대’다. 그 불안과 혼란의 중심에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믿을 만한 지도(map)나 참고서도 없이 새 세상에서 생존하고 개척해야 한다. 여기에 ‘기독’청년으로 사는 것은 추가된 난제(難題)다. 설상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청년들에게 또 한번 옛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채우는 것은 아닐까?’ ‘역사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시대착오(anachronism)를 스스로 범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고 두렵다. 그럼에도, 급변하는 현실에서 역사가의 사명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를 되살려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거와 현재의 불연속 선상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지적하고, 급변하는 인류의 독특성과 다양성 안에서 보편성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하에, 예수를 제대로 따르기 위해 분투했던 기독청년 몇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수의 부름에 순종한 본회퍼
히틀러 시대에 독일에서 활동한 본회퍼는 글뿐 아니라, 삶으로 소명을 가장 분명하게 제시했던 기독청년이다. 그의 글에 집중하면서, 두 명의 한국 기독청년, 이용도와 전태일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 사람은 타락한 교회를 향한, 다른 사람은 부패한 노동현장을 향한 예수의 부르심에 삶으로 응답했던 예수의 제자들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평생에 높은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 그래서 늘 가난했고 병약했으며 오래 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예수를 제대로 따랐고, 예수를 많이 닮았던 사람들이다. 살았던 시대와 모양은 우리와 다르지만, 공유해야 할 소명의 본질은 오늘이라고 다를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 주목하려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소명은 예수를 따르는 것, 즉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라”(마 4:19). 이 명령에 순종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 그뿐 아니라 예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최후의 명령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였다. 이처럼 예수의 부르심, 즉 소명(calling)은 제자도(discipleship)와 직접 연결되었다. 오스 기니스의 말처럼, “소명은 제자도의 대가를 수반한다. 가장 큰 도전은 자아를 버리고, 자신을 고난 받고 배척당한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이다.”1 본회퍼도 말했다. “제자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제자도 반드시 존재한다.”2

그러므로 소명은 초청이 아니라 명령이며, 성취가 아니라 은혜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예수의 부름은 절대적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오직 ‘순종’뿐이다. 본회퍼에 따르면, 이 부름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유일한 통로다. “예수의 부름에 순종하는 길을 떠나서 신앙에 이르는 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3 동시에, 예수를 따르라는 이 명령은 “값비싼 은혜”다. 그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멍에를 지우기 때문”이며, 그것이 은혜인 이유는 “예수가 ‘나의 멍에는 부드럽고 나의 짐은 가볍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자가 되어야 하며, 제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소명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명령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명령에 등을 돌렸다. 오스 기니스의 표현처럼, “지배하기 좋아하고 이해타산이 빠른 이 시대에 세상적인 이상형은 항상 남을 주관하는 것”이다.4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자리는 오히려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 세상에 의해 바보 취급받는 자리, 곧 십자가의 자리다.

끝으로, 소명은 삶에서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의 부름을 받는 것,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자리는 바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시공간이다. 중세에는 제자의 삶이 일상과 분리되어 수도원이나 성직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고기잡이 배 위에서 주의 부름을 받았다. 안전한 미국에서 공부하던 본회퍼는 위기에 처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 전해 준 위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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