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민주주의 / 티머시 미첼 지음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옮김 / 생각비행 펴냄 / 30,000원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두고 정치권의 공세가 이어진다. 어쨌든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도 바야흐로 ‘에너지 민주주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향후에도 시민들을 배제한 에너지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다시 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 석탄과 석유의 관점에서 더 근원적으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책이 나와, 책은 중동의 세계의 화약고가 된 근원적인 이유를 짚는다. 석탄과 석유라는 ‘탄소 연료’가 ‘민주주의 정치’와 어떤 역학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다루면서(탄소 연료는 대중정치의 출현을 가능케 했으나 뚜렷한 한계도 있었다),  흔히 ‘석유의 저주’라 불리는 중동의 민주주의 부재 문제를 석유의 역사를 통해 상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소위 ‘오일 머니’(석유가 정부 재정과 사적 재산으로 변환된 뒤 축적되는 소득)만 논하며 해당 정부에 국한해 문제시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설명은 석유를 채굴하고 정제하고 운송하고 소비하는 방식, 농축된 에너지원인 석유가 갖는 권력, 석유를 부와 권력으로 변환하는 기구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면서 문제의 핵심에 더 다가선다. 단지 석유로부터 얻는 소득과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오일 머니’를 넘어 더 근본적인 원인, 곧 석유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과정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송유관 건설, 정유소 위치, 로열티 협상 등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부터 물음표를 던지고, 이를 중동 지역에서 펼쳐진 서구 강대국 패권 경쟁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석유의 정치적 관계’로 읽어낸다. “석유 자체를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스펙터클과 폭력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석유 정치의 외견상 이질적인 또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다른 특징들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머잖은 석유 연료의 고갈과 세계의 민주주의 한계 앞에서 읽는 마지막 문장이 경종을 울린다. “보다 민주적인 미래의 가능성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에 대응할 정치적 수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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