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호 무브먼트 투게더]

1.
2011년 어느 날,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에서 함께 공부하는 홍석준 형제가 아주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면서 연락이 왔다. 이 책을 인성모 지체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면 좋겠다면서.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베리타스포럼 이야기》(IVP)라고 한다. 처음 듣는 책이었고, 여성 저자인 켈리 먼로 컬버그 역시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영어 원제인 “Finding God beyond Harvard”(하버드 대학 너머에서 하나님 발견하기)와 이를 근거로 붙인 한글 부제가 흥미를 돋우었다. “하버드를 넘어 미국 사회를 뒤흔든 기독 지성 운동.” 1년 반을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했어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인성모에서 토론 과제로 이 책을 제시하자 다른 동료가 관련 책을 소개해주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라는 책으로, 실제 베리타스 포럼의 강연 중 몇 건을 묶은 것이다. 강연자는 존 스토트, 톰 라이트, 달라스 윌라드, 오스 기니스, 티모시 켈러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저명하고 신뢰할 만한 이들이었다. 10여 명이 명동에 마련한 연구공간 ‘공명’(당시 인성모·청어람·카이로스가 함께 자금을 모아 한 지붕 세 집단으로 운영했던 공간 이름)에 모여 두 권을 읽고 토론을 벌였다.

1992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목이었던 켈리 먼로가 불을 붙인 베리타스 포럼이 하버드를 시작으로 미 전역의 주요 대학을 돌면서 삶과 학문의 모든 영역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련성 속에서 토론하는 이야기에 나를 비롯해 토론에 참여한 모두는 큰 매력을 느꼈다. 아울러 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난 감동했지만 다시 분주한 일상에 묻혀 오랜 시간 ‘베리타스’를 잊고 지냈다.

   
▲ '베리타스 포럼' 설립자 켈리 컬버그 (이미지: veritas.org)

2.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7년 3월, 재직 중인 고려대에서 흥미로운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기독교 시각에서 해설해주는 강연이었는데, 초청 강연자는 하버드 대학 교목 레베카 킴 전도사였다. 2시간이 넘도록 영화를 틀어 놓고 끊임없이 설명해주는 레베카 교목의 강연을 듣고 났는데, 갑자기 오랫동안 잊고 있던 ‘베리타스’라는 이름의 포럼이 떠올랐다. 하버드 교목이라면 분명 베리타스 포럼에 대한 뒷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강연 후 인사를 나누고 추후 미팅을 부탁했고, 다음 주 서울역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혹시 베리타스 포럼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요?”

순진한 내 질문에 파안대소하던 레베카 교목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대화를 통해 레베카 교목은 켈리 먼로 교목을 영적으로 후원하며 베리타스 포럼의 한국 상륙을 오랫동안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혹시 베리타스 포럼을 알고 있냐는 나의 진지한 질문에 폭소를 참지 못하셨던 것이다. 레베카 교목은 무엇보다 2007년 결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온 젊은 기독인 인문학자들의 ‘인성모’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곧이어 우리의 대화는 베리타스 포럼을 어떻게 한국에 도입할 것인가로 진전되었고, 3개월 후 베리타스 포럼의 아시아디렉터 다니엘 초(Daniel Cho) 하버드 교목과 함께 고려대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1시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난 단지 베리타스 포럼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는데, 그 포럼의 개최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슬쩍 두려움이 생겼지만, 주님의 섭리에 순종한다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3.
3개월이 지난 작년 6월 7일, 레베카 교목은 다니엘 디렉터와 함께 내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대의 기독인들이 베리타스 포럼의 첫 한국 개최를 주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해주신 고려대 기독교수회 회장 권정혜 교수님과 서울대 언어학과의 남승호 교수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난 여전히 주저했을지 모른다. 과중한 논문 저술, 학과·학회 업무와 강의, 학생면담 등 사범대 교수로서 할 일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 생활 10년차에 접어들면서 ‘신임’ 딱지는 떼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업무가 과중해진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상황이 아닐 것이었다. 따라서 결단을 위해서는 산적한 부담을 능가하는 ‘끌림’이나 더 강력한 주체의 ‘강권’이 필요했다.

공식적인 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전에 점검할 것이 적지 않았다. 선택이란 곧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혀 계획에 없던 베리타스 포럼을 선택하게 되면 계획하던 몇 가지를 포기하거나 연기해야 했다. 마침내 그해 8월에 베리타스 포럼 본부가 위치한 미국 보스턴을 방문하기까지는 인성모 공동체의 중보기도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특히 중국 미술사를 전공하는 김원경 선생님의 격려가 크게 작용했다.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를 함께 읽었던 김 선생님은 6년 전 그날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이 모임을 잊지 않고 계시던 김 선생님은 기도 중에 내게 ‘평안하게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이 메시지는 내게 묵직한 울림으로 들렸다.

4.
집에 와서 6년 전 인성모에서 함께 읽었던 《베리타스 포럼 이야기》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때 읽으며 감동이 되었던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베리타스 포럼은 전 세계 주요 대학에 출현하는 단합된 증거 공동체, 즐겨 환대하는 공동체, 명석하며 창조적이며 은혜와 진리를 구현하는 공동체를 격려하는 모델이다.”(259쪽) 그리고 그 옆 공백에 6년 전 써 놓았던 메모를 보며 소름이 돋았다.

베리타스와 인성모의 연합을 꿈꾸다!

그랬나보다. 그때 이미 ‘주제넘게’ 한국의 작은 기독인문학자 모임이 베리타스 포럼으로부터 환영받고, 진리를 매개로 연합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잠시 꾸었나보다. 그러고 보니 켈리 먼로가 고백했던 구절은 인성모 공동체를 통해 추구했던 바와도 공명했다.

“베리타스는 종교가 아닌 삶을 다룬다.”

“베리타스는 진리이며 그 본질은 사랑과 환대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대체로 토론이 아닌 탐구다.”(261쪽)

인성모의 모토는 “신앙과 학문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 통전적인(holistic) 고백으로서의 학문 활동을 추구”하는 데 있었고, 모임의 형식 역시 관념적 토론에 치우치지 않도록 말씀 나눔과 기도 고백을 토론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5.
언제부터일까? 대학에서 ‘진리’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비학문적이거나 부끄러운 상황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네 대학의 교훈은 ‘진리’를 내세운다. 고려대의 교훈은 “자유, 정의, 진리”이고, 연세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이다. 소위 ‘SKY’ 대학의 공통된 교훈이 바로 진리, 즉 ‘베리타스’다.

하지만 막상 오늘날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학원이 되어 버리고, 언론이 조장하는 대학 서열화에 줄을 서고, 교육부가 재정 지원의 칼로 들이대는 평가에 줏대 없이 목을 매고 있다. 자본을 향한 경쟁과 서열화 속에 대학은 본래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학원이나 기업체와 별다른 차이를 주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학문적 탁월함을 추구해야 하는 대학의 동인(動因)이 진리 추구가 아니라 자본 추구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허무하고 파괴적인 탁월성이 횡행한다. 교수들이 모여서 이러한 현실을 한탄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자성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있고, 현실을 뚫고 나갈 지적 역동성과 영적 방향성을 잃어버린 듯하다. 나 역시 10년 전 교수가 처음 될 때 다졌던 초심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현실에 익숙해져 버리는 순간을 종종 맞이한다. 놀람과 포기, 발분(發憤)과 타협을 반복하며 말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경제성장과 다양한 사상의 혼재 속에서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으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하고 혼돈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통전적인 사상(思想)의 심각한 부재다. 정신적 빈곤과 혼돈의 시대를 돌파할 ‘그 무언가(something)’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임계점(tipping point)에 근접했다.

6.
바로 이런 시기에 ‘베리타스’가 내 안으로 훅 들어왔다. 지난 10월 9일 <Letter of Acknowledgement of Korea University>가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베리타스 포럼이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왔고, 2018년 5월에 있을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인생의 우선순위가 상당히 바뀌었다. 연구실 옆 건물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임대하고, 5월까지 동역할 실무자 두 분(조미원·박효은 박사)을 모셨다. 고려대 교수 가운데 일곱 분의 실행위원을 세우고, 강연자 섭외와 재원 마련을 위한 만남이 작년 12월까지 강행군처럼 이어졌다. 그동안 스쳐지나가듯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학생, 선교단체 간사들과 학생, 동료 기독인 교수님, 그리고 여러 교회의 목사님이 ‘연합을 이루는 동역자’로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늘 즐겁지만은 않은 변화였다. 대강 넘어갈 수 있는 관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늘어만 가는데 어느새 다음 강의를 준비해야 했고, 써야 할 글들의 마감일이 다가와 있었다. 마음의 부담이 생길 때마다 다시금 베리타스 포럼의 정신을 되새김질하기 시작했다.

 

▲ '베리타스 포럼' 로고 (이미지: veritas.org)

“진리가 무엇이냐?”

사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인지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빌라도가 발끈하면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요 18:38) 빌라도의 질문에 정확히 답변하지 않고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를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라며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는 예수님의 발언에 대한 즉각적이면서도 솔직한 반응이었다. 진리에 속한 자라면,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는 삶이라면 마구 흔드는 세상에 대해서 크게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베리타스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역사 자료를 읽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익혔고, 방대한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날카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 동료 연구자들과의 토론을 즐겨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성실과 열정 가운데 직면하는 여러 감정, 선택, 노력이 과연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동안 대학에 와서 공부한 역사가 진리 탐구와 관련이 있었던가? 그동안 다양한 학생들 앞에서 목이 쉬도록 강의했던 수많은 내용이 학생들이 진리를 찾는 데 어떤 기여를 했던가? 배움과 가르침을 내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였으나, 그 많은 배움과 가르침의 순간 속에 진리가 얼마나 결여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 열심과 분투 속에 나와 우리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로의 연결됨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7.
베리타스 포럼이 나와 우리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로 연결되는 가교(bridge)가 되기를 소망한다. 첫 단추는 이미 끼워졌다. 날짜는 2018년 5월 23~24일, 장소는 고려대학교. 첫날 강연자로 미국의 오스 기니스 박사님이, 둘째날 공동 강연자로 한국의 강영안 교수님과 우종학 교수님이 확정되었다. 두 강연의 잠정적인 주제는 각각 “진리를 버린 시대, 세속대학에서 진리 추구가 가능한가?”와 “공허(nothing)의 시대, 과학자와 철학자가 나누는 ‘그 무언가(something)’ 이야기”이다.

1월부터 4월까지는 매달 1차례씩 학생 서포터즈 모임에서 강연자의 책을 읽고 미리 공부하는 모임을 개방적으로 운영한다. 포럼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작은 공부 소모임으로 이어지는 마중물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장소는 고려대 교우회관 404B호에 마련된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사무국’(Tel. 070-7754-7999)이고, 참여를 희망하는 분들은 대표 이메일(veritasforumku@hanmail.net)로 문의하면 된다. 베리타스 포럼의 공식 홈페이지(www.veritas.org)에는 서구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주제의 강연 자료가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조만간 한국 관련 배너가 마련되어 고려대 포럼을 소개하고 모두를 초대할 것이다.

첫 포럼은 고려대에서 시작하지만 지향점과 대상은 고려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첫 포럼이 하버드대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지의 130여개 대학으로 확산되었듯, 한국 고려대에서 시작한 포럼은 2018년 가을 서울대 포럼이 예정되어 있고, 향후 전국의 주요 대학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우선 각 대학에서 신앙과 학문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학문 영역에서 애쓰는 기독인 교수님들의 관심과 동역을 소망한다. 여러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각종 연구 모임에서 공부하는 후속세대와의 창의적인 연계 방식도 기대가 된다.

시작은 작고 미약하지만, 2018년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시작되는 베리타스 포럼이 한국의 주요 대학으로 확산되고 대학사회의 관성을 깨뜨리는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게 주어진 일은 허풍스럽지 않게 고려대 베리타스 포럼의 내실을 알차게 다지는 것이다. 한 명의 학부생, 한 명의 대학원생, 한 명의 교수라도 이번 고려대 포럼을 통해 ‘베리타스’를 자신의 전 인격과 연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안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진짜 이야기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 같이 작고 미약한 한 사람을 통해 베리타스 포럼이 한국에 시작되었지만, 이제부터 전개될 진짜 이야기는 대학사회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낭중지추(囊中之錐)적 사상가를 양성하는 요람이 될 것이다. 이제 곧 한국에도 C. S. 루이스와 같은 기독 사상가와 변증가가 출현하여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된 명저를 우리말로 자유롭게 읽고 토론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조영헌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와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지냈으며,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독인문학자 모임인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인성모) 대표이며,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대표로도 섬기고 있다. 쓴 책으로는 《대운하와 중국 상인》 《도시 속의 역사》 《해양과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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