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호 커버스토리]

▲ 세계적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성범죄와 권력남용 및 이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응을 연구한 조사 보고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한국어판

2017년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뜨겁게 기념했다. 교단을 막론하고 관련 행사를 열고, 특집 기사를 다루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간 이스라엘을 성지로 규정하고 순례를 떠난 여행객들은 그 행선지를 이스라엘에서 바울의 전도 여행지로 넓혀 왔다. 그러다가 2017년에는 독일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순례 행보를 더 넓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획하는 팀들과 교회들은 2017년이 바쁠 것이라 여기고 미리 다녀오기도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2017년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낸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교회에 별다른 개혁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뿐 아니라 어떤 종교든지 저마다 추구하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교회의 규모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르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후대의 많은 이들에게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감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지 못한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후대에는 기억조차 못하거나 아예 부패한 종교로 기억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사람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분을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란 그 무엇보다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시 85:10)와 같은 인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기리고 드높이는 행위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능을 상당히 많이 잃었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사회적 기능으로 작동하기보다는 마음의 평화, 수련, 개인의 성공을 빌어주는 기복신앙, 개인 구원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짐 월리스를 비롯하여 공공의 신학을 외치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복음은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사적이지는 않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통전성과 일관성을 잃은 이러한 사적인 복음은 공공의 신학은커녕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기능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회가 사회적 기능 혹은 사회적 구원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모습과 더불어 그렇게 강조해왔던 개인적인 차원에서조차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내면의 갈등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깨뜨리는 큰 해악을 낳고 있다. 이러한 예들 중에 대표적인 갈등의 모습이 과소비, 게임중독,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포르노중독, 마약, 자살, 가정폭력이며,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는 고스란히 강남역 화장실 살인, 송파 세 모녀 자살, 부산 여중생 집단폭력, 층간소음, 주차장 갈등 등의 사회적 갈등 이슈로 얼굴로 바꿔가며 곳곳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들 중에 교회가 제대로 다루지 않는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리더에 의한 성범죄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의 이해와 예방’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실제로 현 한국교회는 교회 내의 이념갈등, 종북 논리, 종교의 다원성과 연관된 이슬람 논쟁, 동성애 논쟁, 교회 세습 및 종교인과세 문제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이슈들을 잔뜩 안고 있다. 복음은 성격상 세상과 분리될지언정 내부적으로는 갈라지지 않고 나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나 많은 이슈로 갈라져 있다.

교회 내에 여러 가지 이슈들 중에도 이 글이 목회자의 성추행 및 성범죄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Too) 운동이 우리의 페이스북과 여러 SNS에도 수없이 오르내렸건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운동에 공감을 하면서도 직접 참여한 사람은 많지 않다. 2006년에 타라나 벌키(Tarana Burke)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젊은 여성 특히 저소득층의 유색인종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생존자들이 치유의 과정을 걸어가도록 돕기 위해 시작되었다. “공감”을 통해 서로 능력을 부여하고 연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실제로 성폭력의 치유 과정에 있는 생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 의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북미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지난 40-50년간, 특히 2013년 이후로 성추행 관련 이슈로 모진 내홍과 외환을 동시에 겪었다. 한국에서 겪는 양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성추행의 핵심은 인간의 죄, 욕망, 폭력, 권위의 남용, 교회의 실패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존 하워드 요더의 사례를 통해 교회 내 권력 남용과 성추행 및 성폭행의 실상을 살펴보고, 메노나이트 교회가 보여준 반응을 통해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1.갈등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 2.교회 내 갈등 문제로 작용하는 목사를 비롯한 교회 리더의 성폭행 현실 3.존 하워드 요더의 사례 4.이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 5.예방책을 포함한 대책 및 한국교회에 적용하기의 순서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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