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호 3인 3책] 웅크린 말들 / 이문영, 김홍구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2017

새로 산 패딩에 달린 모자의 털이 풍성하고 두툼해, 그걸 쓰면 좌우가 보이지 않는다. 애써 상체까지 움직이기는 귀찮아 몸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앞의 풍경만 보며 걷는다. 모자를 쓰고 손을 깊숙한 주머니에 넣고 앞만 보며 잰걸음으로 걸으면 꽤 편리한 면도 있다. 전단을 나눠주는 손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해 서명해달라는 청년 활동가들의 요청을 소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휴~ 좀 받아주지.”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날, 신촌역 8번 출구 앞 횡단보도 근처에서 전단을 돌리던 중년 여성의 음성이 귀에 꽂혔다. 나를 포함하여 앞만 보며 질주하던 ‘검은 눈사람’들에게 전단 돌리기를 번번이 실패한 그 입에서 입김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그러게 말이다. 그 전단을 받으면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그제야 웅크린 몸을 펴서 전후좌우 풍경을 본다.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 포장마차 상인,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회사 직원, ‘얼음’ 상태로 앉아 있는 노점상 등, 한파는 세상을 얼려도 삶은 지속된다. 애써 보지 않으면 몰랐을 ‘말해지지 않는 말’들이 그제야 살아나 내게 말을 건다.

이문영 〈한겨레〉 기자가 쓴 르포 《웅크린 말들》은 이 땅에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그동안 발화되지 않은 가혹한 현실, 그 현실을 살아내는(혹은 죽어버린)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채집한 ‘한(恨)국어 사전’이다. 저자는 서문에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한(韓)국어가 언어의 표준임을 자임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언어는 한(恨)국어가 한(韓)국이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 끼지 못한 사람은 한(恨)국에 산다”고 밝히며 ‘한(恨)국어’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렇게 도착한 언어는 ‘한(韓)국어’에 익숙한 나에게 낯설다. 그의 사전은 같은 한국어지만, 다른 한국어기도 하다. “최저인생”이나 “계급 피라미드의 밑변”을 살면서 “말해지지 않는 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언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막장보다 못한 젠장” 인생을 살다가 사라진 강원도 사북 폐광촌 사람들을 비롯하여 ‘농노리아’ ‘강도날드’ ‘등골빼네’ 등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청년 알바생들, 호출을 받아야 일할 수 있는 ‘호출형’ 노동자들, 동료의 추락사 이후 자신을 ‘계란’이라 부르며 목숨 걸고 일하는 수리기사들, ‘고독생’을 살다가 ‘고독사’한 사람들, ‘최저보다 아래’ 인생을 사는 외국인노동자들, 섬에 유배된 한센인들, 존재가 죄가 된 성 소수자들의 언어가 촘촘하게 담겼다. 구로공단 미싱사에서 버스 안내양이 되고, 공장 아줌마나 식당 아줌마에서 청소 할머니가 되는 ‘순덕’의 일생은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여성의 비극이기도 하다. 폐광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세월호로 이어진다. 무너지고 침몰하는 세계의 ‘밑변’에 웅크린 채 소외된 언어가 그렇게 연결되어 나에게 훅 들어온다.

이 책은 독하고 집요하다. 그렇기에 종종 책 읽기를 멈추고,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저자 조세희의 표현대로 “숨이 콱콱 막히는 세계에” 던져진 것 같다. 이런 책을 소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분명 독자도 먹먹하고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럼에도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에는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으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며 “정의(定義)되지 못한 존재들을 정의하는 것이 정의(正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웅크린 말들’ 곁에 나와 당신의 말들이 놓이길.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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