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3인 3책] 애도하는 사람 / 아라타 지음 / 권남희 옮김 / 네 펴냄 / 2010년

며칠 사이 봄꽃이 예고 없이 찾아온 반가운 손님처럼 피었다. 해마다 피었다 지는데 때마다 새삼스러워 꽃이 피어 있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부지런히 꽃구경하러 다니곤 한다. 그러다 때가 되어 꽃이 지면 한없이 서운하다. 꽃이 질 때면 항상 초록을 마중하는 비가 내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비에 속절없이 떨어져 세상과 영영 이별하는 꽃잎에 애가 탄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꽃을 배웅하다가 감기에 걸려 버린다. 개도 안 걸린다는 그 오뉴월 감기를 앓고 나면 꽃은 어느새 사라지고 초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꽃이지는 것도 그리 아픈데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일은 얼마나, 얼마나 아플까. 해마다 봄을 보내며 생각한다.

어느 때부터 봄은 나에게 꽃의 계절이 아니라 애도의 계절이 되었다. 제주4·3사건, 4·16세월호 참사,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미처 알지도 못해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 하나님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그 많은 꽃 같은 생명을 거두셨을까. 남겨진 나는 질문하고, 질문한다.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꽃이 머물던 자리를 기억하듯 그들의 ‘삶’을 기억하려 노력할 뿐이다.

여기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덴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가쓰키 시즈토. 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부고 기사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건 사고 소식을 참고하여 전국을 떠돌며 그들을 ‘애도’하는 사람이다. 방식은 단순하다. 죽은 그(녀)가 살았던 곳으로 가서 주변 사람에게 ‘그는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그는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물어보고 누구라도 그 질문에 대답한다면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내렸다가 가슴 앞에서 포갠 뒤 고개를 숙이는’ 의식을 치른다. 그의 행동은 ‘상식’이라는 잣대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도대체 왜 이런 ‘기행’을 시작했을까? 소설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다만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종만을 쫓아다니던 자기 인생을 부끄러워하다가 시즈토에게 흥미를 느끼는 ‘기레기’ 마키노, 아들이 여행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기 암 환자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남편을 살해한 죄로 복역한 후 출소하여 우연히 만난 시즈토를 따라다니는 유키요. 저마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로 살거나,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워졌거나, 사랑했지만 더는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즈토와 관계 맺으며 차츰 변하며 성숙해 간다.

시즈토의 애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세상을 알지 못한 채 떠난 아이도,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과 이별한 사람도, 심지어 죄를 지은 사람도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애도의 대상이 된다. 시즈토에게 애도란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들려주신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고, 제가 살아있는 한 기억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소명이다.

꽃이 다시 흙으로 돌아간 후에야 우리는 안다. 저 예쁜 꽃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어 있는 동안 얼마나 우리를 기쁘게 했는지, 그리고 다시 만날 때까지 얼마나 그리울는지. 죽음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한 ‘애도하는 봄’을 맞이하고서야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힘껏 사랑하고, 애써 애도하는 소명을 가진 존재라는 걸.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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