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해외 이슈]

파이퍼의 ‘보완주의’는 무엇인가?
얼마 전에 미국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 존 파이퍼 목사가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 <Ask Pastor John>에서 ‘성적 학대와 평등주의 신화’(Sex‐Abuse Allegations and the Egalitarian Myth)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서 그는 남녀 평등주의자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성폭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파이퍼를 포함한 미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성관념을 ‘보완주의’(complementarianism)라 부른다. 보완주의는 성경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역할과 목적을 부여받은 존재라고 보는 관점이다. 즉 남녀는 태초부터 근원적으로 다르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남자는 리더십을 부여받은 존재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고, 여자는 남성의 ‘보호’를 받는 역할에 맞게 사는 것이 옳다고 하는 전통적 성관념이다. 파이퍼는 개인의 실력, 성향, 역량, 적성과 무관하게 각자에게 주어진 성역할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가정, 사회, 교회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존재는 남성이어야 하며, 여성은 남성의 가부장적인 ‘보호’와 ‘책임’ 아래에 있어야 하므로 남성의 권위를 따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이퍼가 “여성은 신학교 교수직을 맡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성관념 때문이며, 과거에 “여성도 경찰관이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는 직업은 남성성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고 대답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파이퍼의 성차별적인 관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발언은 성폭력에 대한 그의 해석이다. 파이퍼는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성폭력이 급증했다는 근거 없는 이론을 주장한다.

우선 “평등주의가 여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파이퍼의 주장을 분석해보면, 그가 말하는 “보호”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보완주의가 주장하는 ‘보호’라는 말에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피보호 존재로 취급하는 관점이 담겨 있다. 즉 ‘보호’는 남성이 자기 소유권을 행사하여 물건에 손상이 가지 않게 잘 지키고 관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성을 이와 같이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 혹은 소유물로 보는 관점은 전통 가부장제 사회가 만든 관점이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의 주체성과 존엄한 인격을 존중함을 뜻하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관점은 여성의 혼전순결에 대한 보호를 우선시한다. 이러한 보완주의는 여성의 혼전순결과 정조에 절대적 가치를 둔다. 보완주의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의 권위 아래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존엄한 인격이 존중받을 권리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결혼하기 이전에 순결을 잃으면 여성으로서 부여받은 본래의 가치를 잃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파이퍼가 말하는 ‘보호’가 과연 개인의 존엄한 인권을 짓밟는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둘째, 보완주의가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며, 약자가 아니라 강자이다. 여성을 동일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늘 사회적 약자로 만들고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은 남성의 책임이라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보완주의는 남성지배적인 권력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보완주의 성관념은 남성에게도 해롭다. 개인의 역량과 관계없이 지도자의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가르침이 남성들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는 면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여성을 오직 남성을 위한 ‘보완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자란 남성들이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이해할까. 이와 같이 남성지배적인 문화를 습득하고 자란 남성들은 여성을 자기결정권이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존재, 독립된 인격을 가진 주체로 보지 못하게 되며, 남성지배적인 문화가 가진 문제점에 무감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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