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 3책] 헝거 / 록산 게이 지음 /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펴냄 / 2018년

별로 갈 일이 없는 압구정역을 갔을 때다. 역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각종 성형외과 광고들이 달려들었다. 마치 그곳을 거치면 더 나은 사람으로 재탄생할 것처럼,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처럼 광고판 속 그녀들은 ‘샤방하게’ 웃고 있었다. 성형외과 광고판 옆에는 각종 다이어트 관련 광고들이 세트메뉴처럼 따라붙었다. 그 시술을 받기만 하면, 저 제품을 먹기만 하면, 퇴근 후 운동만 하면 나는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가 부끄러운 건가? 무엇이 나를 부끄럽게 하는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날씬한 적이 없었다. 별명도 ‘꽃돼지’ ‘너구리(오동통하다고)’ 등 주로 통통한 외모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살을 뺐을 때는 “이제 여자가 되었구나”라고 칭찬(?)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여자가 아니었던 건가? 곰곰 생각해보면, 살면서 내 몸에 관해 한 번도 당당한 적이 없었다. 사회적 기준으로 고칠 곳이 많은 외모를 지녔다는 건, 지속적인 불평등에 처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표현대로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가장 슬픈 건,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내 몸을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이 자꾸 나를 몸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한다. 그렇게 내 몸을 지배하는 평가와 나 자신을 향한 부정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헝거》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에서 벗어난, “사이즈가 좀 되는” 몸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다. 《나쁜 페미니스트》로 한국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저자 록산 게이는 가장 살이 쪘을 때, 키 190cm에 261kg이 나갔다고 한다(지금은 64kg 정도 감량했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은 불편하다. 일단 걷는 게 남들보다 힘들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한 건, “뚱뚱한 주제에”라는 말과 경멸하는 시선 그 자체다. 그래서 그녀에게 몸이란 감옥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사랑받고 빛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삶은 두 번의 ‘비포’와 ‘애프터’로 바뀌게 된다. 몸무게가 늘어나기 전과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전과 당한 후. 그녀는 12세 때 남자친구와 그 친구들에게 끔찍한 강간을 당한 후에 급격하게 살을 찌웠다. 자신을 향한 혐오와 죄책감이 그녀를 끊임없이 허기지게 했고, “셀룰라이트 주머니들과 지방 덩어리로 아무도 통과할 수 없는 요새”를 만들었다. 이 책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실종”시켰던 저자가 기록한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고통과 상처를 극복한 ‘간증’이 아니다. 혁신적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정상인’ 범주에 들어섰다는 성공담도 아니다. 그녀가 왜 자신의 몸을 감옥으로 여기게 되었고, 스스로 어떻게 자신을 학대했는지를 촘촘하게 기록한 몸의 흉터 같은 책이다. 그 흉터는 비단 그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몸을 가진 모든 이들의 문제, 즉 끊임없이 몸을 평가하고 통제하는 사회 속에서 몸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아우성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개인사(史)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기록이기도 하다.

미국인 저자의 고백에 한국인인 내가 공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몸을 가지고 사는 한, 나에게도 ‘비포’와 ‘애프터’의 순간들, 그로 인한 허기진 나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질 수 없기에 이 책을 읽는다.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 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은 록산 게이뿐 아니라 내게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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