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3인 3책]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 / 임영신 옮김
더숲 펴냄 / 2018년
                                   
제주도에 온 500여 명의 예멘 난민 문제로 사회가 한바탕 ‘내전’을 치르고 있다.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난민 반대 취지의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고, 사회 곳곳에서 반대 관점과 찬성 관점이 날카롭게 ‘국지전’을 치르고 있다.

그렇게 난민을 반대하고 찬성하는 ‘우리’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예멘은 세계지도 어디쯤 있는 나라인지, 예멘 사람들은 어쩌다 난민이 되었는지,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 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민을 글로 배웠어요” 생색이라도 내보려고 책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고 어린이를 위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에게는 난민에 관해 이렇게 잘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은 왜 그렇게 난민에 관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어떤 대상에 관한 무지는 공포를 강화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난민에 관한 ‘성인용’ 도서가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책을 찾아보다가 어느 일간지가 소개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분쟁 지역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델핀 미누이의 책이다. 그녀는 2015년 우연히 SNS를 통해 본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남자의 옆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시리아 내전의 중심 도시 다라야 지하에 비밀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도서관을 만든 이들이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의 횡포와 그 군대가 쏘아대는 포탄에 맞선 젊은 청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고 SNS를 통해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다라야가 결국 함락되어 강제 이주가 시행되는 2016년까지 약 2년에 걸쳐 꾸준하게 연락하며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저항했는지, 도서관은 왜/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을 듣고 기록하게 된다.

전쟁과 도서관이라니.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 조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때, 우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무언가를 세웠습니다.” 도서관 설립을 주도한 청년 아흐마드의 말이다. 아흐마드와 동료들은 지하 피난처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책을 만들기도 하고, 함께 투쟁도 하며 그 지난한 공포의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 그들의 모든 순간이 승리를 향한 다짐과 확신의 기록은 아니다. 다만 “이 부조리를 어떻게 견디며 살까? 배고픔은 어떻게 떨쳐낼까? 불안과 피로에 어떻게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든 폭력에 어떻게 저항할까?”에 관해 고민하며 “저마다 침몰하지 않으려고 각자 생존 법칙을 찾아”내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혁명’이었다. 오히려 책을 통해 존엄한 패배의 길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시리아 내전에 관해 무지했다.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배우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청년들(아흐마드, 샤디, ‘후삼’이라고 불린 지하드, 아부 말리크)의 얼굴을 상상하느라, 그들이 책을 읽었을 공간이나 폭격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상상하며 읽느라 쉽게 읽히지 않기도 했다. 그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만났듯 나도 책을 통해 무지를 깰 수 있었던 셈이다.

저자가 글을 쓰며 내내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을 바꾸어 본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공포에서 벗어나 환대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얼굴’을 상상해 보는 것이라 권하고 싶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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