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호 에디터가 고른 책]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로완 윌리엄스 지음
민경찬·손승우 옮김
비아 펴냄 / 15,000원

로완 윌리엄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조근조근 말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삶의 전향을 요구한다. 사복음서가 예수의 재판 장면을 각각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 끝내 독자를 그 심판의 자리로 내몬다. 저자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재판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죽음과 부활의 묵상도 신앙인의 삶에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고 확언한다.

“마르코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증인으로 홀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태오는 놀라우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는 전문 지식, 종교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루가는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만들어 놓은 문밖에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라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우리가 속할 ‘왕국’을 결정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떤 ‘세계’에서 살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의 고유한 재판 기록을 통해, 우리가 맞서야 할 현실이 눈앞에 선명해진다. 그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창조세계이자 역사 속 순교자들이 피 흘린 자리다. 예수를 따르는 행위는 곧 우리가 선물로 받은 이 세계에서 순교의 위협을 감당하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는 투쟁, 경멸, 증오를 부추기는 데 순교가 악용된 역사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그 오점을 깊이 파고들어 들춘다.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 실수를 막기 위해서다.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려는 열망에 휩싸이면, 우리는 이러한 가상의 극에서 자신의 미덕, 용기, 혹은 지혜를 과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역할을 떠맡으려 합니다. 그리고 갈등(시험)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이 서 있는 곳과 겁먹고 경멸당하고 있는 이들이 서 있는 곳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 합니다.”

심판의 자리는 피해 의식에 젖어 있는 곳도 아니며, 피해를 이유로 비교 우위를 점하는 곳도 아니다. 심판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지금, 여기)을 견디며 “내가 바로 그다” 말할 수 있는 용기다. 몸으로 목소리로 공동체로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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