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3인 3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 / 2018년         

얼마 전, 네덜란드에 사는 한 남성이 ‘나이 변경’ 소송을 냈다. 1949년 3월에 태어난 라텔반트는 자신의 나이가 69세지만 스스로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나이는 49세라며 이 간극을 좁힐 수 없어 소송을 냈다고 했다. 이런 그의 판단은 나이로 차별받은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새집이나 자동차를 사는 데도 제약이 따르고, 취업에도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듦’이 형벌도 아닌데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에 뿌리를 박고 있는 한, 그는 계속 자신의 나이와 불화하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 사는 한 부부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임신 당시에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건강하다고 했는데, 태어난 아이는 다운증후군으로 진단받은 것이다. 부부는 산부인과 의사 때문에 아이를 낳을지 말지 선택하거나, 미리 준비할 기회를 놓쳤다며 산부인과 의사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일명 ‘잘못된 출산’(wrongful birth) 소송이다. 그리고 아이도 직접 ‘원고’가 되어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라고 한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자신의 나이를 변경해달라는 소송도 ‘잘못된 삶’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삶이란 실존하는 걸까? ‘잘된 삶’과 잘못된 삶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라면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또한 서울대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잘못된 삶’의 전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잘된 삶’의 표상이기도 한 셈이다.

저자의 이력만 보고 장애를 극복하여 사회적 명성을 얻게 된 ‘성공한 장애인’이 쓴 에세이인가 싶었지만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 책은 ‘노련한 장애인’과 ‘세상의 중심’ 사이를 진동하듯 살아온 양면의 이력을 가진 저자가 쓴 묵직한 ‘변론서’다. 저자는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한 권을 통틀어 촘촘하게 변론을 쌓았다.

이 변론이 유효한 이유는, 장애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복합적이었는지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고, 저자가 변론하고자 하는 대상이 장애를 가진 (자신을 포함한)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나이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일 수도 있고, 추한 외모를 가져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일 수도 있고, ‘휴거’ ‘빌거’ 등으로 불리며 차별받는 저소득층 아이일 수도 있고, ‘다문화’로 구분되는 이주노동자나 난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잘못된 삶이라 여기게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존엄’과 ‘매력’을 근거로 든다. 즉,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회가 잘못된 삶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고유성과 매력을 전개할 무대를 가지지 못한 채 ‘기호화’될수록 그 삶은 잘못된 삶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애초에 잘못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된 인식과 태도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질문해본다. 우리는 어떻게 존엄을 발견하고, 구성할 수 있을까? 저자의 긴 변론과 결론은 이 질문의 시작이기도 하다.

존엄을 학습하지 못한 사회, 차별과 혐오에 익숙해진 일상,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실한 책이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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