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교회의 ‘유리천장’과 남성연대의 ‘백래시’

기사승인 [338호] 2018.12.27  16:21:54

공유
default_news_ad1

- [338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펑펑 울었다. 2018년 11월을 맞이하는 10월의 끝자락에 걸친 주일 저녁이었다. 사역 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떨어졌어요.” 정신이 없어서, 눈물이 앞을 가려서, 몸에 힘이 풀려서, 제때 정거장에 못 내렸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우리에겐 여성 목사가 필요하다”
페미니즘 공부와 ‘젠더폭력 OUT’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2017년 한 해 동안 사역을 쉬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에게 여성 목사가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목사 안수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속한 교단에는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여러 과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교회에서 ‘수련목회자 3년 과정’을 밟는 것이다. 수련목 과정을 밟을 교회를 구하고, 1년에 한 번 있는 수련목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수련목 과정을 허락해주는 교회에서 일정 기간 전도사로 사역하고, 수련목 시험에서 합격해 과정을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그 과정을 밟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전에 사역했던 교회에 다시 지원했다. 그 교회에서 사역했던 기억이 참 좋았고, 무엇보다 담임목사님은 내 사역의 역량과 에너지를 지지해주셨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 즈음, 그 교회의 사역자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몇 주 후 목사님과 면접했다. 이미 서로 잘 알고 있는 상황이어서 안부를 나누고, ‘함께 다시 사역하게 돼서 기쁘다’라는 의중을 면전에서 확인했다. 목사님께서 올해 수련목 시험 응시 여부를 물으셨고, 나는 내년에 지원한다고 말씀드렸다. 다음해 1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출근하게 됐고, 그 교회에서 수련목 과정을 위해 첫걸음을 뗐다.

몇 년 만에 돌아온 교회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특히 새로운 사역자가 참 많았다. 나는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진로와 사역 방향에 대해 들었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한 가지 난제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사역자들 중 4명(남녀 각2명)이 내년에 수련목 과정을 밟을 생각이 있구나. 그런데 교단법상 한 교회 당 최대 3명까지 뽑을 수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럼 우리 4명 중에 한 명은 떨어지겠네?’ 그리고 몇 달 후 부목사님이 이런 말을 던지셨다. “내년에 우리 교회에서 수련목 지원하는 사람이 총 4명이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수련목 시험 합격하는 것이니까, 다들 열심히 공부해라.”

그 말을 들은 이후, 내가 수련목회자 후보생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늘 시달렸다. 물론 면접할 때, 나를 수련목으로 써줄 담임목사님 의중은 확인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여러 가지를 계산해보았다. ‘남성사역자 A는 이 교회에서 4년 동안 사역했고, 그중 2년은 풀타임으로 있어서 교회 일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 그리고 스타렉스 운전도 할 줄 알잖아? 기타 반주, 드럼, 방송실 작업, 영상 만들기, 피피티 등 웬만한 건 다 하고 있어. 남성사역자 B도 마찬가지고. 비록 이 사람은 올해 처음 들어왔지만 목사님이 총애하고 부서 내에서도 인정받는 사역자야. 여성사역자 C는 사역한 지 2년이 됐고, 여성사역자 중에서 유일하게 피아노 반주가 가능해. 기타 반주도 잘하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성역할’의 반복을 선택했다. 피아노 반주. 나는 애초에 피아노 악보 자체를 잘 못 보지만, ‘여성’ 사역자로서 ‘피아노 반주’를 못한다는 사실은 내 상황에서 큰 약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드 하나하나를 손가락 위치로 외웠고, 코드가 손에 익을 때까지 한 코드를 20분 이상 반복해서 두드렸다. 그렇게 독학으로 연습한 결과, 나는 수요예배 반주를 하게 됐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는 ‘서브’ 역할에 묶이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형적인 성역할을 반복해야 한다는 현실에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피아노 반주 못하니까 널 수련목으로 안 써 줄 거야!”라는 말은 듣지 않을 거 같아 덜 불안했다. 또한 수련목 과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 활동은 교회에서는 가급적 숨겼다. 교회 자체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즈음 나는 실명으로 가입한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도라희년’ 이라는 필명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이 수치스럽고 불편한 경험을 감내하면서까지 나는 수련목 후보생을 거쳐 반드시 목사가 되고 싶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목사가 되는 것이 뭐가 중요하느냐고 하겠지만, 교회에서 성폭력 근절을 외치려면 ‘목사’라는 자리가 필요하다. 물론 여성 목사를 남성 목사와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현실을 잘 알지만 전도사일 때보다 목사가 됐을 때 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경청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기꺼이 나는 목사가 되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렇게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부끄러워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교회의 개탄스러운 현실에 괴로워하면서 그 교회에 머물러 있었다.

담임목사의 거짓말, 그리고 ‘유리천장’
교단 홈페이지에 수련목 시험 일정 공고가 올라왔다. 2018년 11월 8일까지 지원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수련목 후보생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묵묵부답이셨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10월 28일 주일 오후 3시, 수련목 신청 마감일 11일 전에 목사님은 우리 4명을 부르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담임목사실에 들어갔다. 적막이 흘렀다. 목사님이 먼저 운을 띄우셨다. “교회 사정상 수련목을 최대 2명까지만 쓸 수 있다. 남자 A전도사는 4년 동안 사역하면서 수련목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1순위이고, 새로 들어온 남자 B전도사는 처음 면접 봤을 때 이미 수련목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2순위이다. 그런데 나머지 여자 2명은 수련목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내가 들은 게 없다.”

거짓말이었다. 나와, 다른 여자 전도사 모두 분명 수련목 의사를 밝혔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심장이 쿵했고, 몸이 떨렸다. 하지만 티 안내려고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옆에 있는 여자 전도사도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후 목사님이 말씀을 이어갔다. “이 교회에서 수련목하고 싶은 여자 전도사들은 남자들이 수련목 시험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 들어오던가, 아니면 남자들이 수련목 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하던가.” 말투와 태도는 점잖고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너무도 쓰라렸다. 당장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지만 수련목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 목사님이 추천서를 써주지 않으면 시험에 응시도 못할 판인데다가, 남은 사역 기간에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 교회에 더 이상 수련목 자리가 없으니 곧 쫓겨나듯 사임해야 했지만. 그렇더라도 행여나 좁은 이 바닥에서 나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담임목사실에서 나온 직후, 교육목사님은 다른 남자 전도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서 우리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셨다. 거기서 우리 두 사람은 펑펑 울었다. 교육목사님은 이 상황에 같이 분노하고 어이없어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셨다. 나는 너무 서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수련목 의사를 밝혔어요. 그런데 왜 담임목사님은 거짓말 하세요? 우린 여자라서 떨어진 거예요. 그 이유 밖에는 없어요. 남자 말은 말이고, 우리 말은 말이 아니었어요.”

어쨌든 수련목 과정을 할 수 있는 다른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은 11일뿐이었고, 안타까워하신 교육목사님은 우리 둘을 위해 백방으로 교회를 계속 알아봐 주셨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고 급하게 일어난 일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

   
그 투명함은 산산이 깨져 어느 순간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내 마음을 찢었다.


여자 선배들이 수련목 지원 과정에서 숱하게 겪는 성차별의 경험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일어났다. ‘유리천장.’ 그 유리는 너무도 투명했다. “우리 교회에서 수련목 해야지”라는 목사님의 투명한 말을 나는 투명하게 믿었지만, 그 투명함은 산산이 깨져 어느 순간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내 마음을 찢었다.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수련목을 구하는, 아니 ‘여자’ 수련목을 구하는 교회를 찾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사역 조건이 열악해도 일단 내 처지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기에 점점 더 위축된 상황에서 교회를 알아봐야 했으나, 앞으로 3년이 넘게 사역할 교회를 11일 안에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혹여나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교회에서 사역하는 내가 과연 행복할까?’ 생각했다. 결국 나는 사역할 교회를 못 구했다.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정된 교회가 없기에 수련목 신청서를 작성할 수 없었고, 나는 수련목 시험을 신청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못했다. 여러 번민 속에서 나는 부서 사역을 무거운 마음으로 정리해야 했다. 다행히 내 상황을 알고 있는 동지들의 배려로 2019년부터 사역할 수 있는 좋은 교회로 가게 됐다.

여성에게 ‘종교개혁’은 언제 오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교회 수련목 후보생에서 짤린 날이 바로 ‘종교개혁 주일’이었다. 종교개혁이 기념하는 건 대부분 ‘남성들의 서사’이다. 그 많았을 ‘여성들의 서사’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내가 한창 사역지를 구할 때 교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어느 교회의 사역 공고는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1. 전임전도사 (수련목 예정자) 1명 : 교육 부서 및 행정사역
 성별: 남자 / 감리교 계통 신학대학원 졸업 및 졸업 예정자 / 운전 가능하신 분
2. 유치부 전도사 1명 : 유치부 사역
감리교 계통 신학대학의 학부 졸업 또는 신학대학원 재학하는 자 / 엄마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해 주실 수 있는 분 (연령 제한 없음) / 반주 가능하신 분

‘이분화된 성역할’로 사역자를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 ‘운전’ 가능한 ‘남자’ 수련목.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반주’까지 가능한 ‘유치부’ 사역자. 물론 위의 2.에서는 성별을 지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확정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여성’이라고 명확하게 지칭하지 않는 것도 이 사회가 여성의 명칭을 지워가며 에둘러 말하는 방식을 답습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왜 수련목에는 ‘남자’라고 못을 박아뒀을까? 혹시나 운전할 줄 아는 ‘여자’가 지원해 남성들 자리를 뺏을까 두려워하는 남성연대의 ‘백래시’(backlash, 페미니즘 등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를 한 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데 성별이 중요한 요소인가? 견고한 유리천장을 박살낸다 할지라도, 그 파편화된 뾰족한 유리 조각을 일일이 줍고 쓸어 내는 일을 감당하는 것도 왜 여성이어야만 하는가? 그 안에서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은 어디서 보상받을까? 대체 종교개혁이 아직도, 여성에게는 오긴 한 걸까? 여성에게 진정한 종교개혁은 언제 찾아오는가? 이를 위해 교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도라희년(필명)
도라(Dora)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영어이름이다. ‘희년’은 여성의 삶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Dora희년은 “여성들의 삶에 찾아오는 희년은 신의 선물이자 은총”이라는 뜻이다. 페미니스트에게 복이 있다는 복음을 영접하고서 페미니즘을 몰랐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페미니스트라는 새 사람이 되었다. 페미니즘에 입문한 뒤 모든 것이 흔들려 버렸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을 즐긴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젠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상담 및 운동을 하고 있다. 신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페미니즘(Feminism)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목회자(Minister)인 페미니스터(Feminister)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Dora희년 goscon@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책과 함께

1 2 3 4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