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호 커버스토리]

   
▲ 종말 이후의 생존을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상상력 
장르문학이나 장르물 영화 중 비교적 견고한 마니아층을 가진 장르가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가 그렇다. 이 장르는 세계 문명이 충돌하거나 좀비, 뱀파이어와 같은 돌연변이의 출현, 제3차 세계 핵전쟁이 벌어지는 상상, 혹은 환경오염이 생태계의 기본 질서를 파괴해 결국은 모두 공멸한다는 이야기가 필수 프롤로그다. 또는 외계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불시 기습으로 인해 인류가 말살한다는 전개도 가능하며, 아니면 손쉽게 우주를 떠돌던 검은 행성 하나가 지구로 돌진, ‘쾅’ 하고 충돌한 뒤 지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우주 속 먼지가 된다는 식의 허무주의 전개 등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가진 장르의 상상력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장르문학에서 꽤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중 최악의 풍경만을 골라 지구 행성의 종말을 고한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독특하다. 지구 종말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한 사람, 혹은 소수 공동체의 생존 이야기를 다루며 이야기 시작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는 마블(Marvel)이나 DC 코믹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히어로/히로인’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히어로 장르는 임박한 인류 종말과 그 종말을 조장하는 사악한 세력에 맞선 영웅들의 분투를 그린다. 그러다가 그럭저럭 세련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게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지향하는 히로인 장르만의 상상력이다. 반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종말이 들이닥친 뒤 그 종말론적 폐허를 바라보는 허무주의 내지는 생존과 관련된 본성의 휴머니즘을 다룬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비고 모텐슨이 출연한 2010년작 〈더 로드〉(The Road)를 꼽는 편이다. 영화는 초전박살 나버린 지구, 종말 이후를 살아내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 놓인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휴머니티는 아버지와 아들이란 부성애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영화 제목 ‘길’이라는 모티브처럼 영화는 관객들에게 살아서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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