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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문제, 이제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사승인 [340호] 2019.02.28  11: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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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0호 사람과상황] 낙태죄 폐지운동 벌이는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 ⓒ복음과상황 이범진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형법상 죄로 규정된다.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성에게 낙태하게 한 자에 대해서도 형이 같다. 일본이 군국주의 시절에 독일 형법을 모방하여 낙태죄를 엄격하게 규정했고, 이것이 식민지로 이식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형법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자보건법’이 있어 낙태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일부 예외 사항이 있지만, 해당 사유를 증명해야 한다. OECD 회원 35개국 현황을 보면 본인 요청에 의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나라가 25개, 금지 원칙에서 예외적 허용을 두는 나라가 9개(한국 포함)다. 이중에서도 한국, 뉴질랜드, 이스라엘, 칠레, 폴란드는 사회경제적 사유로의 인공임신중절까지 금지한다. 사실상 임신중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낙태한 여성은 곧 범죄자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그 실제 건수는 얼마나 될까? 모자보건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간 인공임신중절 추정 건수를 보면 2010년 기준 16만8,738 건 발생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3,000건의 인공임신중절이 이루어진다고 추정된다. 국내에서 인공임신중절을 받은 여성과 그 병원은 누구에게나 신고 대상이기에 이 모든 인공임신중절이 거의 의무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음지에서 (불법 브로커를 통해) 위험하게 이루어진다. 실제로 낙태반대운동 단체인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2010년부터 인공임신중절을 한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 고발 정국’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이후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병원이 급감했고, 그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과적으로 해외 원정 수술을 감수하는 여성들의 사례가 생기는 등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접근성마저 더욱 차단되었다.

작년 10월에는 보건복지부 차관이 “낙태죄가 사문화되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으나, 곧이어 이를 정면 부정하는 듯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12월에 경남 남해경찰서가 특정 산부인과에서 진료받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업무상 촉탁 낙태죄’ 참고인 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낙태 여부를 취조한 사실이 여성민우회 발표로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낙태 수술을 받은 사람들과 병원을 지목하여 진정을 접수한 사람이 있어서, 이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한 압수하여 해당 산부인과 에서 20여 건 이상의 개인정보를 얻어 적법하게 조사 활동을 벌였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의 (작년 5월에 마치고 미뤄지고 있던) 결론을 기다리던 때다. 여성들이 국내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던 때이기도 하다.

지금은 새로 구성된 6기 헌재 헌법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영 씨를 인터뷰했다. 나영 씨는 낙태죄 폐지운동을 선두에서 펼쳐온 시민활동가다. 작년 11월 출판 후 두 달 간 10여 차례 ‘북토크’ 행사를 열었던 책 《배틀그라운드》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낙태죄 이면에 숨은 ‘성과 재생산의 정치’를 수면위로 드러내는 이 책은 ‘성과재생산포럼’이 기획하고 후마니타스가 펴냈다. 기독교인인 나영 씨가 종교 부분을 썼는데, 여기에 낙태에 관한 한국 개신교의 인식이 어떻게 작용해왔는지도 담겼다.


“한국의 개신교는 가족계획 사업을 교회 사업으로서 적극 활용했고, 아울러 박정희 정권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의 기반을 다졌다.”

‘가족계획 사업’이란 대한민국 정부가 1962년부터 1980년대까지 펼쳐온 인구억제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기혼 여성에 대한 피임과 임신중절을 권장했다. 이 사업이 진행될 때 개신교가 적극 동참했고, 현재는 개신교계 차원에서 그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한 바는 없다. 이런 오늘의 지점에서, 나영 씨가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여러 맥락을 들었다.

― 낙태죄폐지운동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개해달라.
현재 ‘지구적행동네트워크’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09년 한국, 중국, 멕시코, 남아공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여기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당시에 ‘프로라이프 의사회’라는 낙태반대운동 단체에서 ‘낙태 구조센터’ ‘낙태 제보센터’를 운영하며 제보된 내용을 바탕으로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한 병원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마침 연대 그룹인 멕시코에서도 임신중절 이슈가 컸던 때여서 함께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낙태죄 폐지 활동을 하는 다른 여러 단체들과 함께하는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가 만들어져 공동 행동으로 이어가게 됐다.

― 2012년에 한 차례 낙태죄 위헌 소송이 있었고, 당시엔 4:4로 합헌 유지 결정이 났는데.
그 판결 이후 2013년에는 사실상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가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때 운동하면서, 병원과 여성이 실제 고발을 당하고 심지어 사람이 죽기도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인데 ‘외국에 비해 한국에선 왜 낙태죄 문제가 거의 이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다. 미국만 해도 선거 때 당락을 좌우할 만큼 낙태죄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곤 한다. 그렇다고 해외 담론을 한국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발전시킬 순 없는 게, 나라마다 낙태죄가 사회적으로 작동해온 방식이 다르다. 아무튼 2012년 헌재 결론이 한 차례 내려지고, 한국적 맥락에서 담론을 형성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즈음 운동력이 사라지면서 연대 활동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이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왜’라는 고민을 늘 공유하고 있었고, 2015년엔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에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을 꾸렸다. 나도 그 기획단에 참여하게 됐는데, 1년간 모임이 이어지면서 ‘성과재생산포럼’이라는 이름이 되고 2016년 공식화됐다. 연구 모임이 지속됐고, 나는 주로 종교에 관한 주제를 맡았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에서 불법 인공임신중절을 한 의사에 대한 자격정지 1개월 행정규칙 개정안을 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범국민 시위를 기획하고 전부터 함께 활동했던 여러 단체가 다시 모여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구성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성과재생산포럼이 기획한 출판 결과물이 바로 작년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배틀그라운드》다.

―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한국적 맥락의 낙태죄 문제 연구에 진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장애여성재생산권 관점에서 논의를 하면서 한국에서 낙태와 출산이 어떤 식으로 통제되어 왔는지 들여다보게 됐다. 사실상 장애 여성들은 ‘장애인이라서’ 오히려 임신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으며, 국가가 불임 시술과 낙태 수술을 시킨 역사가 있다. 시설에서 본인 동의 없이 암암리에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센인들이다. 국가를 상대로 강제 낙태와 단종(생식 능력 제거)에 대한 소송을 해서 대법에서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낙태죄 존속의 근거로 생명윤리를 운운하지만, 실상 국가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온 것이 아니라 선별해왔다.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2018년 9월 29일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진행한 '269명이 만드는 형법 제269조 폐지' 퍼포먼스 (사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페이스북)

―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까지 불허하는 나라라는데, 과거엔 좀 달랐던 것 같다.
경제 발전을 기치로 내거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 1980년대까지, 인구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 사업이 시행됐다. 여기에 적극적인 지원을 한 것이 바로 개신교다. 미국인 선교사 오천혜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비정부 차원의 가족계획 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많은 선교사들과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 배경에는 당시 냉전체제였던 세계 역사와 미국 기독교의 맥락이 있다. 윤정란 선생님의 논문 〈국가 여성 종교: 1960‐1970년대 가족계획사업과 기독교 여성을 중심으로〉에서 그 내용을 잘 다루고 있다. 당시 한국 개신교인들은 경제적 부를 이루는 것을 사명과 축복으로 여겼고, 정부가 낙태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모자보건법을 십분 활용하여 인구 통제와 생명 선별을 이루는 과정에서 적극 개입했다.

― 그 모자보건법에 첫 번째 규정으로 등장하는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항이, “부모에게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라고 되어 있던데….
우생학적 관점이 법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이유도 해방 전 개신교 지식인 및 정치인과 관련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생학이 유행하던 20세기 초에 조선에서는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 유학한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 계층들이 우생학을 통한 ‘민족개조’를 꿈꾸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민족개선학’ 또는 ‘인종개선학’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우생학이 수용됐고,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반인들에게까지 보급됐다. 1933년 9월 14일엔 윤치호, 여운형, 유억겸, 주요한, 최두선, 이광수 등 85명 발기인이 모여 ‘조선우생협회’를 창립했고, 이듬해 〈우생〉을 발간했다. 이들 중 일부는 YMCA를 모태로 1925년 결정된 항일민족주의운동단체 ‘흥업구락부’ 출신이다. 미국에서도 우생학이 유행하고 있을 당시에 미국에서 공부했던 이들이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이 이승만을 지원했고, 일본 정부가 1938년 대대적으로 검거하면서 조선우생협회도 1937년 이후 휴회했다.
그러다 해방 직후인 1946년 ‘한국민족우생협회’로 개칭하여 활동을 재개했다. 이 협회 발족자가 조선우생협회 핵심 인사이자 〈우생〉 1권에서 히틀러의 독일유전병방지법을 번역하여 소개한 이갑수라는 인물이다. 그는 이승만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을 맡았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 1963년 9월 ‘내각수반지시각서 제18호’를 통해 법무부에 우생보호법 제정 필요성 검토를 지시한다. 천주교계 반대로 법 제정은 실패했지만, 그 입장이 모자보건법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한계 규정으로 반영되어 남았다. 사실상 장애여성들에 대한 강제 낙태를 가능하도록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법이 바로 모자보건법이다. 형법에서 낙태의 죄를 두고서, 동시에 모자보건법을 근거로 장애 여성에게는 낙태를 시켜온 것이다.

― 2017년 대법원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정책적 강제 낙태·단종 피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이 난 바 있다.
당시 한센인들은 대표적인 강제 단종 시술 대상이었고, 장애인, 전염성 질병의 감염인, 부랑자, 정신병자, 범죄자들은 개인적 통제뿐 아니라 결혼과 생식의 통제 대상으로 설정됐다. 모자보건법이 2009년 개정되기 전에는 어떤 상황일 때 인공임신중지 허용 질병 목록(유전성 정신분열증, 유전성 조울증, 유전성 간질증,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혈우병, 현저한 범죄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현저한 질환)까지 국가가 선택적으로 명시했었다.
장애 여성의 태아이면 장애가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장애가 유전된다는 전제하에 국가 차원에서 불법적인 의학적 조치들이 시설에서 감행됐다. 물론 장애 유전 여부가 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임신 당사자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해도, 태어날 아이나 본인의 삶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아이를 낳을 것인지 임신중지를 택할 권리가 있다. 다만 임신중지를 선택하지 않을 만한 환경들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장애 여성들은 국가와 가족에 의해서, 혹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강제 낙태와 임신 불가의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 장애 여성도 임신과 출산, 혹은 임신중지도 선택할 수 있지만, 지금껏 그런 판단의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출산의 선택권이 임신 주체인 장애 여성이 아니라, 국가, 가족, 사회에 있었다.
낙태죄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이런 다양한 배경과 역사를 보면, 국가가 법을 이용해 어떤 것을 하려 했는지 분명하다. 낙태죄를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자보건법을 이용하여 이 모순의 구조 속에서 국가적 범죄가 저질러진 사실을 들여다보면, 낙태죄 문제는 단지 임부만 처벌한다는 것의 비합리성 너머의 훨씬 더 심각한 차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떠한 사회구성원을, 새로 낳게 하거나 말게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생명을 선별해 왔는가’ 혹은 ‘정책 방향에 따라 인구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그러나 ‘그 책임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등의 물음과 연결된다. 이런 낙태죄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성들은 임신중지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을 갖게 되는데, 여성이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이 《배틀그라운드》에 녹아 있다.

― 그 책임이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낙태죄 폐지운동이 여성운동의 흐름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렇다. 특별히 한국의 모자보건법에는 특수한 조항을 두고 있다. 바로 ‘배우자 동의’ 조항인데, 이 사실에 다른 나라 운동가들도 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조항은 한국에만 있다. 이 조항 또한 법의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부분이다. 낙태죄가 사문화되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동안 처벌의 빈도가 낮거나 이슈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왔다. 2013년에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한 여성이 결혼 직후부터 남편에게 음주 폭력을 당해왔고 임신 상태에서도 위협을 받아왔다. 그런 문제로 임신중지를 선택하자 남편이 신고했고 재판이 열렸는데, 남편은 낙태를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여 낙태 방조에 대해서 무죄를 받았다. 반면, 여성은 벌금형을 받았다. 유사한 사례가 많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만든 제보 사이트에도 이와 유사한 제보들이 수두룩 올라왔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판결 이후에는 인공임신중절 브로커들이 생겼는데, 병원 소개해주겠다고 데려가서 임신 여성을 성폭력한 사례도 있다. 낙태죄가 이미 악용될 구조를 갖고 있는 채로 존치되어 오면서 적극적으로 악용할 수 있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낙태죄는 다양한 임신중지의 상황들 중에서도 어떤 상황만 특히 범죄시 해왔다. 이를 테면 부부관계 안에서의 임신중지는 사실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 상황에 따라 이루어져 왔다. 사회적으로 알려져도 별로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혼인 밖의 여성이 임신중지를 하거나, 기대 연령이 아닌 때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에게는 온갖 비난과 처벌이 가해졌다. 재생산을 유지하는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아기를 배달하는 도구로서만 섹슈얼리티가 유용하게 여겨진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성만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또한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일체를 국가가 아닌 가족에 전가한 것이기도 하다. 생명이 태어나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기도 한데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그 비용과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이미 국가가 가족에게 일임했으니 그 가족이 결정한 바에 대해서는 불법이어도 암묵적으로 개입 안 하는 것이다.

― 사실상 인공임신중절률은 그것을 금지하는 국가보다 허용하는 국가에서 더 낮은 결과를 보인다는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 발표도 있던데.
낙태는 처벌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앞서 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가족에게 전가한 출산 후 생명에 관한 양육 책임과 역할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질 때 그런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선택할 이유가 감소한다. 태아 생명만 절대적으로 강조하면 오히려 임신, 출산, 양육을 각각 단절적으로 보게 된다. 태어나는 순간만 중요시 하고, 이후에는 사회가 별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임신중지를 하는 상황은 다양하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선 안 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여성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점으로 질문을 돌려야 한다. 낙태죄 폐지가 그 시작이다. 지금의 처벌은 막지도 못할 불법 낙태에 관한 국가 책임은 방기하는 반면, 그 책임과 더 높아지는 위험은 여성 개인에게 지운다. 임신중지가 더는 불법이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임신중지를 선택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 책임을 갖게 된다. 처벌 때문에 임신중지를 포기할 여성이 얼마나 있을까.

― 《배틀그라운드》 출간 이후 반응이 좋다는 소식을 지속적으로 듣는다.
그동안 낙태죄는 언제나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충돌하는 양자 구도의 대결로만 대중적으로 전달되어 왔다. 그런데 《배틀그라운드》가 낙태죄를 여러 정치적 의제로서 존재해온 다양한 사회 관점으로 읽어내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 같다. 이렇게 기독교 매체와 임신중지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것도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고 처음이다.(웃음)

   
▲ ⓒ복음과상황 이범진

― 낙태죄 폐지 운동을 시작한 9년 전과 비교할 때 실제로 변화를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확실히 다르다. 2010년에는 기자회견을 하면 기사가 나가도 사회적 반향이 없었고, 여성들이 자기 경험을 말하기 어려워했다. 그런데 2016년에는 폴란드에서도 낙태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1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반대하는 대대적인 ‘검은시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같은 해 10월부터 2018년까지 2년에 걸쳐 ‘검은시위’를 이어갔다. 자기 경험을 말하는 여성이 대거 늘었고, 집회에서만큼은 더 활발하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관심도 2010년보다는 훨씬 커졌다. 아직도 해외에서의 반향만큼은 아니지만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 낙태죄를 생명(태아)과 임신부 간의 권리 충돌로 보거나 절대적 생명윤리와 여성에 대한 보호 장치라는 관점도 여전하다.
책을 읽어보시면 그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될 거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면 임신중지가 법으로 금지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분들도 많다.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서 공유되는 요즘, 가장 많은 오해가 있는 인공임신중절의 위험성 역시 잘못된 정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는 WHO에서도 그 안정성을 인정한 가장 안전한 임신중지안이고, 세계적으로 허용하는 추세다. 수술도 법의 보호 하에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받으면 안전하다. 한국 상황에서처럼 법의 보호 없이,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임신중절이 위험한 것이다. 게다가 법률 때문에 한국 의료 교육에서 임신중절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어떻게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게 되었나.
꽤 오래전 이야기로 돌아가는데… 고등학생 시절 노점상 철거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계속 다녔는데 고등학생 때 가정적으로는 불화가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독교 신앙이 의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모순을 많이 느껴갈 때였다. 그렇게 교회와 기독교의 모순에 대한 고민을 가지게 될 쯤 종로에서 우연히 그 철거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오후 5시 쯤 노점상 주인이 오픈 준비를 하는데 단속반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강제 철거를 하고 있고, 청각 장애인인 듯한 노점상 주인은 말도 거의 못하는 채로 철거반원들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거의 끌려가다시피했다. 충격적이었다. 그때가 1995년이다. 그 이야기를 교회 전도사님한테 하면서 노숙인 문제나 교회로 찾아오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답이 탐탁치 않았다. 그냥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다니던 고등학교도 학생자치운동이 활발한 곳이었는데 그 영향도 있고 이런 계기들이 모여서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교 다닐 동안은 노동과 빈곤 문제, 교육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졌다. 당시 여성 이슈는 내게도 걸쳐진 문제였지 중심 이슈는 아니었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낙태죄 이슈로 확장이 되었다. 오래 자라온 기독교 배경 안에서 발견한 모순점들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던 게 계기가 되기도 했고, 기독교 관점으로도 계속 그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내려고 했다.

―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나는 소위 매우 독실한 신자였다. 이를 테면 부흥 집회나 찬양 집회도 찾아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하고 방언도 했다. 록 음악을 좋아해서 테이프가 많았는데, 언젠가 그게 사탄의 음악이라는 말을 듣고 테이프를 다 버리기도 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삶에 많은 도움을 얻기도 했는데, 여러 모순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교회를 떠났었다가 2013년부터 새로운 교회를 찾아서 다시 다니고 있다. 결국 교회로 돌아가게 되더라. 사실은 과거의 신앙이 지금도 영향을 준다. 한때는 유물론과 기독교 신앙이 모순되고 대립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 성경을 문자적 기록 자체보다는 예수의 삶을 보면 그렇다. 예수는 율법 시대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고 말했다. 율법이 누구를 위하여 쓰였는가를 분별하게 해주었던 예수의 행적들 속에서, 신앙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지금 하는 활동도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지.
물론이다. 예수가 우리 시대 문제를 놓고서 ‘여성들을 처벌하라’거나 ‘차별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예수는 오히려 ‘너희가 임신중지 여성들에게 생명을 무시한다면서 비난하고 처벌하지만, 정말 생명을 무시하고 선별하는 것이 누구냐?’라고 물으시지 않을까. 성경의 관점도 생명을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생명이란 태어나 살아가는 전체 삶의 과정이고, 죽는다는 것 역시 단절이라기보다는 연속의 과정 아닌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새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떤 생명의 죽음은 양분이 되기도 한다. 그런 관계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생명에 대한 단편적 이해와 태도는 다양한 관점을 막고, 신앙을 획일적이고 단죄적으로 만든다.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성경에 드러난 생명 원리와 창조의 의미를 사회에 실천하고자 한다면 개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 호전적이고 비상식적 집단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교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사실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과 교회, 목사님들도 많이 있다. 교회가 적대로 여겨지는 상황을 자초하지 않으면 좋겠다. 얼마든지 더 많은 사람과 다양한 방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진 원론적이고 편협하며 적대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자기 안에서 그런 모순으로 인한 갈등을 느끼지 않게 되면 좋겠다. 나도 신앙을 계속 갖는 것에 대해서 이전엔 떠나야 할 거 같았는데 다양한 해석들이 내 신앙과 통합되면서 힘이 됐다. 교회란 그런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 곳 아닐까.

― 현재로선 가톨릭에서 낙태죄에 대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과 달리 개신교에서는 거의 입장이 없어 보이는데.
현대사에서 적극 지지 개입한 역사를 갖고 있으니 그 문제를 논의하기에 부담이 너무 큰 것 아닐까. 또한 많은 교인들이 임신중지를 해왔고 실제로 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여러모로 껄끄러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이루어지고 현실의 고통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교회가 침묵하거나 외면하면서, 개인만 단죄하는 목소리만 드높인다면 그 안에서 신앙을 갖고 살아가려는 신자들을 힘들게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 믿는페미, 무지개예수,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 주최한 <배틀그라운드> 저자 북토크가 섬돌향린교회에서 2월 9일에 열렸다. (사진: 믿는페미 페이스북)

― 헌법재판소 결론을 기다리고 있는데, 낙태죄 폐지 논의를 어떻게 이어나갈 계획인가.
3월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래서 고민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낙태죄 폐지만 주장할 때는 오히려 분명한데, 이후에 법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논의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입장들과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되고, 이후에 전반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판결 이후 제반 법까지 전반적으로 개정되는 데는 논쟁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낙태죄 폐지 구호가 이런 내용을 잘 담고 있더라.

― 어떤 내용인가?
“결정할 수 있도록 성교육을!” “낙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피임법을” “죽지 않을 수 있도록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무상의,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보장하라!”였다. 프랑스의 경우는 보건법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12주 이내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이미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해당 법안의 서두에서 임신과 출산, 생식과 관련된 일을 보장하는 의무와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하는 것이 국가 관리의 역할이 될 때 임신중지의 효과도 훨씬 높다. 우리도 이번에 임신중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를 맞으면 좋겠다. 단지 여성의 권리 차원을 넘어서 국가가 생명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선별하지 않도록, 진정한 생명의 권리가 이행되도록 말이다.

오지은 ohjieun317@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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