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호 무브먼트 투게더] 왕따에서 ‘베리타스 포럼’에 이르기까지

출발: 신앙은 노력에 달려 있다?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교회 가기를 싫어하고 기독교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초등 6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까지 당했었습니다. 저는 근처 한인 교회를 피난처 삼아 교회에서 형 누나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매주 청년 예배를 드렸고 찬양팀 활동도 하면서 ‘기독교’라는 것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중2 여름 수련회 때 저는 처음으로 복음에 감동으로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왕따를 당하며 느꼈던 수치와 낮아진 자존감을 눈물로 고백했고, 그 당시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회개 기도를 따라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 기독교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새롭게 시작된 학교생활에 아주 잘 적응했으며 제자훈련, 찬양팀, 방과 후 예배 등에 참여하며 신앙생활에서도 성장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고1 때는 1년 동안 조직신학 수업을 들으며 기독교 교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궁금증만 자꾸 커지는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구원론, 예정론, 지옥에 대해 배우면서 ‘하나님은 왜 죽음 이후에는 기회를 안 주시는 것일까?’ ‘심지어 천국과 지옥 갈 사람들을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등 불만 섞인 질문들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럼 나는 정말 구원을 받은 것일까? 수련회 때 그냥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뿐이지 내가 정말 복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며 제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께 질문을 많이 해봤지만, 대부분 저를 진정시키며 원래 믿음이라는 게 근거가 없고 이해가 안 될 때에도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열심히 믿으며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런 질문들이 생길 때마다 신앙과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억누르고 잊어버리려고 애썼습니다. 또 찬양팀 리더로서 자꾸만 신앙에 대한 의심이 생기는 데 죄책감을 느낄 때면 찬양이나 집회 등을 통해 감정적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노력 끝에 결국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더 이상 기독교인인 척할 필요가 없고 학업 스트레스도 없었던 저는 다시 신앙 고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튜브에서 제가 품고 있던 질문들을 검색하던 중에 <The Veritas Forum>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베리타스 포럼’을 한국에서 만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유명한 대학들에서 정말 뛰어난 학자들이 기독교를 변증하고 심지어 제가 품고 있던 질문도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세계를 발견한 듯 이 기독 지성의 세계를 더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윌리엄 L. 크레이그, 팀 켈러 등 기독교 변증가들의 강연을 보며 기독교가 지적으로 탐구 가능한 종교라는 것을 느꼈고 제 질문들을 넘어 기독교, 아니 진리 자체를 처음부터 정말 진지하게 공부하여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진지한 탐구를 위해 제 자신의 무지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상 기독교인인 척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찾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의 존재와 필요성부터 타종교 탐구, 그리고 예수와 성경의 역사성까지 다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과정: 진리탐구의 여정, 좌절과 분노만 남다
미국 대학교에 입학해서 저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수업과 철학개론 및 종교철학 수업까지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 외에 교양 과목들에서는 제 질문들과 접촉점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철학 및 종교 수업에서도 개인적 관심이 별로 없는 주제들을 다룰 때나 생각이 덜 정리된 상태에서 진도를 위해 과제를 제출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학점을 위해 대충 넘기고 관심 없는 수업도 억지로 공부할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진리탐구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학점은 유지해야지” “그런 질문들은 방학 때 더 알아가면 되잖아”라며 조언했지만, 학교 공부도 잘하면서 동시에 제 정직한 질문들에 충실히 직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처럼 질문을 억누르며 살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갈등 가운데 진리, 특히 기독교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미국에서 나를 회복시킨 복음의 힘과 기독교 공동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비와 그리움, 둘째, 죽음 앞에 유한한 인생과 무신론적/물질적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과 허무함 및 그로 인한 불만족, 셋째, 혹시나 사후세계가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학업과 진리탐구 둘 다 제대로 못한 채 성적은 성적대로 망쳐 자괴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겨우 1년을 마친 후 휴학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군 복무 동안 저는 시간을 잘 활용하여 답을 계속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없어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헤매었고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롭기도 했습니다. 도움을 받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엔진에 여러 키워드를 검색해보았지만 적합한 공동체를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또 외박과 휴가를 나오면 서울에 있는 여러 교회를 직접 탐방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도 저의 질문과 고민에 함께 공감하고 같이 답을 찾아갈 사람들을 만나기보단 오히려 관심이 없거나 저를 답답해하는 경우를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여러 번 실망이 반복되다 보니 진리탐구의 과정과 이 과정에 함께할 이들을 찾는 데 지쳐만 갔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이제 제 앞에 좀 나타나 주세요”라고 수백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묵묵부답인 하나님에 대해 분노를 품게 된 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까다로운 철학과 신학, 역사를 공부하기보다는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지능을 높인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에게 오히려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을 통해 인간을 신처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전공도 생명공학으로 바꾸어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실현하는 과학자가 되기를 기대하며 대학에 복학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복학 한 달 후 갑자기 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곧바로 귀국한 저는 아르바이트와 한국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준비를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지원했던 대학에서 모두 다 떨어져 좌절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굉장히 연약한 존재구나.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는커녕 당장 앞의 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흔들거리는 인생에서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빨리 그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다시 제대로 정직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실패했던 경험으로 인해 혼자서는 안 되고 공동체를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전환: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모임을 만나다
그러던 중 작년 3월, 우연히 ‘다마스커스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예전에 저를 매료시켰던 베리타스 포럼이 한국의 고려대에서도 열린다는 것과 준비할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서포터즈 모집 포스터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고 포럼 실무자인 신진 형제의 초대로 한 주 뒤 떨린 마음으로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조영헌 교수님, 조미원 선생님, 신진 형제, 박지명 형제가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2018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준비모임에서는 스태프들과 서포터즈들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모여 기도회와 삶 나눔을 하고, 이어 포럼에 관련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사람들과 성경을 같이 읽고 제 솔직한 질문과 생각을 나누며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제 질문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포럼 스태프들은 저를 단지 전도 대상이 아닌 함께 협력해나갈 동역자로 바라보았습니다. 나아가 제 생각에 사려 깊은 관심을 보이며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여 제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이곳이라면 내가 편하게 질문과 고민을 이야기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오랜 기간 이러한 공동체를 만나지 못해 질문을 혼자 삼키고 지냈던 저의 답답함과 외로움은 베리타스 포럼 모임을 하면서 조금씩 해소되어 갔습니다.

비로소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 모임에 다른 ‘찾는이’들이 많이 와서 같이 진리를 찾아 나가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가지고 5월에 열릴 포럼 준비를 위해 제목, 홍보 방법, 포스터 디자인, 행사 계획 등 회의를 할 때 적극적으로 제 의견을 밝혔고, 그럴 때마다 제 의견이 존중받을 뿐 아니라 실제 계획에 반영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를 스태프로 받아주시면서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 강연자(오스 기니스 박사) 에스코트 및 통역, 베리타스 본부와의 소통 등 각종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신뢰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겐 큰 의미와 용기를 안겨주었고 나중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저 역시 이런 자세로 찾는이들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정말 원했던 것은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탐구였기에 포럼 후에 있을 후속 모임에 큰 관심과 기대를 하고 계획하였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톰 라이트의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리 스트로벨의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으로 북스터디를 진행했는데, 총 1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그중 2명의 비기독교인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혼자 조직했던 커뮤니티와 달리 함께 준비하고 힘을 모아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이런 진리탐구 모임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동시에 경험이 전무하고 미숙하여 이런 일을 오래 한 공동체에 가서 배워야겠다는 필요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베리타스 포럼은 이러한 저의 더 큰 배움을 위한 교량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베리타스 포럼은 그 특성상 한 교회나 단체 산하에 있지 않고 다양한 곳들과 네트워크를 형성, 후원과 협력을 받아 진행하는 운동이기에 자연스럽게 다른 기독교 지성 운동 및 기독교 변증 단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브리,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청어람 등을 알게 됐는데 이 모든 일이 저에게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생각보다 한국에 기독지성운동이 활발했고 이 운동을 제가 지금까지 몰랐을 뿐 각 단체는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영역에서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라브리 공동체가 큰 배움이 될 것 같아 작년 9월에 네덜란드 라브리로 갔습니다. 기대한 대로 저는 그곳에서 다양한 찾는이들을 만났고 함께 먹고 살면서 형성된 깊은 관계 안에서 밤새 토론도 하며 진리를 탐구했습니다, 또한 여러 방해요소에서 떠나 절대적인 시간이 확보되어 제가 정말 궁금한 질문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또 라브리 간사들이 어떻게 손님들을 섬기는지도 옆에서 보고 듣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새 차원: 진리를 향한 ‘다른 접근’의 실마리를 찾다
3개월 동안 저는 창조주/신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 논증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결국 유신론 세계관이 윤리, 자유의지, 우주의 기원, 인간의 독특성 등 세상을 설명하는 데 더 합리적인 관점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이성적인 확신과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더욱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나 삼위일체 교리 같은 명제적 사실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살아계신 인격적인 신을 알고 그분과 개인적 관계를 맺는 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성적인 접근뿐 아니라 다른 차원의 접근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베리타스 포럼을 통해 알게 된 교회를 다니며 ‘다른 차원의 접근’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중 한 분은 이성적인 질문보다 ‘죄의 문제’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데 더 큰 걸림돌이 된다고 직언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상했었는데, 그 말을 곱씹을수록 제가 어쩌면 정직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이라는 명분과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의 실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나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이 가능하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만나주셔야 한다는 생각조차 교만한 전제이며, 이것이 어쩌면 기독교가 그렇게도 중요하게 가르치는 인간의 자기중심성, 즉 죄일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올해 5월에 있을 ‘제2회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강연자이신 제임스 스미스(James K. A. Smith) 교수님을 공부하며 신앙에 대한 또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을 넘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 무언가를 예배하는 것이고 이 행동들이 습관이 되어 역설적으로 우리의 영성을 형성한다는 통찰력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머리’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도 모두 포함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속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나의 행동과 습관들이 어떻게 날 형성해 왔는지, 그리고 이제 어떤 습관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더욱 배울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복잡한 여러 생각이 정리되면서 제게 베리타스 포럼의 의미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베리타스 포럼은 기독교 변증학의 대중화를 통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를 만난 후 지난 1년 여간 정말로 큰 배움과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임은 저를 사랑으로 받아주고 질문할 수 있는 용기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끊임없이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아울러 언젠가 다른 찾는이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과 꿈을 주었습니다. 이 소중한 포럼과 복된 공동체에 저 같은 모든 찾는이들을 진심을 담아 초대합니다.

 

이성진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스태프로, 중단 없는 진리탐구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