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호 3인 3책]

잠실동 사람들
정은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 2015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아마도 드라마 <SKY캐슬> 이야기를 최근에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 ‘사회 고발극’으로 시작한 이 드라마를 두고서 한편에서는 교육과 입시제도, 인간의 욕망에 관한 토론이 벌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입시 코디네이터 문의가 급증했으며, 어느 학원에는 ‘SKY캐슬 반’이 등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했던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고꾸라졌다. 악의 화신과도 같았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은 감옥으로, 영재 어머니와 혜나를 희생양 삼은 ‘SKY캐슬’ 사람들은 느닷없는 회심과 간증을 쏟아내며 더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지막회에서 우양우는 이런 말을 한다.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우리가 바꿀 순 없잖아? 이 살벌한 시스템 속에서 울 아들이 굳건히 버티게 사랑 듬뿍듬뿍, 아주 오지게 쏟아주는 게 우리 몫이야.” 

결국 드라마는 계급과 교육 등 우리 사회 변화에 관해 고민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비웃듯, 모든 문제의식을 시멘트로 발라버리고, 그 자리에 개인 회심과 가족의 행복 추구라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영롱하게 박아버렸다. 그 결과로 적당하게 정의롭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교양과 가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만의 ‘SKY캐슬’은 영속할 것이다.

이런 결말은 일면 현실적이기도 하다. 이미 계급화되었고, 그 계급을 상속하려는 욕망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 사회에서 ‘SKY캐슬’이 붕괴했다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결말에 수긍해야 할까?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자본에 부모의 사랑까지 듬뿍듬뿍 오지게 받은 ‘캐슬 키드’들과 그 부모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을 우리가 바꿀 순 없”으니 그저 자족하며 살면 되는 것일까?

《잠실동 사람들》은 드라마 <SKY캐슬>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소설이다. 잠실에 있는 세 개의 고층 아파트 단지(엘스, 리센트, 트리지움)에 사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과, 그곳 가사도우미, 대학생, 학습지 교사, 영어 과외교사 등(이들은 아파트 단지 인근 빌라촌이나 시장 근처에 산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었다.

왜 하필 ‘잠실동’일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잠실동은 “70년대에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조성했던 5층짜리 아파트 단지 네 개를 모두 밀어버리고 30층에 가까운 고층 아파트로 가득 채운,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전형과도 같은 동네”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재현하는 한국인의 ‘문화와 가치관’이라는 건 뭘까? 작가는 특히 ‘교육’에 주목했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는 지환 엄마 김수정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부모보다 자녀의 계급이 더 높아지길 바라는 욕망이 ‘잠실동’으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은 불광동에서 살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리센트 아파트 33평 전세로 잠실동에 입성하여 두 아이 교육에 전념하는 지환 엄마 김수정의 말로 함축된다. “마음은 언제나 대치동에 가 있었다.” 그렇다. 아무리 날고뛰어도 잠실동은 대치동 아래 ‘중간 계급’일 뿐이다. 잠실동 아파트 주민들이 인근 빌라촌 주민들을 무시하듯, 대치동 사람들에게 “잠실 애들”은 학원 수준 떨어뜨리는 민폐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치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일까? ‘SKY캐슬’이 계급적 욕망 성취의 궁극일까? 어쩌면 세상은 이미 ‘스카이캐슬’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을 욕망하는 ‘잠실동’ 사람들과, 그곳에서 밀려난 ‘원주민’으로 형성된 거대한 피라미드일지도 모른다. <SKY캐슬>에서는 피라미드가 상징적으로 부서졌지만, 현실에서는 위풍당당하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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