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호 3인 3책]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백소영 지음
뉴스앤조이 펴냄 / 2018년
                                                    
지난 구정, ‘좋은 게 좋은’의 끝판왕인 친척 모임 중에 배 두들기던 먼 친척오빠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야, 너는 메갈이야, 페미니스트야?”

시선 쏠리는 소리가 (쫘아악) 생생히 느껴지는 가운데 당황/황당한 감정도 느낄 새 없이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소리가 머리에 반복적으로 맴돌았다. 진정한 고수는 질문으로 답한다 했던가! 호기심과 우려의 눈길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덤덤하게 물었다. “메갈은 뭐고 페미니스트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오빠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우월주의고 메갈은 그냥 못생긴 애들이 하는 거 아냐?”
“… … … … …”

친척 모임 분위기가 너무 좋지만 않았다면, 아니 내가 좀 더 용기 있었다면, 아무말잔치인 줄도 모르고 막 던지는 질문과 무례한 말들을 무시해 버렸을 텐데, 어째서 인내를 장착하고 좋은 말로 설명을 했던 건지…, 3월호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분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주제가 ‘페미니즘’인 만큼 ‘친절히’ 말해줘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이 있었다. ‘친절하고 부드럽지’ 않았을 때, 틀렸다는 말을 하려고 막 던지는 사람들이 내 ‘태도’를 꼬투리 잡아 이야기 자체를 거부할까 봐 솔직히 신경 쓰였다. 그러나 맥락 없고 뜬금없고 무례하기까지 한 말들에 나의 귀한 인내심과 친절함을 사용해야 하는가는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묻는 사람도 스스로 제대로 질문하고 있는지, 무례하진 않을지 미리 고민하고, 또한 상대의 친절함을 당연히 여겨도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셔야 하는 거다!) 적어도 질문하려면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찾아보고 묻되, 혹시 정보도 없고 고민도 안 했다면 최소 예의만큼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사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이 같이 갈 수 있느냐’를 두고 여기저기서 말하지만 정작,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상태·단계에서 소모적 논쟁만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늘 맥락 없는 비난과 무례한 질문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비한, 친절한 마음으로 추천하는 이 달의 책은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이다. 백소영 교수가 청어람ARMC에서 강의한 내용에 살을 붙여 책으로 엮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페미니즘의 갈래를 소개한다. 또 기독교와 페미니즘이 유기적으로 엮일 수 있는 지점을, 성경이 말하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와, 현재 우리의 삶을 다루는 사회/윤리학을 통해 의미 있게 짚어낸다.

“성경을 우리는 기독교 경전이라고 고백합니다. 경전, 경줄이 되는 책이란 의미입니다 … 네, 베 짜기에요. 성경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을 경줄 삼아, 자신들의 삶과 언어로 위줄(가로줄)짜기를 해 놓은 책이죠. … 사회학이 작동하는 부분은 바로 이 위줄에 있습니다.” (13쪽)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제목이 말해주듯 “기독교와 페미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함이요, 따라서 맥락 없는 질문은 안 할 수 있게 됨이 또 하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내지 않고) 친절하게 말하듯이 쓰여서 쉽게 읽힌다. 불친절을 불평하는 누군가에겐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이 정도 책도 안 읽고 계속 맥락 없는 질문을 한다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였던 빌닷의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단지 축복의 말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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