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호 3인 3책]

여성은 인간인가?
도로시 세이어즈 지음 / 양혜원 옮김
IVP 펴냄 / 2019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최근 뉴스가 연일 뜨거웠다. 이번엔 인기 아이돌 가수이자 사업가인 승리의 성접대 카르텔과 그 절친들의 단톡방 내 몰카 동영상 공유 및 유포가 수많은 뉴스를 뒤로 하고 단연 돋보였다.

누군가는 이 사건이 다른 더 중대한 사건을 덮어 버린다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 역시 ‘더 중대한 그 사건’에 비해 결코 뒤처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건의 내용이야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까지 다 퍼진 마당에 다시 복습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저지른 불법과 성범죄의 내용이 사실 새롭지도 않다. 다만 순진하게도 매번 적응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여성’은 아직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성차별’이니 ‘성평등’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말들은 참 고급지고 완곡한 표현이다. 그래서 못 알아듣는 건가? 그냥 까놓고 말해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인간 취급을 하지 않으니까 여성도 인간이라는 걸 좀 알아라, 제발 알아줘라, 이제 좀 알아먹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표현들이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개인의 욕망과 개성과 의지가 살아 숨 쉬는 인간이니 응당 인간으로 대하라는 ‘비명’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도 살기 좋아졌다는, 여권이 하늘을 찌른다는 불평마저 들리는 이 나라에서 여성은, 아직도 누군가의 성적 만족을 위해 ‘대줄’ 수 있는 물건일 뿐이다. 원치 않는 동영상에 찍혀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돌려보면서 모욕을 줘도 되는 인간 이하의 ‘것’일 뿐이다. 피해자이면서도, 사람들이 정한 ‘피해자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는 경우엔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고, 또한 ‘피해자 증명’을 해내야만 하는 ‘꽃뱀’이다. 이렇게 여성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 어쩌다 발생하는 몇 건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다반사다.

솔직히 말해서, 도로시 세이어즈의 짧은 에세이 두 편을 엮은 책 《여성은 인간인가?》를 신나게 소개하려던 차에 위 사건들을 접하면서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원래는 그녀의 예리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통찰을 얻어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버텨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시대 배경의 한계는 다소 있겠지만) 세이어즈의 글은 위트 넘치는 미러링과 촌철살인 팩트체크를 통해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여성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누가 읽어도 납득이 갈 만큼의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여성혐오를 들춘다. 그녀는 세상이 이러니 적당히 눙치지 말고 명확히 알자고, ‘여성은 인간’이기에 여성을 넘어 무엇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기호와 선호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현실은 아득하지만, 다시금 가슴이 뛰었었다. 그런데 정말 해도 해도 우리의 현실이 너무 후지다 보니 의욕이 꺾인다.

세이어즈는 힌트를 남겼다. 이런 현실은 놀랍지 않다면서, 여성을 인간으로 대한 사람은 성경에서도 예수님 한 사람 밖에 없었다고.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들, 앞서 온 선지자들, 또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여성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묻고 싶다. 그때도 지금도 여성은 인간이 아니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현실인데, 우리를 인간으로 대하셨다는 한 분 예수님께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분은 정말 여성들의 절망 속에 함께 계신가? 그렇다면 어디에 계신가.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심에스더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겨하는 프리랜서 성과 성평등 강사이자 의외로 책 팟캐스트 〈복팟〉 진행자. SNS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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