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호 평화를 읽다]

평양의 말글살이
자기들도 열심히 딜을 하다가 그 딜을 만들어준 남쪽에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건 무슨 경우인가. 그러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 “실천적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은 또 뭔가.

알아서 해석해주길 바라는 속셈은 읽힌다. 움직임을 이르는 말만 골라놓으면 ‘… 되라’ ‘옹호(하라)…’ ‘실천적 행동…’  ‘… 용단을 내려’ 달라니, 이건 뭔가 부탁하는 판이다. 그러면서 짐짓 남쪽에 일침을 가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지랖’에 대해 못 들은 척한 것은, 그걸 거창하게 ‘노 딜’을 안아 온 수령의 면을 좀 세워보려는 내부용 포장지로 간파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이쪽이 알아서 속내를 파악해준다고 해도 평양이 말과 글 버릇을 안 고쳐도 되는 건 아니다. 이전 정권까지 쓰던 ‘역적 패당’이나, ‘잠자코 앉아 뒈질 날이나 기다리’라는 유의 거친 언사를 멈춘 것은 진전된 태도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북측이 국제사회에서 ‘존엄’을 인정받으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알아서 속내를 짚어주는 분석가들보다 자유주의 세계의 주권자인 대중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말과 글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오랜 적대 관계와 극렬한 군사적 대결에서 나온 거친 언사들은 혐오를 생산해 내고, 그걸 부추기는 정치꾼들이 득실거리는 기형적 정치가 고통의 시간을 길게 늘이고 있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 어긋난 말 한마디가 대통령 임기 단위로 세월을 날려 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쪽의 고통이 더 크고 길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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