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바이스〉(2018)와 〈그때 그들〉(2018), 그리고 ‘지금 우리’

‘조용히 있다가 사고치는’ 그 사람, 딕 체니
조지 W. 부시의 만행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요.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를 응징하겠다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 대량학살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모두 부시 정부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빅쇼트〉(2015)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의 최근작 <바이스(Vice)>(2018)는 아들 부시 대통령의 배후에서 악(Vice)을 도모한 실세로 부통령(Vice president) 딕 체니를 지목합니다.

“조용한 사람이 실상은 가장 위험하다. 그는 가만히 있다가 기회를 잡아 모든 것을 파괴한다” 였던가요. 〈바이스〉는 어느 ‘무명씨’의 말을 인용한 문장으로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의 행적을 요약합니다. 이후로 줄곧 은유를 사용하는데요. 정치를 낚시에 비유하고, 체니가 주도해서 개악한 법안들을 만찬 코스 메뉴로 구성해서 요리사가 소개하고, 내각 구성의 실상을 보드게임으로 보여주는 식입니다.

낚시하는 사람이 조용히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듯이, 체니는 숨어들어야 할 때와 낚싯대를 휘둘러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백악관 최연소 수석으로 이름을 날리고 차기 대권주자 서열이 한참 올라가던 시절, 딕 체니는 정계를 은퇴하는데요. 보수적인 공화당 후보로 나서기에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딸 메리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그가 물러선 이유가 선거에 질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바이스〉의 딕 체니에게 혹시 연민을 느낄 수 있다면 그가 아버지로서 보여준 이 결단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지 W. 부시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딕 체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번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끼를 던져야 할 타이밍이었죠. 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조건을 내건 체니의 미끼를 – 체니 말에 따르자면 -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이 지상최대의 관심사인” 아들 부시는 덥석 물어 삼킵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사실상 수장으로서, 체니는 부시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바꾸어 갑니다. 마케팅 전문가와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고, 변호사들을 거느리며 교활하게 법 위에 올라선 그를 보고 있자면 법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결국 강자를 위해 작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하게 됩니다.

부통령직을 수락하면서 사임한 회사 ‘핼리버튼’에서 체니는 예상보다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 이후, 유전 서비스와 건설 회사인 핼리버튼의 주가는 500% 상승했다는 후문입니다. 재치 있는 영화 〈바이스〉는 막바지에 다시 한 번 은유를 동원하는데요. 체니의 정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심장이식 수술로 표현했어요. 부시 정부의 숨은 권력은 이라크 참전 용사였던 한 젊은이의 심장을 떼어 달고 살아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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