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 큰 이슈가 된 지 1년입니다. ‘예멘 난민 수용 반대’ 국민청원에서 보았듯이, 난민 반대 목소리는 크고도 드셌습니다. 물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환대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걸까요? 난민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한 뼘이라도 더 넓어지고 깊어졌을까요?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혐오를 부추기던 움직임은 지금은 무얼 불쏘시개 삼아 불을 지르고 있을까요?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응을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은 있었던가요? 한국교회는 성경적이면서도 지혜로운 ‘나그네 환대’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보았을까요?

국내 거주·체류 외국인이 240만 명에 이르는 ‘이주(migration)의 시대’를 맞아,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피할 수 없게 된 오늘날 난민·이주는 더 이상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8년 8월호 “우리 곁에 온 난민難民”에 이어, ‘난민’을 다시 커버스토리 주제로 삼은 이유입니다. 

첫 꼭지는 한국에서 활동가와 예술가로 일하며 살아가는 난민 여성 미야와 알리야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위협, 그로 인한 두려움, 안전에 대한 갈망이 생생합니다.(24-32쪽)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여 인정받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는, 한국의 법제도 및 난민정책을 비판적으로 살펴본 이일 변호사의 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33-37쪽)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의 김성인 대표는 인권감수성이 결여된 공급자 중심의 환대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들려줍니다. 선교 이벤트나 ‘인권팔이’ 목적의 환대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무겁게 다가옵니다.(42-57쪽) ‘정치적 난민’ 가족사를 지닌 김종대 리제너레이션무브먼트 대표는, 난민과 선(先)주민의 평화로운 공존 사례로 미국 클락스턴 시를 보여줍니다. 여의도 크기의 이 작은 도시는 해마다 1,500여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지요.(58-69쪽) 이민·난민 정책 전문가인 한경준 테네시주립대 교수는 세계적 난민 현상에 대해 한국 정부와 지자체도 정책적·행정적 대비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70-80쪽)

이밖에도 수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이 처한 현실을 전하는 전수연 변호사의 인터뷰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8-21쪽)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어떤 증명서나 신분증을 가질 수 없는 이 아이들의 삶이 영화 <가버나움>의 열두 살 소년 자인과는 얼마나 다른 걸까요. 생각해보면, 헤롯을 피해 수 년간 이집트에서 체류했던 예수님도 난민이자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 아니었을지요. 난민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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