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 사람과 상황]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인권 지킴이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12살이 될 때까지 출생 기록조차 없이 자란 미등록 아동 ‘자인’을 중심으로 한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이 작년 개봉 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올 초 한국에도 개봉하면서, 미해결로 누적되어 온 국내 미등록 아동 문제가 언론에 다시 한번 조명되기도 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있던 지난 5월 3일에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성명을 통하여 “아동 인권의 시작은 출생이 공적으로 등록되는 것”이라면서 “법적 지위나 국적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과 신분을 증명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앞으로 출생등록제도에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겠다”면서 “아동 권리 보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하여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당사국은 이 분야의 국내법 및 관련 국제문서 상의 의무에 따라 이러한 권리가 실행되도록 보장하여야 하며, 권리가 실행되지 아니하여 아동이 무국적으로 되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위 내용은 54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의 내용으로, 아동의 출생과 연관된 (인간의) 기본권리를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 협약에 1990년 9월 25일 서명하고 이듬해 11월 국회에서 비준한 당사국으로서, 협약의 내용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는 모든 아동이 최소한의 권리인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제도조차 없는 형편이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출생신고제도는 부모(특히 한국 국적의 친모)의 의지에 의존한다. 난민과 미등록 이주외국인의 자녀에게는 아예 등록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어 있다. 미등록 아동은 당연히 보육이나 교육과 관련된 어떤 공적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레바논 현실에 기반한 영화 〈가버나움〉이 폭로하고 있는 아동 기본권의 문제는 한국의 현실에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9월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미등록 이주 아동도 출생신고는 할 수 있게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사한 법안 발의가 과거에도 있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러 시민단체가 연대하는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www.ubrkorea.org)는 보편적출생신고에 관한 입법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더 들여다보기 위해 전수연 변호사를 만났다. 전 변호사는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 전반에 관한 활동을 하는 공익법센터인 어필에서 일한다. 그의 의뢰인 중에는 미등록 아동을 비롯하여, 그와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미등록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쫓겨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 "대략적으로 추정하기에 국내 미등록 아동이 2만 명 정도라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일 수가 없다. 그 두 배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영화 〈가버나움〉 덕분에 국내 미등록 아동 문제도 최근에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사안에 비해서 여전히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미등록 아동 문제가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자 자녀의 문제로 부각되다 보니, 일반적으로 큰 관심을 못 받고 묻히는 것 같다.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이 과거에 미등록 이주 아동의 보편적 출생신고나 복지 관련 입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으나, 이 의원의 배경 때문에 반감을 사기도 했었다. 현재 발의된 보편적출생신고에 관한 법안은 결이 두 가지다. 대한민국 부모를 둔 아동조차 부모가 하지 않으면 출생등록이 안 되는 문제를 방지하려는 법안과, 대한민국에서 출생하면 부모의 국적을 불문하고 출생신고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오늘 중점적으로 이야기 나눌 미등록 아동 이슈와 직접 관련이 있는 쪽은 후자인데, 아동의 부모인 미등록 이주자까지 한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냐며 반감이 있다. 그래서 적극적인 홍보가 어려워서 안타깝다. 밖에서 공감을 얻어야 일이 빨리 진행될 텐데.

― 국내 미등록 아동 규모가 (말 그대로 ‘미등록’이다 보니)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인 거 같던데.
대략적으로 추정하기에 국내 미등록 아동이 2만 명 정도라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일 수가 없다. 그 두 배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자 신분, 소위 불법체류자인 경우가 많고, 아동이 어떤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황 파악을 위해서라도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한국 국적의 부모만 아이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면 한국에서 출생등록 자체가 불가능하다. 외국인 부모가 병원에서 의사가 떼어주는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관할 행정기구로 가면 ‘특종신고서류편철장’이라는 곳에 편철(문서나 신문 따위를 한데 모아 묶음)만 해둔다. 말 그대로 출생증명서를 편철만 하고 수리증명서를 발급하는데, 이것은 출생사실 증명이나 신분 등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공문서로서의 기능은 전혀 없다.

― 보편적출생신고에 관한 법을 만들 때 참고할 외국 사례가 있다면.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서방 나라들과, 아시아에서는 태국이 현재 미등록 이주자의 자녀를 포함하여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 우리 정부는 현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도 있는데.
한국은 1991년 아동권리협약에 가입이 완료됐고, 이는 우리 헌법 제6조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협약의 내용을 이행해나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 이후로 아직도 보편적 출생신고제도는 도입되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의 무심함은 물론이고, 법무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국적 취득과 출생신고는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출생등록제도가 도입되어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면, 그것만으로도 국민으로 추정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는 것이 법무부의 논리다. 국적 취득과 출생신고는 별개의 제도다. 외국인이 현재 국적을 얻으려면 절차대로 귀화 신청 후 제출 서류들을 내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조건이 꽤 까다롭다. 일정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6천만 원 이상의 금융재산 증명서류 등), 한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하여야 하며, 한국어 능력도 갖춰야 한다.

   
▲ "출입국 재량으로 아동이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추방 조치가 유예된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면 부모와 함께 추방된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앞서 언급한 법안이 원혜영 의원(경기 부천시 오정구)이 작년에 발의한 법안인가?
맞다. 이주자의 자녀라도 출생등록만은 가능하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태국처럼 부모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출생등록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상황에서 절실한 법안이다. 난민의 경우는 특히, 종교적 혹은 정치적 사유 등으로 박해를 받아 피난을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본국 대사관에 갈 수는 없다. 본국 정부로부터의 박해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을 스스로 하기는 누구도 원치 않는다. 따라서 난민 아동의 경우 거의 무국적에 미등록 상태로, 아무런 신분 증명이 없는 상태로 자란다.

― 그럼 도대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를테면 교육은?
미등록 이주 아동들에게는 취학통지서도 날아오지 않기 때문에 (학교 보낼 시기를) 모르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은 받을 수 있지만, 학교장 재량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아동권리협약상 보장되어야 할 교육권이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유치원도 못 다니고 계속 부모와만 지낸 경우가 많아서 어느 정도 나이가 차도 갑자기 학교를 보내기가 어렵다. 가고 싶다고 해도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선의, 즉 개인들의 도움으로만 가능해진다. 유치원이나 학교장이 아동을 긍휼히 여겨 받아주면 갈 수 있고, 아니면 못 가는 거다.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므로 교육비를 온전히 사적으로 지불해야 해서, 경제적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교육기관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부모의 체류 자격에 따라서 교육을 이어가는 정도가 다르지만, 특히 체류 기간이 만료된 부모의 아이여서 미등록으로 자란 아동의 경우, 고등학교(혹은 의무교육인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출입국으로부터 강제퇴거 조치를 당하는 경우도 있어서, 한국에서 태어나 뿌리를 두고 자란 아동의 배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 만약 미등록 이주자인 부모가 추방되는 상황에 처하면 그 자녀는 어떻게 되나.
출입국 재량으로 아동이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추방 조치가 유예된다.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면 부모와 함께 추방된다. 너무 가혹한 처사다. 청소년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육을 받고 한국인으로 자라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문화권으로 추방되는 거니까. 혹시 난민 사유가 있는 미등록 이주자라면 추방 전에 난민 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체류 기간 이후에 하는 신청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남용적 신청으로 해석하여 대부분 접수 자체가 거부된다. 의도가 불순하다고 보는 거다. 한국에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나도 난민 신청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이분들 중에 난민 사유가 있는데도 제도를 모르고 계셨던 분들 경우는 난민 신청 접수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다.

― 그러면 추방 전에 혹시 미등록 이주자가 구금되는 경우에 그 아동은 어떻게 되는지.
아동 구금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도 합법적으로 구금할 수 있다. 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을 구금할 시엔 최후 수단으로서, 최단 기간으로 구금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한 살이건 두 살이건, 부모가 체류 자격이 없거나 어떤 사유로든 외국인보호소에 들어가면 아이도 함께 구금되는 경우가 많다. 관련법상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구금할 수 있어서 구금 기한도 없다. 밖에서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부모가 데리고 있을 경우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기약 없이 시설에 갇힌다.

― 외국인보호소라 말해지지만, 사실상 가두는 것일 텐데.
문제가 심각하다. 재작년에 알게 된 난민 가족 중에 정말 안타까운 사례가 있었다. 난민 신청을 한 부모와 각각 한 살, 세 살 아이 둘이 있는 가족이었는데, 난민 불인정을 받았다.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아빠만 소송을 했다. 체류 자격을 잃은 엄마와 아이 둘은 지하철을 타는 과정에서 바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다. 유모차를 먼저 밀고 나서 교통카드를 찍으려다가 바로 역무원으로부터 무임승차 의심을 받아서 경찰까지 오게 되고, 외국인등록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체류 기한 만료 사실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 엄마와 아이 둘을 변호사로서 접견하러 갔었다. 알고 보니 그 안에서 기저귀와 분유도 제공받지 못했더라. 변호사가 연결되고 나서야 기저귀 같은 물품을 지급했다. 엄마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 젖도 돌지 않아서 아기가 일주일 정도를 굶다가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도 뒤집어졌다고 들었다. 통역이 없어서 말이 잘 안 통하니까 몸에 이상이 있어도 제대로 진료를 받거나 약을 지원받지 못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엄마한테 갇혀 있는 이유를 계속 물어보니까 엄마는 ‘잠깐 소풍을 온 상황’이라고 설명을 했다고. 갇힌 공간에서 세 살짜리 아이가 실수로 저지르는 행동들로 계속 관리자들한테 혼나고, 그렇게 2주 정도를 갇혀 있다가 겨우 나왔다. 그런데 이후에 아이에게 증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변을 못 가리는 증세가 생겼고, 밤에 악몽에 시달려 소리를 지르며 깨는 날이 많아졌다. 보호소 직원과 비슷한 연령의 남성들을 보면 움츠러들거나 피하고. 아동들이 구금되면 어떤 심리적 육체적 폐해가 있는지 보고서로만 읽었었는데, 그 아이 사례를 접하면서 구금의 경험이 한 아이의 몸과 마음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게 되었다.

― 아동 구금이 가능한 시설에 아동 전문가도 없고, 심지어 아동 물품도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 아닌가.
그뿐만 아니다. 구금 시설 내부에는 일체로 연결된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휴게 공간과 방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일과 시간에 아무도 방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게 규칙이다. 아동은 잠도 많이 자야 하고, 위험에 취약한데, 성인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예외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 잠깐 방에 누워 있는 것도 불가하다. 실제로 아이들은 휴게 공간인 딱딱한 나무 테이블에서 놀다가 떨어져 수차례 다치기도 했다. 운동장 사용도 성인과 똑같이 한 주에 두세 번, 한 번에 20분 정도만 이용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세 살 아동의 경우 밖에서 맘껏 뛰놀 수 없었고, 무엇보다 다시 철창 안 공간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운동장에서 다시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마다 길게는 30분씩 울며불며 실랑이하였다. 그러다 보니 보호소 관리 직원에게 하루에 몇 번씩 혼나는 것도 다반사였고. 외국인 보호규칙에 보면 가족방을 만들 수 있고, 1개월 이상 보호되는 아동이 있을 경우엔 아동 나이와 능력에 적합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해야 한다’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서, 실제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서 확인해보면 교육 시설을 이용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사실 아동을 한 달 이상 보호해서도 안 되지만, 장기간 보호를 한다 해도 아동에게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 전수연 변호사 ⓒ복음과상황 이범진

― 그렇게 구금당하는 아동들이 얼마나 있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1년에 한 번씩 자료를 받아보고 있는데, 보호소 측도 아동 구금의 경우는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만, 내가 접한 사례 중에는 세 살도 안 된 아기가 거의 80일 넘게 구금된 경우도 있었다. 보호소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2014-2017년까지 전국 보호소의 아동 구금 통계를 보면 매년 70-90명의 이주 아동들이 구금되었다. 이 중 1개월 이상 장기 구금 아동은 3년간 20여 명이 있었다.

―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수치만 보면 그렇다고 큰 문제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선은 수치로만 비교되는 점이 아쉽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과 이주 아동 구금금지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 작업을 같이했었는데, 수치나 구금 규모가 실제 입법 과정에 꽤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구금되는 대부분의 아동이 평균 일주일 정도 구금된다고 하면, 길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건 한 달이건 아동은 교도소와 같은 시설에 구금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구금이 아동에게 미치는 파괴력은 성인에게 미치는 영향과는 파급 효과가 다르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더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때문에, 같이 구금된 부모가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 등의 감정을 고스란히, 혹은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아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거주지로 보호소 직원이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확인할 수도 있고, 아니면 보호 당사자가 출입국 관리소로 정기적으로 출석할 수도 있다. 이런 대안적 방식을 실현하고 있는 해외 국가들도 있다. 캐나다의 경우, 신원이 확실하면 거주지 주소를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당국에 보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 미등록 아동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이와 연결되어 있는 국내의 여러 문제를 확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등록 아동도 상황이 다양하겠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결이 다른 두 명의 미등록 아동 사례가 있다. 하나는 한국 국적의 아빠와, 중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가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인도적 체류 지위만 받은 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엄마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의 출생등록 문제다. 아빠가 한국인이니 출생신고를 하려고 주민센터에 갔는데, 엄마 신분이 확인이 안 되어서 거절당했다. 중국 대사관에서 해외에서 난민 신청을 한 엄마의 여권을 갱신해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주민센터에서는 현재 체류지인 일본이 발급한 인도적 체류비자는 신분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현행법상 법적 혼인 상태가 아니면 친부라도 아이 출생신고를 단독으로 할 수 없고, 생모만 가능하다. 이 사안처럼 친모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유전자 검사증명서, 혼인확인서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위 사례의 아빠는 친모 신분증이 없어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여, 법원에 청구했던 친생자출생등록 신고도 기각당했다.
두 번째 사례는 베트남 이주 여성과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미등록 상태가 된 경우다. 엄마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이주 여성이었는데, 이혼 후 체류 자격이 박탈된 상태에서 얼마 안 되어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이 심각하여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고, 모자의 상황을 딱히 여긴 어느 분이 아이와 엄마를 모두 자기 집으로 데려가 돌보셨다. 이혼한 이주 여성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류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아이 엄마도 아이를 두고 본국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홀로 한국에 남은 아이는 무국적에 미등록 상태였는데, 친부를 찾아가 아이의 출생등록을 위한 유전자 검사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후 부산의 ‘이주와 인권 연구소’ 이한숙 소장님께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고, 출입국에도 아이의 딱한 사정을 말씀해주셔서 어렵게 F1비자를 취득하고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아이 모친은 베트남 국적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앞으로도 한국 교육을 받으며 자라갈 아이에게는 국적보다도 당장 한국에서 체류할 자격이 시급했다. 이 아이는 주변에 선의를 가지고 지원해주는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만난 정말로 운이 좋은, 그렇기에 이례적인 경우일 뿐이다.

―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좋을까.
앞서 이야기했던 사례들, 이외 개별 사건들을 해결해가면서 제도를 다각도로 바꿔가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원혜영 의원의 법안에는 국내에서 외국인도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출생등록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통보 의무를 면제해주는 내용도 들어 있다. 현재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공무원의 통보 의무가 있어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만으로는 출생신고에 대한 실질적 접근성이 보장될 수 없다. 원 의원의 법이 통과되면 미등록 이주민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출생등록을 할 수 있게 된다.
출입국 공무원은 아무래도 역할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출국과 입국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법이라, 이를 직접 이행 및 집행하는 공무원 입장은 아무래도 외국인들에 대해 엄격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충분히 든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 단체들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없는 길을 트는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4년간 어필에서 일하면서 사실은 좋은 결과로 마무리된 사건들이 많진 않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아동을 비롯한 이주 구금 현실은 그대로이고, 우리나라는 1962년에 무국적자지위에관한협약을 가입한 국가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이주 아동의 출생등록 문제도 해결 안 된 상태다. 난민 인정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난민 불인정 관련 소송에서 승소가 1년에 10건도 안 된다. 소송으로 가면 결국 난민임을 입증해야 하는 증거 싸움으로 가는데, 결국 제출 문서의 진본 여부를 사실 조회하느라 1심에서만 1년을 끄는 경우도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본국을 탈출할 수밖에 없고, 본국의 주목을 받고 있기에 공문서 등을 발급받는 데 제한이 있는 난민들 취약성이나 특수성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된다. 난민들은 제출 증거가 진본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를 제출하는 등의 끊임없는 입증을 해야 하는데, 이는 당사자를 매우 탈진시킨다. 

―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IMF 사태의 여파가 심각할 즈음 대학에 입학하고, 그 여파가 더욱 심화될 즈음 졸업했다. 학부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는데, 취업해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이중전공하거나 관련 대학원 공부를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아무 대책 없이 지냈던 나는 대학 졸업 후에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적인 방황이 심했던 기간 동안 마치 내가 부유하는 먼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까지의 제법 안정적인 구조 안에서, 노력하면 어느 정도 결실이 따라오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구나 싶더라. 막상 나를 안정적으로 보호해주던 구조에서 벌거숭이 몸으로 내쳐진 듯한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암흑 속으로 떨어졌던 시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조 밖으로 밀려나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눈과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구조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구조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막연한 생각을 했다. 운 좋게 로스쿨에 들어갔고, 여전히 졸업 후엔 공익적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만, 실제 공익변호사들이 즐겁게 일하는지가 궁금해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실무 수습을 신청했는데 또 운이 좋게도 실무 수습을 할 수 있었다. 2주라는 시간이 하루, 한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소중했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난민 관련 소송 업무를 했었는데, 이미 어필에 들어올 준비를 그때부터 했던 건가 싶다. 그 당시에 어필은 초창기여서 존재를 잘 몰랐었다.

   
▲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들. 맨 오른쪽이 전수연 변호사. (사진: 어필 홈페이지)

― ‘이런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기독인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는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기에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다.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우리의 악함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부인되거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들이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들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주님의 선한 통치가 이뤄지도록, 통치의 지경이 넓어지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사실은 이주민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는 존재하나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대우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이미 많다. 멀쩡히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도 살기 어려운데, 하물며 출생 기록조차 없이 말 그대로 ‘숨만 쉬며 살아가는’ 아동들은 어떨까. 생김새만 다를 뿐,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태생이 한국 아이다. 눈 감고 들으면 한국 아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등록’이라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불안인지 짐작이 안 간다. 나도 문자로만 논리로만 미등록 아이들을 이해해왔었지만, 아이들과 부모를 만나면서 비로소 실감한다. 최근에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들었다. 미등록 아이들이 어떤 사고나 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출생신고도 된 적이 없기에 사망신고도 못한다고 한다. 부모 심정이 어떨까. 삶의 시작과 끝이 기록조차 되지 못한다면, 그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삶은, 정말 존재했던 걸까. 

정리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