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 사람과 상황] 피해자 중심의 성폭력 사건 해결을 이끈 사라 웽어 쉥크 AMBS 총장

   
▲ 사라 웽어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오지은

사라 웽어 쉥크 총장은 미국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서신학대학원(Anaba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 AMBS)에 2010년 부임하여 10년간 재임해왔다. 교육학자인 쉥크 총장은 남편과 함께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1977년부터 1983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학생 및 교사로 있었다. AMBS 부임 전까지 이스턴 메노나이트 신학교(EMS) 교수로 15년간 재직했으며, 선교와 교회 개척, 교수법과 행정 분야에 걸친 쉥크 총장의 경험은 독특한 리더십 은사의 조합으로 나타났다.

그는 부임 1년 후, 15년 전 일단락된 세계적인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재조사하고 다시 밝혀내는 결정을 내린다. 1997년 세상을 떠난 요더는 이미 그 전 해에 교회의 공식 징계 절차를 거친 뒤 복권된 바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쉥크 총장은 피해자 중심의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요더 문제를 다시 재조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AMBS의 공식 사죄가 이뤄졌으며, 애통과 고백의 예배가 드려졌다. 안팎의 반대와 비판을 무릅쓴 이 결정 이후 이뤄진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증언(말하기) 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은 ‘진실이 드러났을 때 정의가 이뤄졌음을 느꼈다’고 비로소 고백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그들은 ‘정의가 이뤄질 때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인터뷰는 쉥크 총장이 강연 차 방한했던 5월 중순 공덕역 인근 카페에서 있었으며, AMBS 이사로 동행한 허현 목사가 통역을 맡았다.

― 첫 한국 방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친분을 맺으신 적이 있는지요?
한국교회와 직접 교류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현재 우리 신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두 명 유학중인데, 과거에는 더 있었지요. 오래 전에 김홍석 형제 부부가 버지니아의 공동체에서 같이 살았었지요. 현재 허현 목사님이 우리 신학교 이사로 섬기시는데, 한국인 졸업생은 지난 15년 동안 16명 정도 나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부임한 2010년 이전에 졸업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연결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메노나이트 저널에 실린 글을 통해 한국 학생들이 뭘 하는지는 읽을 수 있었지요. 졸업생 중에는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orea Annabaptist Center, KAC) 총무를 맡은 분도 있고,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 MCC)에서 사역하는 분도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한국에서 리더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지난 5월 13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강연 중인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이범진

― AMBS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학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설립한 지 60년 된 신학교입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를 섬기는 기관이자, 나아가 전 세계 아나뱁티스트들을 섬기는 교육기관이지요. 북미에서 다른 어느 신학교보다 가장 먼저 평화학을 가르쳐온 학교입니다. 사람들은 존 하워드 요더의 책을 많이 읽었겠지만, 실은 요더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졸업생 2,500명이 41개 나라에서 사역 중인데요. 우리의 미션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화해 사역에 참여할 수 있게 리더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로 훈련하는 M.Div. 과정이 있고, 평화학 석사 과정이 있으며, 기독교 교육 석사 과정으로 볼 수 있는 ‘크리스천 포메이션’(Christian Formation)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전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위 프로그램인 M.Div. Connect와 M.A. in Theology and Global Anabaptism을 신설했지요. 이와 같은 신학 훈련을 통해 우리는 초기 예수운동에서 나타난,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제자도를 오늘 우리 시대에 재천명하는 사람을 세우는 데 목표를 둡니다.

― AMBS 외에 다른 아나뱁티스트 교육기관은 없는지요?
다른 학교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AMBS가 가장 오래된 학교라서 보통 메노나이트 신학교 하면 여기를 생각합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교(Eastern Mennonite University, EMU)도 그중 하나인데, 여기서도 목회자를 양성합니다.

― AMBS라는 이름에도 나오듯, ‘아나뱁티스트’와 ‘메노나이트’를 함께 사용하거나 따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다른지요? 브루더호프나 아미시 등도 다 같은 아나뱁티스트인지요?
칼뱅주의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는 것처럼,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일어난 이후 이 운동에도 다양한 지류가 생겨났습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제도화된 기독교 국가 체제를 벗어난 ‘자유 교회 운동’ 혹은 ‘민주 교회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 아래에 메노나이트나 아미시, 브루더호프 등 여러 지류들이 있는 것이지요.

― 공식적으로는 아나뱁티스트가 대내외 명칭인 셈이군요.
그렇지요. 아나뱁티스트는 하나의 큰 우산이라고 보면 됩니다. 장로교라는 우산 아래 다양한 교단이 있듯이 말이지요. 다시 말해, 아나뱁티스트는 장로교와 같은 큰 우산이고, 그 아래에 메노나이트, 브레드린(형제회), 아미시, 후터라이트 등이 핵심가치를 공유하는 교단적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한국교회의 교단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제도적 기구라는 맥락에서는 상통합니다.
 

   
▲ "오늘날 젊은 세대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교회에서 느껴지는 권력지향성이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이 세대 중에도 예수를 21세기에 재천명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성서를 평화적으로 다시 읽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과거 아나뱁티스트는 핍박을 받았던 소수 그룹이었는데요. 오늘날 북미주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사회와 교회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교회가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운동, 교회가 권력을 소유하지 않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기독교 국가 체제에 대한 큰 반동이었던 셈입니다. 그 영향으로 국가로부터 분리된 교회가 생겨났고, 아나뱁티스트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자유 교회 전통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서 한 가지로만 이야기하긴 어렵기 때문에, 메노나이트가 크고 영향력 있는 그룹이라고 하여 아나뱁티스트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정치적으로 (진보-보수로) 양분되어 있는 미국 상황에서 메노나이트는 양극화되어 있는 것들을 화해시켜 나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권력지향적이고 권력을 이용하기도 하는 기독교 상황에서 그들은 신선한 영향을 주는 메시지와 실천을 펼쳐왔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교회에서 느껴지는 권력지향성이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이 세대 중에도 예수를 21세기에 재천명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성서를 평화적으로 다시 읽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교회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와 소비주의 중심으로 흐르면서 세상과 별 차이 없이 동화되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두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메노나이트로 돌아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는 메노나이트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 듯합니다.
오늘날 북미의 대다수 교회는 예수를 가르치기보다 정부가 던진 정치적 이슈로 갈라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하는 기관으로 AMBS의 미션을 재강조하자면, 예수의 가르침과 삶, 그리고 21세기에 재천명하고 따르려는 예수 제자도입니다.

― 미국뿐 아니라 한국교회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점점 더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현실입니다. 가족 전통과 가정 교육을 중시하는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는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수하는지요. 총장님 가정을 예로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
다시 메노나이트를 예로 들자면, 일괄적인 하나의 방법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잘 관찰해보면, 메노나이트는 가족끼리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독일, 러시아의 메노나이트들이 심한 핍박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연대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신자의 세례(침례)라는 것이 자연스레 가족 및 교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젊은이들이 예수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쪽으로 북돋아주기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어떻게 기도하는지 가르쳐주었으며, 저를 교회에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기도를 함께하기도 하지요. 생일에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야기해주는데, 아이의 삶이 개인을 넘어 그 이전의 신앙 공동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해줍니다. 교회의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굉장히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숲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서 이야기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큽니다. 여기서 아이들의 개인 정체성과 공동체를 연결 지어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고 세상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공동체를 통해서 심어주는 것이지요.

   
▲ "요더는 지적인 능력이 월등했던 인물로,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능력은 복음 자체의 능력이지, 요더의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아나뱁티스트는 평화신학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혐오와 폭력, 테러, 양극화가 드세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나뱁티스트의 평화신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반응하는 건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수세기 동안 여러 세대를 거치며 예수의 삶을 따라 어떻게 폭력에 비폭력으로 반응할 것인지 계속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방식을 계속 생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인 차이들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이런 많은 차이들 앞에서 다리를 만들어 넘어가는 것이 평화 만들기의 핵심입니다. 그런 차이들을 넘어다니는 다리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 내 유대교 회당과 이슬람 모스크, 스리랑카의 가톨릭교회에도 테러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이런 폭력적인 세상에서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 인간을 인간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화를 더 알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요더가 이룬 놀라운 평화 연구 업적과, 오랜 기간 동안 행해진 그의 성폭력 사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나뱁티스트 내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항상 선하지도, 항상 악하지도 않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요. 요더는 지적인 능력이 월등했던 인물로,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능력은 복음 자체의 능력이지, 요더의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놓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그 자신이 자기 죄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점이 우리를 실망케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요더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요더는 자기 죄에 함몰된 한 인간이었습니다. 지적으로 너무나 뛰어났기에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논리를 계발했고, 그 능력으로 성범죄가 자신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고 스스로 속였습니다. 제 전임인 말린 밀러(Marlin Miller) 총장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요더의 잘못을 지적하고 이야기했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나름의 또 다른 논리를 펼치면서 사람들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4년간 지역교회의 징계를 받은 이후 요더는 자신이 마치 변화된 것처럼 수려한 언어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지요. 피해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들이 괜찮아하는 줄 알고 그랬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나름의 논리로 설명했습니다.

   
▲ "요더 문제는 대체로 '요더가 죄를 고백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로 정리되었습니다. 마치 모든 과정이 온전히 끝난 것처럼 말이지요.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죄인이 회개함으로써 회복되었다'는 데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가해자의 회개와 회복이 중심이었지 정작 '피해자의 회복'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지요."  ⓒ복음과상황 오지은

― AMBS 총장으로 부임하신 이후에 요더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하셨는데, 총장님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작용했던 것인지요? 요더가 사망한 뒤였지만, 안팎의 반대는 없었는지요?
타임라인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밀러 총장이 요더에게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고, 요더가 AMBS를 떠나 노트르담 대학교로 가서 풀타임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1984년입니다. 요더의 성범죄는 1992년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학교 안에서만 다뤘기에 외부에서는 몰랐습니다. 여성들이 매체를 통해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지역 교회가 요더에 대해 4년간의 징계 프로세스에 들어가기 시작했지요. 1996년에 요더의 징계 과정이 끝나면서 교회는 요더가 되돌아와 글도 쓰고 가르칠 수도 있게 했습니다. AMBS가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1997년에 요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요더 문제는 대체로 “요더가 죄를 고백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로 정리되었습니다. 마치 모든 과정이 온전히 끝난 것처럼 말이지요. 이 이야기의 초점은 ‘죄인이 회개함으로써 회복되었다’는 데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가해자의 회개와 회복이 중심이었지 정작 ‘피해자의 회복’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지요.  
제가 AMBS에 부임한 다음해에 피해자들이 “이건 끝난 일이 아니다. 사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고,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실들이 있었고, 이를 어떤 식으로 처리했으며, 징계 과정은 어땠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더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의 대표(executive director), 즉 한국교회로 치면 교단 총회장과 논의해서 이 이슈를 다시 이야기했고, 요더 사건에 대해 공개되지 않았던 AMBS 내부 처리 과정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피해자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물론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거냐, 죽은 사람을 다시 파내서 부관참시하려는 거냐는 얘기였지요. 요더의 유가족에게 다시 고통을 안겨주려고 하느냐는 말도 들었지요. 
저는 요더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제가 AMBS와 관련이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연결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성이라서 피해자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그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쉬웠던 것은 맞습니다. 요더의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제가 AMBS에 없었기 때문에 직접 관련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MBS는 죽은 조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기관이며 제가 그곳의 책임자로 부임했기에, 책임 있는 조처와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요더 문제를 다시 파고들어가기 시작하자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이제는 그만 하자’고 함으로써 억눌려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많은 피해 여성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정의가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더 문제는 단순히 AMBS 내부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활동 범위가 워낙 광범위했기 때문에 MCC, 메노나이트선교네트워크(MMW), 미국 기독교윤리학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등을 포함하여 다섯 개 대륙에 피해자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피해자들이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평화가 없었는데 이제야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피해자들이 정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 고백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정의가 이루어질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나중에 피해자들이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평화가 없었는데 이제야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 한국교회에도 지도자들의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있어왔지만, 대부분 가해자의 회개와 복귀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피해자 중심의 해결 과정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요더의 성범죄와 해결 과정이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한국교회 상황에 대해 제가 말할 자격은 없지만, 권력에 의한 피해가 자주, 많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상황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권력에 의한 피해는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권력에 가장 강력히 비판하고 대항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목회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힘이 없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권력 오용은 심각한 범죄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뿐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되게 한 말이었습니다. 특히 약한 자들을 핍박하거나 억누르는 일에는 훨씬 더 큰 비판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권력의 오용으로 피해자들이 생겼을 때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말을 우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통역을 맡은 허현 목사, 제럴드 쉥크 교수, 쉥크 총장.  ⓒ복음과상황 오지은

― 한국 사회는 작년 미투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페미니즘을 위험한 사상인양 여기며 염려합니다. 총장님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페미니즘에는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성의 힘을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또 강조하는 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함께 따르도록 부르셨습니다.

― 총장님에게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사고뿐 아니라 몸으로 체화되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하나님의 뜻에 제 뜻이 맞춰지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오늘 하루 내가 예수를 따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합니다. 또한 그 기도 시간에 성령께서 저를 조명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 아래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한 결과,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복음과상황 오지은

―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신앙의 위기나 회의는 없었는지요?
저는 메노나이트 선교사였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개척된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성장했는데, 사실상 오늘날 가장 많은 메노나이트가 에티오피아에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 에티오피아 교회를 오랫동안 섬겼습니다. 아버님은 현재 101세로 생존해 계시지요. 이런 배경 안에서 살아온 제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제가 AMBS 총장이 됐을 때입니다. 총장을 맡게 되는 건 우리 가정에도 어려움이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나서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할 수 없이, 상황에 이끌려서 떠맡게 되는 사람이지요. 그랬기에 그 시기가 매일 아침 예수님을 따르기를 선택하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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