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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화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기사승인 [344호] 2019.07.01  16: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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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4호 커버스토리] '평화 일구는 언어' 가르치는 권세리 평화교육가

   
▲ "화해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입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본명 쉐릴 웰크(Cheryl Woelk), 한국명 권세리. 캐나다 태생의 메노나이트이자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평화교육가이다. 러시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메노나이트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다. 현재 숭실대를 비롯하여 평화대안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작년에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평화와 화해, 소통을 추구하도록 돕는 책, 《Teaching English for Reconciliation》(공저)을 펴내기도 했다. 인터뷰는 6월 11일 숭실대 인근 카페에서 통역 없이 이뤄졌다.

― 인터뷰 전 통화하면서 우리말을 정말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 연합회 소속으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에서 교육 선교사로서 일을 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당시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에서 평화 교육 담당으로 섬겼습니다. 그후 평화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더 갖고자 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원에서 평화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평화교육가이자 영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1년부터 동북아평화훈련원(NARPI)이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평화교육(Peace Education) 과정을 진행해왔고, 올해는 피스북스의 평화대안대학에서 ‘평화의 언어’(English for Peacebuilding) 강의를 맡고 있어요. 또 숭실대학교에서 영어를 강의합니다.

― 어떤 계기로 평화교육가의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영향은 교회입니다. 어려서부터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평화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그런 가르침에 따라 교회 내에서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평화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죠. 제가 다닌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는 어려서부터 평화 교육을 하고, 여름 성경 캠프의 주된 주제도 ‘평화’였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평화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다니는 과정에서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과 역사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공부하게 되면서 평화교육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평화에 대해 가르쳤다는 얘기가 인상 깊습니다. 한국처럼 내전이나 분단 체제를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평화를 교육하는 일을 선택하신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나고 자란 캐나다는 한국처럼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역동적인 역사를 갖고 있어요. 특별히 캐나다 메노나이트의 경우, 유럽에서 핍박을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캐나다로 건너온 역사가 있지요. 그리고 당시 캐나다 땅에는 먼저 정착해 살고 있던 선주민(先住民, indigenous peoples)이 있었는데, 그들과 ‘세틀러’(settler, 이주민)로 불리던 메노나이트 사이에 갈등을 겪었던 역사가 있어요. 결코 평화로운 역사가 아니죠. 이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더 분명해졌지요.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라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핵심이에요. 전쟁뿐 아니라 화해할 상황은 정말 많지요. 수많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입니다. 그런 화해와 평화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화해의 사역에 참여하는 건 기독교인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요. 저에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다고 부담은 아니었고요. 메노나이트 신학에서 평화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평화는 우리 삶의 중심이고, 우리가 살아갈 의미이자 희망입니다. 평화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삶이죠.

―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필수’라는 말보다도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화해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루어낼까 고민하다 보면, 학문적 접근을 하거나 평화교육을 하거나 다양한 실천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아요.

― 앞서 얘기하신 메노나이트 교회의 주일학교 평화교육은 한국교회에는 굉장히 낯선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나요?
메노나이트 교회의 주일학교 커리큘럼에는 평화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아요. 메노나이트 신학의 3가지 축은 공동체, 제자도 그리고 평화입니다. 성경 말씀을 배우고, 찬양하고, 요절을 외우는 것은 똑같은데 평화 관점을 교육하는 게 특징이에요. 모든 것을 평화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행동도 평화의 렌즈를 통해 보도록 해요. 이를테면, 시스템에 의해서든 권력자에 의해서든 핍박 받는 약자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평화와 화해의 관점으로 보도록 가르치는 거죠. 예수님의 평화 관점으로 구약 성경을 읽도록 교육하고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니까, 우리는 싸워서는 안 된다는 자세를 배우지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인 자유, 사랑, 소망처럼 ‘평화’도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우리 일상과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할 수 있을까요?

평화는 공기와 같아요. 사실 평화는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공동체에 속하고 사회와 연결될 때마다 경험하는 거지요. 일상에서 평화를 위해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요. 평화가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행동들도 많이 있겠죠. 우리의 모든 선택은 평화 렌즈로 볼 수 있어요. 메노나이트 신학이 그 렌즈를 제공하지요. 예를 들어, 제 할아버지는 농부셨어요. 할아버지는 땅과 교감하며 농사짓는 일도 평화를 위한 일이라 여겼어요. 사람들에게 곡식을 제공하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지역의 다른 농부들과 협력하면서 건강한 삶을 일구는 그 자체를 평화 사역이라 하셨지요. 그것은 할아버지에게는 매일 경험하는 평화였고, 매우 현실적인 평화 사역이었죠. 제 경우는 언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있고, 교육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금 영어 교육을 평화의 관점에서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거고요.

― 평화 관점에서 언어를 가르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언어는 곧 의사소통이잖아요.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언어로 평화를 이룰 수도 있는 거거든요. 특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때는 단어 하나하나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배우지 않으면 큰 갈등을 유발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도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면서 평화의 언어도 함께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돈을 벌거나 취업을 하기 위한 목적의 외국어 공부가 아니라 타문화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갈등보다는 평화의 기회를 만드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죠. 

― 평화를 만들어내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말씀인지요.
특별히 정해진 그런 언어가 있다기보다 모든 언어는 평화로 가기도 하고, 갈등으로 흐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다만 갈등을 완화하거나 갈등에서 평화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언어가 하는 일이잖아요. 평화를 만드는 사역에서 언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이 일반적인 평화 사상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우리는 평화 자체가 하나님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사람, 모든 창조물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동기는 다 다를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종교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더라도 추구하는 것이 평화라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모두 화해자로 부르셨기에 동기와 배경이 다른 것은 어쩌면 정말 작은 부분이 아닌가 해요. 서로 다른 점이나 차이점을 찾으며 염려하기보다는 화해의 길로 함께 가는 일에 힘을 모으면 더 좋겠지요. 차이를 말하자면, 메노나이트 안에서도 각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에 의미가 더 큰 거죠.  

― 메노나이트 내의 입장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요?
메노나이트 안에도 생각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요. 메노나이트의 ‘평화신학’만을 떠올리며 그 기준으로 메노나이트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예상 외의 모습들도 많이 발견될 겁니다. 북미에서 메노나이트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하나는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 신앙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500여 년의 역사 속에 메노나이트 교단 신자들이 형성한 문화적 그룹을 말하지요. 메노나이트 안에도 문화적 의미의 신자들이 있고 이들은 딱히 평화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각각의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다양한 이념의 교인들이 공존하고 있어요. 또 미국과 캐나다의 메노나이트가 서로 다르지요. 그러면서도 신학적 전통이 있기에 공통점들이 있는 거고요.

― 그러면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겠네요. 
맞아요. 어떤 이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어떤 이들은 매우 진보적이에요. 물론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메노나이트 교회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환대로 맞이해야 한다는 입장인 거지요. 한국에서 왜 난민 반대 여론이 강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메노나이트에는 역사적으로 난민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난민 이슈에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제 할아버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캐나다로 온 것이기 때문에 간접적이지만 난민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요. 꼭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본 계명이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도와주라고 하신 거잖아요. 

― 난민 이슈 외에도 한국 사회에는 각종 혐오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사회에서 혐오를 만든 것도 언어의 힘입니다. 누군가 혐오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하면 폭력적으로 사회 여론이 흘러가지요. 특정한 대상에 대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데, 그건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벽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언어를 통해서 거대하고 강력한 벽을 만드는 것이죠. 한 번 세워진 벽을 허물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 사회의 특징이기에, 메노나이트 안에도 그런 벽을 만드는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요. 평화 사역자들은 그런 것을 예민하게 인지하면서, 벽을 허무는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하지요. 

― 언어로서 혐오의 말들(hate speech)도 갈수록 거세지는 느낌입니다. 난민은 물론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무슬림 등을 향한 혐오의 언어가 우리 사회에 큰 벽을 세우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슬퍼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미움이나 혐오는 항상 ‘두려움’에서 시작하거든요. 스스로 그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대상을 향해 폭력으로 드러납니다. 직접적인 폭력 행위가 아니더라도 언어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두려움과 상처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이죠. “Hurt people hurt peopl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상처를 준다는 뜻이에요. 혐오 정서는 분명 인간의 죄로부터 나오는 거지만, 왜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도 그 두려움이 극복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역사적인 이유나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 탓일 수도 있고요.

   
▲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열어주실 평화의 길을 믿고 용기를 내는 거지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두려움으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지요. 
제가 미국 버지니아 주 메노나이트 교회에 있었을 때도 종교간 긴장이 매우 높았어요. 미디어가 갈등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쏟아내 종교 간 벽을 세우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타종교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때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그 마을에 있는 유대교 및 무슬림 지도자들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유대교 회당과 무슬림 모스크, 메노나이트 교회당에서 공동으로 어린이 평화 캠프를 열었는데, 저도 그 캠프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평화 교육을 했어요. 미디어에서는 계속 무슬림은 나쁘다고 하는데, 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유대교인이나 무슬림이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디어와는 다른 이야기가 생겨났고 그것이 평화의 언어가 되었어요. 우리 현실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갈등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두려움이 벽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으로 인해 벽을 허무는 어떤 시도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벽을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사실 두려움은 우리의 무지로 인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예수께서도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잖아요(엡 2:14). 그렇다면 우리도 벽을 넘어가야 하는 거죠.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열어주실 평화의 길을 믿고 용기를 내는 거지요. 그 평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평화를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야죠. 사실 세 종교가 모여 어린이 캠프를 여는 것도 두려운 일이잖아요.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주변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두려움은 끝이 없어요. 그럼에도 메노나이트가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거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혐오와 두려움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지요.

― 메노나이트 안에서는 성소수자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갈등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1970년대부터 그 논의는 계속 있어 왔어요. 메노나이트 교회는 교단이 무엇을 결정해서 교회에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에요. 교회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교단이 일방적으로 투표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각 교회 교인들이 토론하고 논의해서 공동체로서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하는 거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 과정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제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캐나다에 머물 때, 성소수자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주의 메노나이트 교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는데, 다른 교회들이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모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대응했지요. 그래서 ‘경청 위원회’(Listening Committee)가 만들어졌고, 저도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위원들이 10명이었는데, 모두 제각각 성소수자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중 한 명은 성소수자였고요.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최대한 많이 들어보자는 취지였고, 어떤 하나의 입장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그때 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각 사람의 입장을 인정하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어요. 그때 멤버들과는 지금까지도 연락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요. 관점이 다르고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의 입장을 귀 기울여 듣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피스빌딩’(peace building)이었다고 생각해요.

― ‘기적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신다면요.
경청 위원회에 참석하여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시간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구나’ 하고 느꼈어요.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경험했어요. 그래서 늘 모임이 길어졌지요.(웃음) 다들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갈등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갈등을 하나님이 주신 평화 안에서 잘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경청 위원회가 경험한 것을 각 교회도 경험할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한 리스닝 워크숍’(Listening Workshop)을 기획해서 지역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진행을 했습니다. 물론 아무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워크숍을 경험한 교회로부터는 그런 비판이 없었어요. 열 사람이 하나의 같은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인정되는 상황이 오히려 사람들을 평화롭게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는 말씀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해요. ‘다양한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만날 때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귀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신다’는.

― 과거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는 남과 북 사이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스토리가 유독 많고 파급력도 큽니다. 어떤 평화적 대응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한국과 북한의 갈등과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다만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캐나다 메노나이트 커뮤니티는 최근에 식민지 역사와 관련해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가 얼마나 악했나요. 제국들에 의한 식민지 질서가 세계 곳곳에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낳았지요. 한국도 제국주의의 식민지 역사와 관련이 깊고, 전쟁도 그에 얽힌 비극이었고요. 지금 캐나다의 원주민(선주민)들은 매우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정말 심각한 처지에 놓인 이들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저같이 유럽에서 온 영어를 쓰는 백인 이주민들에 의해서 생겨난 일이라는 자각을 메노나이트 교회가 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역사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들었어도 무시했어요. 그러나 최근 메노나이트 교회는 그 역사와 관련해 어떤 책임이 있는지 따져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어요. 우선 정치적인 접근으로, ‘원주민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The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UNDRIP)을 캐나다 정부도 인정하게 함으로써 원주민의 권리를 회복하고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정치 행동을 하고 있고요. 우리 안으로는 캐나다 원주민이 땅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메노나이트의 책임은 무엇이었는지 그 스토리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단순화하자면 “핍박당하는 피해자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새 땅을 주셨다”는 기존의 내러티브에서 빠진 부분을 새로이 쓰는 거지요. ‘우리 마을은 사실 원주민들이 잠시 비운 사이에 캐나다 정부에서 원주민과의 조약을 어기고 제공한 땅이었다’ 같은 이야기 말이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메노나이트가 몰랐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어요.

 메노나이트 교단 내에서 이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하고 학습한 뒤에 저희는 지역의 원주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같이 식사를 하고, 음악회를 열고, 축제도 하면서요. 이제 시작이지요. 식민지 역사 때문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충분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트라우마는 양쪽 모두에게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남한과 북한도 그렇고, 캐나다 원주민과 메노나이트 이주민도 그렇겠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한반도 문제는 잘 모르지만, 남북의 화해나 평화가 정치가들이나 정부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정치인이 메시아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화해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이고요.
 
― 한국교회가 메노나이트 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에서 특별히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평화 교육을 해온 경험으로는, 아무리 좋은 교재나 프로그램이더라도 그 문화적 지역적 배경이나 뿌리, 맥락을 잘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을 하나 이식할 때에도 그 식물이 자라는 원래 지역뿐 아니라 옮겨 심을 지역의 환경도 살펴봐야 하잖아요. 그냥 좋은 교재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섣불리 도입하다 보면 놓치는 게 많을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 세계의 모든 교회에 역사하시는 분이시잖아요. 평화의 사역, 화해의 사역 또한 모든 교회를 통해 해나가시니까, 분명히 한국교회에도 필요한 도구들을 주실 거라고 믿어요. 물론 한국교회와 메노나이트 교회가 서로 평화에 관한 좋은 전통과 지혜를 나누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기보다는, 함께 힘을 모으고 연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지요.

 

진행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권세리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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