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 신학자의 말] 교육, 형성, 그리고 선교

▲ 제임스 스미스 교수 ⓒ복음과상황 이범진
   
▲ ⓒ복음과상황 이범진

실천 공동체로서 교회와 캠퍼스 사역의 기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선 제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적 맥락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아가 이번이 저의 첫 한국 방문이기에, 이 주제에 대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저의 문화적 맥락과 경험에 터하여 분명하게 논지를 전달할 때, 구체적인 언급이 제 논지를 여러분 자신의 맥락으로 ‘번역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우리의 대화를 좀 더 수월하게 해줄 것입니다. 또한 제가 대학과 교회의 관계에 대해 제안하는 몇 가지 논점이 국공립대학이나 사립대학을 포괄하는 일반 대학에서의 캠퍼스 사역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Desiring the Kingdom), 《가르침과 기독교적 실천》(Teaching and Christian Practices) 같은 책에서 이루어진 제 작업의 상당 부분은 기독교와 대학 사이의 연관성을 다시 구상해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독교’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재고하는 사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속한 미국적인 상황에서 이것은 기독교를 하나의 ‘세계관’, 믿음이나 신조의 한 체계로 축소하는 데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비판은 기독교를 지적인 체계로 여기는 관점으로부터 실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다시)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크레이그 다익스트라(Craig Dykstra)가 요약했듯이 “기독교 신앙생활은 많은 행습(行習)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혹은 브래드 칼렌버그(Brad Kallenberg)가 요약한 대로 “기독교는 그 특유의 실천적 요소를 언급함 없이는 해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라고 불리는 전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실천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독교와 대학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한다면, 이는 기독교를 단지 하나의 믿음 집합체가 아니라 삶의방식으로서, 더 공동체적이고 통전적이면서 실천적인 이해를 회복하는 일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 주장을 더욱 강하게 표현한다면, ‘교회와 동떨어진 기독교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에서 저는 통전적이고 형성적인 기독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기독교적 ‘관점’ 내지 세계관을 갖추게 할 뿐 아니라 기독교적 활동의 실천을 통해 학생들을 형성해내기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실천에서 나온 형성만이 우리의 상상력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습관을 바꾸어 세상 안에 사는 우리 삶의 방향과 행위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세계를 위해 바라고 계신 샬롬을 지향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독교 대학이나 일반 대학의 캠퍼스 사역이 기독교 세계관을 인식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독교 예배를 통해 양육되기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속적 복음에 대한 형성적(形成的)·예전적 “이해”가, 기독교 예배의 역사적이고도 의도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실천들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비결”, 곧 이런 실천적 지식(praktognosia)은 간편하게 정리된 명제들로 적당히 번역될 수 없고, 쉬운 말로 의역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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