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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금융 '다람쥐회'

기사승인 [347호] 2019.09.24  10: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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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7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 2019년 다람쥐회 총회 모습. (사진: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1969-2019, 다람쥐회 50년
1969년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영등포산선’)에 속한 노동자 40여 명이 약 14,000원을 모아 경제적 자조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1년 뒤인 1970년에 40명의 회원은 500여 명이 되었고, 1972년 신협 법이 제정되는 가운데 ‘영등포산업개발신용협동조합’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신협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맨몸으로 올라와 공장에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은, 시중 은행에서 하찮게 여기며 받아주지 않던 적은 돈을 영등포산선 신협에 맡기며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신협은 전세자금 대부와 생필품 공동구매 등을 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영등포산선의 노동자 인권과 자조 자립 교육을 용공 빨갱이로 매도하였습니다. 급기야 1978년에는 특별감사로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하며 탄압을 해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최초의 신협이었던 영등포산업개발신용협동조합은 부득이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아서 다시 노동자들이 경제적 자조모임을 꾸렸습니다. 해산된 신협의 작은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름을 ‘다람쥐회’라고 지었습니다. 생활경제공동체로서 함께 조금씩 출자를 하였습니다. 정부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선 노동자 회원들과 협동운동에 비전을 품은 청년들이 합세하여 생필품 공동구매 사업도 하다가 서로살림생활협동조합(2004년)을 세웠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주말교육공동체 밝은 공동체(1997년)의 토대를 놓았으며, 대림동에 의료생협(2002년)을 만드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은 사업체가 독립하여 각각의 특성에 맞게 지역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다람쥐회는 900여 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스마트뱅킹도 있고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져서 누구라도 쉽게 금융거래가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노동계약을 맺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 경제적 위기를 맞아 거리로 내몰렸으나 자립과 자활의 의지를 지닌 노숙인과 같은 경제적 약자들에게 시중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람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노숙인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수시로 편하게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다람쥐회는 오늘도 변함없이 영등포산선 1층, 가장 따뜻한 안쪽 자리 3평 정도 되는 조그만 공간에서 회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실무를 맡은 지 5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제가 만난 다람쥐회 회원들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어요?

“발 사이즈가 얼마예요?”
우리 회원들 중 노숙인들이 오실 때면, 어떤 분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어떤 분은 만취해서 내 돈 달라고 소리부터 지릅니다. 이런 모습에 짜증이 나고 그래서 무표정으로 대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늘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하고 환대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우리 산업선교회 노숙인 사역을 하셨던 고 김건호 목사님입니다. 작년 10월에 소천하셔서 지금은 뵐 수 없지만, 그분의 자취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생전의 김건호 목사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분들에게서 하나님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이분들에게 마음을 열고 날씨 얘기도 하며 부드럽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도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분들도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게 보였습니다.

어느 여름 날, 노숙인 한 분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아유 더워. 더위 죽겠네.”
“오시느라 많이 더우시죠? 저는 가만히 앉아 있어서 그렇게 더운지 몰랐네요.”
인사를 건네며 에어컨을 강하게 켜드렸습니다.
“발 사이즈가 얼마예요?”
“왜 발 사이즈를 물어보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의아해서 도로 여쭈었습니다.
“요즘 길에서 리어카로 신발을 팔고 있는데 안 팔려서 많이 버려요. 맞으면 하나 주려구요.”
“저는 괜찮아요.”
“사이즈가 얼마예요? 다음에 올 때 줄게요. 신용불량자라 은행 이용 못하는데 여기를 이용할 수 있어서 고마워서 그래요.”
계속 거절하면 길에서 파는 신발이라 싫어서 그러나보다 오해하실까 봐 “230 신어요” 하니, 다음에 올 때 하나 갖다 주겠다며 나가셨습니다. 그러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정말로 운동화 세 켤레를 들고 오셨습니다.
“맞으면 신어요. 고무가 좀 떨어졌는데 본드로 붙이면 돼요.”
“네, 잘 신을게요. 고맙습니다.”
신발을 받고도 아무것도 드리지 못해 다음에 오시면 시원한 음료라도 드려야지 하는데 아직 안 오십니다. 신발이 잘 안 팔려 장사를 접으셨나 걱정이 되지만, 마음으로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람쥐회입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안녕하세요? 다람쥐회입니다.”
“대부를 좀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조합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네, 제 이름은 ◯◯◯입니다. 아들이 대학에 갔는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해서 다람쥐회에서 대부를 받아서 입학금을 내고 조금씩 갚으려고요.”
“네, 그럼 사무실로 한 번 방문해 주시겠어요? 대부 신청서를 작성하셔야 해서요. 그리고 심사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처 결정이 됩니다. 시간이 언제가 좋으신가요?”
은행 이용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어려운 분들에게는 여전히 신용 대부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성실히 갚지만 연락을 받지 않거나 상환이 늦게 이루어져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갚는 분들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형편이 나아지길 기다립니다. 그러나 연락이 끊긴 경우는 집을 찾아가서 사정을 듣고 상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 조합원은 2010년에 500만 원을 빌린 뒤 조금씩 갚다가 어렵다며 몇 년간 전혀 못 갚고 있었습니다. 연락마저 끊겨 다람쥐회 회장님이 주소만 들고 직접 찾아나섰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한 남자분이 나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여기에 ◯◯◯ 씨가 살고 있나요?”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 가세요. 안 가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그분은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회장님은 저녁이 되면 오겠지 생각하며 집 앞에서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그 조합원을 잘 알고 지내는 다른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 씨 만나러 집 앞에 와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고 내 전화는 안 받으니 연락을 좀 해주면 좋겠어.”
“알겠어요. 제가 전화해서 얘기할게요.”
얼마 후에 그분에게서 연락이 와서 만나 새벽 3시까지 삶의 애환을 듣고 나서, 어렵지만 조금씩이라도 상환해 달라고 부탁하며 격려하고 돌아오셨습니다. 그 후로도 연락이 잘 되진 않았는데, 그래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문자를 보내며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에 한꺼번에 전액 상환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어려울 때 이용하게 해줘서 고마웠고 기다려줘서 고마웠습니다. 제 사정이 어려우니 연락도 피하고 그랬네요. 지금 조금 사정이 나아졌어요. 잔액과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그러면서 다른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도움을 받았다며 얼마간의 목돈을 출자하시면서 다른 어려운 조합원들도 도움을 잘 받으면 좋겠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이런 경우, 오랫동안 연체하는 회원들의 사정을 마음 들여 듣고 기다리며 꾸준히 찾아가고 독려하는 회장님을 비롯한 운영위원들의 노고가 새삼 고맙고 보람도 느낍니다.

이렇듯 다람쥐회는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대부를 해갔지만 중간에 힘이 떨어져 상환이 지체되고 힘들어질 때, 조합원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우리는 조합원들이 어려우면 기도하고 기다리는 영등포산업선교회 협동조합 다람쥐회입니다.

   
▲ 다람쥐회 소책자 (사진: 영등포산업선교회 제공)

좋은 일만 있었으랴
50년 역사에 좋은 일만 있었을까요. 협동 운동을 키워보려고 무리하게 하다 부실해졌고 만회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달라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했으나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져서 조합 운영에 난관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애정을 가진 조합원들이 나서서 대책위원회를 꾸려 마음과 힘을 모으고 발전 위원회를 만들어 토론하며 극복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도 다시 운영상의 어려움이 닥쳐서 운영위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영등포산선 초대 목회자이자 제1호 신협과 다람쥐회를 만든 조지송 목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다람쥐회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가서 하소연도 하고 상의도 드렸던 분입니다. 몇 년간 다람쥐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목사님은 다람쥐회 활성화를 위해 써 달라며 기금을 남기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과 함께하시며 검소하고 청렴하게 살아오신 목사님에게는 정말 큰 액수입니다. 늘 개인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해 뭘 할지를 생각하고 움직이신 분, 그게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이라 살아생전 말씀하셨던 목사님은 다람쥐회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을 아시고 선뜻 기금을 내어 놓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셨다고 하지요. 저희 앞에는 늘 어려움과 혼돈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람쥐회의 지난 50년 역사를 돌이켜 보니, 그때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었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서 협동하며 지금까지 일해 왔습니다.

다람쥐회에는 협동하는 세상, 가난한 자와 몸이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이 함께 서로 돕고 나누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과 손과 발이 두 개씩인 이유는, 협동하도록 지으신 그분의 놀라운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오늘 되새깁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합니다.


정광숙
다람쥐회 실무자로 2015년부터 일하고 있다.

정광숙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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