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호 제국과 하나님 나라] '보편 질서'로서 돈·제국·종교 이해하기

바울 신학의 혁명은 융합과 경계 넘어서기
바울 신학은, 필자가 보기에 1980년대부터 일대 혁명을 맞이한다. 그 혁명은 천재 학자 몇 명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20세기 후반 바울 신학의 혁명은 성서학이 자신의 틀을 벗어나 여러 다른 담론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과거 성서학의 결과들뿐 아니라 유대교 문헌들과 철학자들의 사상에 문을 열면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새 것은 없었다. 발견과 융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21세기 바울 신학이다. 1977년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통해 유대 문헌을 연구함으로써 바울 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반유대주의 구조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1976년 크리스터 스탠달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루터로부터 비롯된 서구적 인간 이해를 벗어나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1994년 닐 엘리엇의 《Liberating Paul》(바울 해방시키기)은, 바울 서신을 종교 경전으로 읽는 방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상황 안에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울 신학은 샌더스를 통해 기독교를 넘어 유대교의 해석과 융합되었고, 스탠달에 의해 루터식 바울 해석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엘리엇에 의해 종교적 담론에서 벗어나 정치적 담론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세 영역으로부터의 자유가 바울 신학 담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의 결합 아래서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사랑과 은혜의 기독교 신앙과 자본주의적 약육강식 이데올로기를 함께 가지고서 교회와 직장을 오가는 사람은 그 사이에서 아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 양자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모순을 발견하게 될 텐데, 이는 그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되려 할 때 나타나는 파국을 경험해야만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바울 신학의 혁명은 이러한 여러 다른 바울 담론의 융합과 경계를 넘어서는 성서 읽기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소개할 때 휴대용 멀티터치를 지원하는 아이팟과 휴대폰, 인터넷 기기를 하나로 묶었다고 말한 것처럼, 바울 신학의 혁명은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전에 여러 다른 분과 학문이나 사상에서 이미 얘기하던 것들을 한데 모아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읽기가 바울 신학의 일대 혁신을 가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 문서(서신)가 당시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사건들과 함께 이해될 때, 당대에 메시아가 이루고자 한 일들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서 바울 서신이 주는 의미를 더욱 깊이 탐구할 수 있다. 분리되어 흩어져 있던 것들을 융합하여 함께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과거 바울이 씨름하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새로운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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