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 <동물농장>(1999)

베이브부터 옥자까지, 남다른 돼지 영웅들
돼지가 주인공인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남다른 감수성을 지녔던 <꼬마돼지 베이브>(1995)와 슈퍼 돼지 <옥자>(2017)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납니다. 다코타 패닝이 주연한 <샬롯의 거미줄> (2006)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1992)도 있지요. 대체로 이들은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똑똑하고 교감이 가능해서, 인간의 친구가 된 돼지들입니다.

다른 돼지들이 “돼지들은 빨리 자라 뒤룩뒤룩 해질수록 빨리 천국에 간다”는 말을 믿고 이별을 슬퍼하지조차 않을 때, 아기 베이브는 사라진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어요. <샬롯의 거미줄>의 윌버는 너무 작게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지만 주인집 딸 펀(다코타 패닝) 덕에 살아나 농장의 슈퍼스타가 된 경우입니다. 윌버는 늙은 거미 샬롯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돼지였죠. 옥자는 산골소녀 미자(안서현)의 유일한 친구였고, 듬직한 보디가드였습니다.

이들은 종종 농장 동물들의 부러움과 지지를 받으며 리더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가축 품평회에서 우승이나 해야 겨우 통돼지 바비큐나 햄이 되는 신세를 면할 수 있는 돼지들이기도 했지요. 따지고 보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에서 정신적인 지주였던 돼지 메이저 영감이 현명한 교훈과 이론을 남기고 ‘늙고 병들어’ 죽을 수 있었던 것도 과거에 가축 품평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던 실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도 죽어서는 도축을 면하지 못했지만요.

존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동물농장>(1999)은 이 메이저 영감이 농장주의 총에 희생된 것으로 그렸는데요, 동물들의 흥분과 혁명을 자극하는 극적인 장치로 그의 죽음을 사용한 것입니다. <동물농장>은 이 똑똑한 돼지들이 힘과 지략을 다른 동물들을 억압하고 사람처럼 되는 일에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돼지 영웅들에게 흔한 인간 친구가 단 한 사람도 없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원작자 조지 오웰이 바라본 세계는 동심조차도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한 꼬마가 시골마을에서 달구지 말을 몰고 가는 모습을 보고 《동물농장》을 생각해냈다고 해요. 골목길에서 굽이를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는 꼬마 사람을 보며 만약 저런 동물들이 자신의 힘을 인식한다면 인간들이 저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이지요. 전쟁을 겪고 난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돼지가 되어버린 <붉은 돼지>의 조종사 ‘마르코’는 그래서 차라리 정직한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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