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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계를 초월하는 삶으로 부름받았다

기사승인 [350호] 2019.12.30  11: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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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도시 전체에 넓게 흩어진 예일대학교 캠퍼스를 위로 가로질러 올라가다보면 캠퍼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신학대학원을 만날 수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강의실에서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남방과 청바지 차림의 그는 여느 기사나 책표지의 사진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인터뷰 전 볼프 교수의 연구조교를 만나 그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예일대 신앙과 문화 연구소’(Yale Center for Faith and Culture)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지난 학기 진행된 토니 블레어와의 협업, 신간 출판, 연구 동향 등 교수로서의 미로슬라브 볼프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에만 학교에 오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일정은 매우 빡빡했고, 인터뷰 당일 역시 30분 간격으로 미팅이 잡혀 있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연구소 내에 있는 그의 연구실은 조직신학자로서의 명성에 비하여 아담한 편이었다. 막 점심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인터뷰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며 책상을 치우는 등 친절한 환대를 베풀었고, 시종일관 환한 웃음과 성실한 경청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 사진: '예일대 신앙과 문화 연구소' 제공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네요. 교수님은 잘 알려진 조직신학자이면서 적지 않은 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신학자로서 교수님의 관심사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습니까? 또한 최근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신학자로서 저의 작업은 언제나 ‘기독교적 신념과 행위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만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경제, 정체성, 화해, 기억의 문제 등은 사회참여적인 면에서 그동안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졌던 주제들이지요. 다시 말해 저는 신학과 광범위한 해석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 항상 관심을 두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주목하는 것은 인간 번영의 문제, 즉 ‘그리스도인에게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이 잘 되어 간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구별된 기독교적 용어로 이해할 수 있는가’입니다. 더불어 ‘다른 종교와 세속주의에서 설명하는 인간 번영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까지 대화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이 논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심사가 반영된 저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막 인쇄에 들어간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인간의 번영》(Flourishing)이며, 종교와 세계화 과정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와 인간 번영의 관계를 다룬 내용을 작업할 예정입니다.

교수님의 책 《광장에 선 기독교》(IVP)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출간된 이후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전쟁과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한 내부 갈등의 상처를 지닌 국민이라는 점에서 교수님의 삶과 저서는 우리에게 좀 더 의미있게 와닿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이면에 과거의 기억들이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서로 간의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 역시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교수님은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도 용서의 문제를 일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데, 공적 영역의 참여자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공적 참여를 말할 때 언급되어야 하는 주제들은 분명히 많습니다. 1차적 선(善)인 정의를 비롯하여 공공선(common good)은 다른 많은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저에게 있어서, 용서는 중요합니다. 구원을 설명하는 기독교 메시지의 중심에 용서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용서가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하여 우리는 단지 그분이 나 자신을 용서하고 구원받았다는 것에만 구원의 믿음을 적용하고, 세상 일에 참여할 때는 전혀 믿음을 구사하지 않습니다. 즉 이 두 믿음의 세트는 동일한 것이면서도 함께 나아가야 하지요. 하나님의 성품인 무조건적 사랑은 인간에 대한 그의 용서로 발현되고,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적 삶을 산다면 우리 역시 용서의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 앞에 놓인 필요에 관용을 베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용서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이와 함께 저는 용서의 유형(nature)을 규정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우리가 베푸는 용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존중하는 행위 등 용서의 형태는 다르지만 사실 그들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장에 선 기독교》 5장을 보면, 바람직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leaving without depart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이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we’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eaving’의 부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상태(being not being of the world)로, ‘without departing’은 세상에 거하는 상태(being in the world)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며 세상 밖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 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면서 세상에 거하는 것을 견뎌야 할 때 이 개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이들이지요. 말하자면, 초월적인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본성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긴장과 복잡한 본성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각 사람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이를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religious political pluralism)라는 개념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종교가 축소되는 세속주의보다 아직도 종교화된 파시즘 혹은 국가주의에 의한 전체주의적 시도가 정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체포되어야 할 ‘강도’일까요, 아니면 정치적 공존의 대상일까요?
저는 국가주의 혹은 국가정체성을 기독교적 정체성과 밀접하게 묶으려는 사람들을 강도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보편주의 내 기독교 신앙을 강탈해 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 신앙은 문화적 정치적 협상의 내적 완력에 사로잡히게 되고,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 대항하여 말할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전에 없던 다른 모습으로 세속화되는 것이지요. 성스러운 영역(sacred aura)에도 현실정치가 주어졌습니다만, 성역은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의해 좌우되는 곳이 아닙니다. 성역은 그리스도의 주권과 새 예루살렘에 속해 있는 곳이지 땅의 것에 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CC BY Virgil Vaduva/Wikimedia Commons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 부분은 기독교 신앙 역사에서 큰 유혹 중 하나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진 종교집단은 자신을 정치적 문화적 공간을 포함한 전 우주로 규정하여 속이기 때문에 다른 집단에게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에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를 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과 현실 정치와 구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원래 마이너리티로 출발하지 않았던가요? 우리 신앙의 시발점이 어땠는가를 돌아보면서 그것을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주변부에 속해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들이 바로 그 변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이 태어난 곳은 궁궐이나 안정적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두려움 없이 진리를 선포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인과 기독 공동체의 구별되는 특징이었습니다. 

‘정치적 기획으로의 다원주의’는 종교 내에서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은 정치적 견해 차이와 이에 따른 세대적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고, 특히 기성 세대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교회 내에 가져오거나 공예배의 설교에서 선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여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동등하게 내려고 할 때, 교회 내 갈등이 커지게 되는 우려 때문에 망설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와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회들이 저마다 선한 삶, 정치적 현실을 견뎌야 하는 기독교적 믿음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성경이 정치교과서가 아니며 정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확실한 가치와 목적, 그리고 자기 구현의 내용을 어마어마한 시간에 걸쳐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하고 또 이와 같은 질문이 논쟁을 점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논쟁이 건강하다고 봅니다. 논쟁은 건전하게 진행될 수도 있고, 도중에 마찰이 생겨 서로 갈라질 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가 차이의 정당성을 인지한다면 건설적 논쟁은 가능하며, 희망하기로는 어떤 해결점까지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의견이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다면 최소한 우리가 왜 그 이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 삶의 본질이 아닐까요? 제가 아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다면 아마 시간이 꽤 필요할 것입니다. 혹은 아들이 가끔씩 제게 무엇을 설명할 때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은 제가 아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전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토론과 논쟁의 절차에서 오랫동안 무언가가 지체되고 있는 과정조차 건설적일 수 있고,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그 지지부진한 과정에 있으면서 우리는 사안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윗세대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다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서로를 발전하도록 하려는데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최근의 세계를 보면 종교간의 긴장이 다시 높아지고 새로운 냉전의 시기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라크의 ISIS(이슬람국가)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수님이 《배제와 포용》(IVP)에서 말한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거부’와 ‘폭력을 사용하여 악을 억제’해야 한다는 신학적이며 윤리적인 대화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물론 저의 책 《배제와 포용》은 기독교 신앙과 폭력의 관계에 대해 강력한 결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더 큰 갈등 상황에서 폭력의 전개(deployment of power)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다른 갈등처럼 상대방을 배제하거나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을 최소하게나마 이해하려는 가교를 만들어가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폭력을 행하는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관련된 상황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가 좋은 마음을 갖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 생각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관점에 대해 전혀 무지하면서 폭력적으로 대응하려는 그리스도인 집단을 저지하는 일입니다. 폭력에 대한 저의 입장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입장과 동일합니다. 본회퍼는 말하기를, “폭력이 요구되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모든 폭력의 행사는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두드러지게 침해하거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지 않은지, 반드시 내부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어느덧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오늘날 젊은이나 사역자들에게 당면한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교수로서, 사역자로서, 그리고 신학자로서 저의 강조점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기술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 안팎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지식과 권력을 더 늘리고 고취하여 좀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에 국한됩니다. 반면 ‘좋은 삶, 선한 삶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며 분주하게 지내지만 정작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우리 인간이 가진 존엄성이 어디에 부합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욕구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토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적 영역이며 다른 사람이 개인의 욕망에 대해 상관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그 자체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시스템에 의해 형성되어 왔습니다. 대학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초월적 부르심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가치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심연수 제공

인터뷰를 마친 후 한국어판 《광장에 선 기독교》에 사인을 요청했다. 미라슬로브 볼프 교수는 다른 언어로 출판된 자신의 책에 큰 관심을 보이며 아름답게 잘 만들어졌다며 감탄했다. 연구소 측의 요청으로 공식적인 기사용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팬심에 근거한 사적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그는 조명과 배경까지 고려하며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었고 그렇게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양혜원
본지 해외편집위원. 

 

[미로슬라브 볼프의 주요 저서]

   
 

일과 성령

백지윤 옮김 / 박득훈 해설 / IVP 펴냄 / 2019년

전통적으로 기독교인은 노동을 소명론적 시각으로만 바라봤다. 저자는 그 한계를 지적하며 종말론적 새 창조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일의 신학을 이야기한다.
(원제: Work in the Spirit: Toward a Theology of Work)

 

인간의 번영

양혜원 옮김 / IVP 펴냄 / 2017년

세계 종교와 지구화의 관계는 구조적인 양가성이 있다. 지구화가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종교가 도울 수 있음을 밝힌다.
(원제: Flourishing: Why We Need Religion in a Globalized World)

 

광장에 선 기독교

김명윤 옮김 / IVP 펴냄 / 2014년

근대적 세속 사회에서 종교는 공적인 영역에서 완전히 밀려나 사적인 것으로만 여겨져 왔다. 이 책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온 기독교가 가진 신앙의 공공성을 제자도의 맥락에서 밝힌다.
(원제: A Public Faith)

 

행동하는 기독교 

라이언 매커널리린츠 공저 / 김명희 옮김 / IVP 펴냄 / 2017년

《광장에 선 기독교》의 실천적 안내서. 개인적 영성과 교회 활동은 신앙의 일부분이다. 기독교 신앙은 내재적으로 공적이고 정치적이며, 그리스도인은 이를 삶에서 실천할 책임이 있다.
(원제: Public Faith in Action: How to Think Carefully, Engage Wisely, and Vote with Integrity)

 

기억의 종말 

홍종락 옮김 / IVP 펴냄 / 2016년

상처와 죽음, 고통이 일상인 시대. 저자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논하는데, 올바르게 기억한 다음에는 고통을 잊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펼친다.
(원제: The End of Memory: Remembering Rightly in a Violent World)
 

   
 

알라  

백지윤 옮김 / IVP 펴냄 / 2016년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이 같은가’라는 논쟁적 질문을 던지는 책. 신에 대한 묘사와 신의 명령의 유사성을 근거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신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성’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원제: Allah)
 

배제와 포용 

박세혁 옮김 / 강영안 해설 / IVP 펴냄 / 2012년 

정체성과 타자성의 문제를 탐구한 책. 페미니즘, 해방 신학,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상호 배제에서 벗어나 타자를 포용하고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원제: Exclusion and Embrace)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홍병룡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 펴냄 / 2012년

종교를 초월하여 성경을 읽기,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한 신학 하기 등 다양한 성경 해석의 모델을 보여주는 책. 지구적 차원의 교회와 종교 간 대화에 관한 저자의 사상을 맛볼 수 있다.
(원제: Captive to the Word of God)

 

삼위일체와 교회 

황은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2012년

삼위일체 이해를 기반으로 한 교회론을 탐색하는 저자는, 개신교 교회론에서 발견되는 개인주의 경향성에 맞선다. 인격과 공동체가 각각 온당하게 존중되는 교회에 대한 건실한 이해를 제시하는 책.
(원제: After Our Likeness: The Church as the Image of the Trinity)

 

베풂과 용서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2008년 

왜 우리는 관용과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단순한 기독교 교리적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삶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원제: Free of Charge) 

 

 

미로슬라브 볼프 goscon@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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