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교회를 떠났다’ ‘날려버려 개소리’ SNS 페이지엔 한국 개신교의 온갖 막말과 교회를 떠나게 만든 사연이 제보를 통해 게시됩니다. 올라오는 게시물을 보고 있자면 안타깝기도 하고, 어이없음에 웃음을 참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나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왔던가? 이 정도면 사람들이 교회를 안 떠나는 게 이상하지….’

교회 안에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표현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결국 문제는 ‘혐오’였습니다. 청년, 여성 등 차별당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교회 안에 혐오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치명적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이지요. 그런 표현들은 사람들 사이 소통을 단절시키고 공론장을 없애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교회 내 혐오와 혐오 표현을 돌아보는 작업은 복음과상황이 오랫동안 숨 고르기를 반복했던 기획입니다. 늘 ‘조금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주제이기에 더 정교하게 접근하고픈 욕심이 늘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에, 우리 사회에서 왜 교회가 혐오의 생산지이자 유통처로 인식되고 있는지 살피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이웃’과 ‘사랑’의 층위를 살피고(예수의 ‘이웃’들: 혐오 저항으로 읽기_김혜령), 우리가 사랑할 ‘이웃’의 범주를 성경에 비추어 고찰했습니다(‘이웃’에는 어떤 조건도, 제한도 없다_김근주). 교회를 등지게 하는 혐오 표현들을 논하며(교회 안에 막말들이 넘쳐난다_김자은), 실제로 삶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교회를 등진 이의 목소리도 담았습니다(침묵이 빚어낸 괴물, 평화_이예은). 

혐오 표현을 완벽하게 규정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들은 ‘날려버려 개소리’의 한 표현을 두고 ‘이것이 왜 혐오 표현인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번 호를 읽는 독자님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시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커버스토리를 읽고 사람들과 토론하거나 스스로 고민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 자체로 사라져가는 공론장을 지키는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과 상황’에서는 성폭력과 여성 차별이 여전한 교회 안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는,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 소속 두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교회가 치유와 소망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회가 성폭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진정 그런 날이 오려면,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혐오부터 교회에서 없어져야겠지요. 갈 길이 멀지만, 가끔 숨도 고르겠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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