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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성폭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기사승인 [351호] 2020.01.21  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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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1호 사람과 상황]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섬기는 치유와 평화의 사역자 캐롤린·로다

   
▲ 로다 쉐링크 키너와 캐롤린 홀드리드 헤겐   ⓒ복음과상황 정민호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다.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없다.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떨까? 이들에게는 교회조차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오랜 기간 성폭력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도우면서 교회가 성폭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들을 만났다.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 소속으로 강연차 한국을 방문 중인 캐롤린 홀드리드 헤겐(73)과 로다 쉐링크 키너(68)가 그들이다. 캐롤린은 사회심리학자로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강연을 통해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로다는 메노나이트 여성분과위원회 리더로 20여 년간 일해왔으며, 현재 여성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시스터 케어’(Sister Care) 사역 디렉터로 활동한다. 인터뷰는 작년 12월 10일,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피스빌딩에서 있었다. 통역은, 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NARPI)의 강수연 씨와 김가연 한국 피스빌더네트워크 대표가 맡아주었다. 

바쁘신 방한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한국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캐롤린: 저는 지금까지 어린이들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주로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강의해왔습니다. 푸에르토리코와 파키스탄, 네팔 등에서 살기도 했는데, 지금은 미국 오리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 자녀를 두었고 손녀들이 여럿 있습니다. 남편은 교회 사역자는 아니고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은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제가 가본 여러 나라 공항 중 인천공항이 가장 좋아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현재 미국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Mennonite Central Committee)에 소속되어 치유 사역에 매진하고 있고 있습니다. 
로다: 저는 50살 때부터 메노나이트교회에서 19년 동안 여성 사역을 했습니다. 그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심리치료사로도 일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메노나이트 교회와 깊게 연결되어 성장했는데, 남편은 은퇴한 메노나이트 공동체의 원목이자 목사입니다. 3명의 자녀와 그 아래로 손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 메노나이트 여성분과위원회의 시스터케어 디렉터를 맡고 있어요. 캐롤린은 자원봉사로 미국 메노나이트 여성분과위원회의 이사회 일을 맡아주었고요.

   
▲ 캐롤린은 사회심리학자로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담은 책을 쓰고 강연을 통해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로다는 메노나이트 여성분과위원회 리더로 20여 년간 일해왔으며, 현재 여성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시스터 케어’(Sister Care) 사역 디렉터로 활동한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캐롤린: 교회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 특히 여성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교회가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해왔습니다. 제가 쓴 《Sexual Abuse in Christian Homes and Churches》(기독교 가정과 교회 안에서의 성적 학대)가 출간된 이후 크고 작은 교회 콘퍼런스의 강연자로 많이 서게 되었는데요. 어렸을 때 저는 교회에서 성도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해자가 가지지 않아야 할수치심 때문에 몇 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요. 결국 치유를 받기는 했지만, 치유는 교회 안이 아닌 밖에서 이루어졌죠. 교회 안에서 겪은 상처로 인해 교회에 대해 분노가 많았지만, 여전히 다른 어떤 곳보다 교회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치유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다: 저도 어렸을 때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어요. 그런 경험이 여성과 아내로서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주었죠. 우울증을 겪었고 자주 화가 났는데, 나중에는 하나님이 제게 이와 관련된 소명을 주신 것 같단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심리치료사가 되어 일해온 것과 ‘시스터 케어’ 사역을 하는 것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두 분 다 어린 시절에 큰 트라우마를 경험하셨는데, 캐롤린 박사님은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지요.
캐롤린: 제가 39살 때 요더 교수가 저희 부부가 살던 지역에서 열린 평화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을 하러 왔습니다. 당시 남편은 요더에 관한 책을 출간했고 평화주의자가 되어 있었지요. 우리는 요더 교수를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초대했는데, 우리에겐 두 아이가 있었고 저는 임신 8개월 상태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이 제게 설거지를 할지, 요더 교수를 공항에 태워줄지 물었는데, 그는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알고 있었죠.(웃음) 낡은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공항에 도착해서 차 안에서 요더 교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는데, 그가 제게 차에서 내려서 제대로 인사를 하라더군요.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냥 그 말에 따랐지요. 그는 체구가 엄청 큰 사람이었는데, 차에서 내려서자 갑자기 저를 끌어안았고, 작고 만삭이던 저는 순간 균형을 잃었지요. 강제로 안긴 채 그가 발기된 상태라는 걸 느꼈지만, 그가 놔줄 때까지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그 일을 얘기했고 몹시 당황한 남편은 미안하다면서 당신이 얼마나 불편해했을지 그가 몰랐을 거라고 했지요. 

   
▲ "낡은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공항에 도착해서 차 안에서 요더 교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는데, 그가 제게 차에서 내려서 제대로 인사를 하라더군요.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냥 그 말에 따랐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그 일 이후, 요더 교수가 제게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첫 편지는 집에 초대해줘서 고마웠고, 이 도시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메노나이트 크리스천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죠. 별로 관심 갖고 싶지 않아서 다른 편지들과 함께 던져놓았습니다. 당시 저는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싶었고 입학이 굉장히 어려운 학교에 합격했는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터라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너무 멀리 살고 있었고요. 그 상황에서 요더 교수는 자신의 출판 전 원고들을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캐롤린, 이거 좀 읽어주면 좋겠어. 평신도 여성들이 이 글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 하면서요.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그는 제가 다니던 교회와 남편에게 영웅이었고, 우리 부부는 그의 글이라면 거의 다 읽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인물이 자기 글을 보내면서 제 의견을 부탁하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그건 지적인 유혹이었죠. “네 몸매가 매력적이야”라고 했다면 완전히 차단해버렸겠지만, 박사 과정을 앞둔 상황에서 뭔가 지적으로 자극이 되니까 좋았던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요더가 보낸 편지를 읽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어요. 강간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 편지 내용이 이랬어요. ‘내가 몇 달 뒤에 시애틀에 콘퍼런스가 있어서 가는데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래? 아이를 데리고 와도 돼. 낮에는 내가 콘퍼런스 때문에 바쁘겠지만, 밤에는 시간이 있어. 네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침대 끝에 앉아서 네가 수유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 그러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벗은 몸과 수유하는 가슴 등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그건 정말 끔찍한 폭력이었어요. 귀가한 남편에게 편지를 보여줬어요. 제 남편은 평소 굉장히 차분하고 젠틀한 공학자인데, 그가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을 처음 봤어요. 당장 요더에게 전화하겠다는 걸 말렸어요. ‘당신이 요더에게 전화하면 자기가 당신의 소유물을 건드린 거라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믿음 안의 자매인 나를 성폭행한 것’이라고 내가 직접 말할 거라고 했어요. 요더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는데, 다시는 내게 이런 글을 쓰지 말고 연락하지도 말라면서, 왜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으며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세하게 썼습니다. 요더는 “캐롤린, 그건 네가 오해한 것”이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캐롤린: 앞서 어릴 적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큰 소리로 말하면서 상대를 편하게 만지기도 합니다. 혹시 내가 거기 살 때 하던 행동을 무심결에 한 건 아닐까? 요더가 그런 내 행동을 자신에 대한 성적인 관심으로 잘못 받아들인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교회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치심을 느꼈고 수년간 이 일을 속으로만 담은 채 혼란을 겪었지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요. 전혀 아니었지만요. 저는 매우 우울해졌고 교회와 하나님에 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은 자랐고 저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나서 여러 나라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요더에 관한 비슷한 이야기를 점점 더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큰 문제라는 걸 알게 됐지요. 과테말라에 갔을 때 한 여성 리더는 절 공항에 데려다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네 교회에 존 요더를 라틴 아메리카에 다시는 보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우리 자매들이 위험해지니까요.” 제 책이 나온 이후, 전 세계로 더 많이 강연을 다녔는데 참석한 여성들이 제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제가 잠시 이야기를 끊고 되묻곤 했어요. “잠깐만요. 혹시 이 얘기 존 요더예요?” 그러면 상대방이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의 신분을 노출시킬 생각은 없었는데요.” 그때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죠. 

자신의 경험에 더해 다른 여러 지역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충격이 컸을 것 같은데, 이후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혼자서 이 문제를 떠안거나 품고 가기에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캐롤린: 당시 저는 미국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성서신학대학원(Anaba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 AMBS) 운영위원회 멤버로 있었는데 AMBS 총장이던 말린 밀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밀러에게 당신이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서 제 경험과 요더에 관해 들은 이야기들을 들려줬어요. 밀러는 “알아요. 문제가 있지요”라고 말했어요. AMBS에 다니던 학생 32명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모두 요더로부터 겪은 일들에 관한 내용이었다면서요. 저는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어떻게 요더를 교수로 둘 수가 있냐고 따졌습니다. 밀러의 논문 지도교수가 요더였기에 함부로 자를 수가 없었다는 게 이후에 밝혀졌죠. 당시 밀러가 요더를 만나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요더는 ‘마태복음 18장을 읽어라’고 답했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18장에 형제가 죄를 범하면 단 둘이 만나서 충고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누구든지 직접 자신을 찾아와서 얘기하라는 거였죠. 요더는 권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피해 여성들은 그를 보기조차 싫은데 따로 찾아와서 얘기하라고 한 거예요. 
요더 교수가 죽고 나서도 어떤 종류의 치유도 일어난 적이 없었어요. 신학교 안에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있었죠. 몇몇 교수들은 요더의 도덕성 문제를 아는 상황에서 어떻게 신학교 안에서 그의 책을 교재로 사용할 수 있냐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즈음 새로운 총장으로 사라 웽어 쉥크가 왔어요. 여성 리더가 왔으니 이제는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어요. 평화와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간이 있었는데, 채플 이후 사라에게 요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신학교 안에서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요. 레베카 슬로(Rebecca Slough) 학장도 함께한 자리에서 제 경험을 울면서 이야기하자 두 사람도 눈물을 흘리며 들었지요. 그 시간은 제게 매우 강렬한 치유의 경험이었어요. 
이후 로다와 저는 버지니아에서 열린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 컨퍼런스에 가게 됐는데, 그때 교단 총회장이 어반 스투츠먼(Ervin Stutzman)이었어요. 그에게 우리 교단 내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요더 문제를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아내와 함께 와주기를 청하고 제 친구 로다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는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고 다음날 긴 편지를 보내왔는데,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맞는지 일일이 기록하여 재확인하는 편지였어요. 내용은 정확했어요. 그가 정말 내 얘기를 열심히 들었구나 싶어서 놀랐지요. AMBS 신학교 총장 사라, 메노나이트 교단 총책임자에게 요더는 죽었지만 문제 해결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저를 비롯하여 다른 모든 피해자들에게 치유가 필요하다고 얘기한 거죠. 
로다: 물론 우리는 요더의 피해자들만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 내 다른 성폭력 사건의 여성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해결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이런 사건들을 경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캐롤린: 요더가 전 세계적인 인물이어서 여기저기 항상 인용이 되고 책이 전 세계에 팔리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피해자들과 교회 리더들에게 트라우마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AMBS 신학교와 메노나이트 총회에서 결정한 해결 과정과 관련 의식(ceremony)들은 이미 꽤 알려졌지요. (이에 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344호 ‘사람과 상황’에 실린 사라 웽어 쉥크 AMBS 총장과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편집자, 하단 관련기사 참고)

이번 한국 방문은 시스터 케어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되었나요?
로다: 저는 어릴 때부터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성경 교사였는데, 당시에는 집과 교회와 사회에서 남자 지도자가 있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분위기였어요. 사람들은 가부장제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했죠.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설교를 했었고요. 어린 시절 교회 성폭력을 경험한 이후 여성으로서 하나님에게 어떤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가부장적인 가정과 교회, 사회를 경험하며 혼란스러웠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MCC에서 나온 Created Equal: Women and Men of the Image of God(평등한 창조: 하나님 형상을 지난 여성과 남성)이라는 작은 소책자가 있는데, 남성과 여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담은 책으로 전 세계에서 세미나를 할 때 사용하는 교재입니다. 저는 메노나이트 국제여성연합 사무국장이 되면서 교회 안에서 저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일반적인 상담 과정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이야기를 넣지 않는데, 많은 크리스천 여성들에게 성폭력 치유 과정은 감정뿐 아니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의문, 즉 믿음과 연결된 해결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교회가 그런 치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스터 케어’라는, 여성을 위한 세미나를 만들게 된 거죠. 
캐롤린: 그동안 메노나이트 교회와 관련 단체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저는 이제 그만 해야지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하게 된 거예요.(웃음)  
로다: 캐롤린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캐롤린의 책과 콘퍼런스 강연은 제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영향을 많이 주었어요. 캐롤린은 제 치유자입니다. 캐롤린이 다른 세미나에서 치유와 경청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반응이 엄청났었지요. 시스터 케어를 만들면서 도움이 필요해서 교단 이사회에 같이 할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고, 캐롤린이 자원하여 함께하게 된 거죠. 
캐롤린: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었어요. 메노나이트 교회가 국가와 국가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화 만들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는 뭔가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스터 케어 얘기를 들었을 때, 이러한 개인의 내적 평화를 만들기 위한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로다: 캐롤린과 함께 다른 여성분들도 자원봉사로 함께해주셨습니다. 저 혼자서는 작게 시작을 했던 건데, 캐롤린의 은사와 능력으로 체계적으로 매뉴얼을 만들어서 하게 되었지요. 《공동체를 위한 시스터 케어 리더십》(대장간)이라는 교재도 함께 만들었지요. 
캐롤린: 이 책를 함께 쓰게 된 목적은, 자기 상처를 여성 스스로 치유하고 그 경험으로 다른 여성을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스터 케어 사역을 얼마 동안 함께해오셨는지요?
로다: 10년간 함께해왔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는 4,700명, 북미 지역을 제외하면 1,600명의 여성들을 가르쳤습니다. 현재까지 19개 나라를 방문하여 여성 리더를 훈련해왔는데, 이번 한국 시스터 케어 세미나에는 35명이 왔습니다. 이처럼 세미나는 보통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대신 이들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유익을 누릴 수 있도록 여기서 훈련받는 여성들이 다시 다른 여성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합니다. 
캐롤린: 다른 조직들은 이 경우 자료집의 저작권을 얘기하는데 저희는 얼마든지 배포해도 된다고 얘기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사역이니 그분들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알아서 쓰실 거라고 믿는 거죠. 이 자료로 수련회나 성경 공부, 교회학교를 할 때도 자유로이 쓸 수 있습니다. 
로다: 이 매뉴얼은 현재 16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앞으로 두 개 언어로 더 번역이 되어 나올 예정이에요.

시스터 케어 훈련은 주로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여성 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피해자들도 참여하고 있는지요?
캐롤린: 피해자가 항상 포함되어 있지만, 시스터 케어는 피해자만을 위한 사역은 아닙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세미나를 갔는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다가 이제 막 나왔거나, 성매매에서 빠져나오신 분도 있었어요. 가정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도 많습니다. 참가 여성 가운데는 외모를 비하하거나 인격적으로 멸시하는 언어폭력을 경험한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상태죠. 자신이 경험한 일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로다: 교회 리더들도 많이 오십니다. 특별한 직책은 없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여성분이 오실 때도 있고요. 기관이나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오시죠.

   
▲ "모든 시작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다음으로는 사과를 표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고요. 그러고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새로 만들었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캐롤린: 저희 세미나에서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활동이 있습니다. 인생의 타임라인을 쓰는 건데, 자신의 인생 주기를 한 장 넘게 길게 쓰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트라우마 힐링 프로그램 진행을 꽤 오랫동안 했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우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자기 인생을 챕터로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게 각 장을 쓸지 고민한 다음, 각 장마다 제목을 붙여서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일, 상실한 것들을 적어보라고 하지요. 이렇게 아주 간단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세미나가 마음 깊이 돌아볼 수 있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타임라인마다 힘들었을 때 하나님처럼 곁을 지켜주고 함께 아파해준 이들을 떠올려보게 하면서 그렇게 힘이 되어준 이들의 이름을 적어보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천둥이 많이 치는 지역에 사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한밤에 천둥이 내리치면 아이는 엄마아빠 방으로 뛰어들어가지요. 그러면 부모는 다시 잠들기 힘들죠. 그때 엄마가 보다 못해 얘기해요. “하나님은 어디에든 늘 함께 계셔. 그러니까 천둥이 친다고 엄마아빠에게 올 필요 없어. 하나님은 너의 침대에도 함께 계시니까.” 엄마는 딸아이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잘 알아듣는 것 같아서 기뻐했지요. 앞으로는 천둥이 쳐도 편히 잘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요.(웃음) 며칠 뒤 밤에 다시 천둥이 쳤고, 딸이 변함없이 방으로 달려와 깨웠지요. 그때 엄마가 얘기해요. “엄마가 다 알려줬는데 기억 안 나? 하나님은 언제 어디든 네 곁에 계시다니까.” 그러자 딸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알아요, 엄마. 근데 전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스터 케어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인생의 어려운 시기마다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거지요. 

시스터 케어 프로그램에는 저 같은 남성은 참가할 수 없는 건가요?(웃음)
로다: 지금까지는 서너 곳에서 남성과 여성이 같이 배우는 시간이 있었어요. 서로를 긍휼함으로 돌보는 시간이었는데, 남성들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들도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니까요. 
캐롤린: 우리는 ‘브라더 케어’를 만들 수 있는 남성들을 양성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어쩌면 당신이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웃음)

앞서 쉥크 총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경청하는 분위기 가운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 그 시간이 중요한 치유의 경험이었다고 캐롤린 박사님이 얘기하셨는데요. ‘피해자의 말하기’가 어떤 점에서 중요한가요?
캐롤린: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그 점이 요더 사건에서 정말 오랫동안 놓쳤던 부분이었어요. 결정적인 말은 항상 요더가 했고 신학생이 다수였던 피해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피해자가 거의 100명이 넘었는데, 신학생으로서 나중 교회에 부임을 하게 될 때 교단의 주요 인물이 한 짓을 남성 목회자에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요, 얘기했다면 그 교회에서 일을 할 수는 없게 되었겠지요. 저는 신학생도 아니었고 제 일이 교회 조직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전형적인 메노나이트 여성과는 다른 기질을 갖고 있어서 나설 수 있었지요. 제가 정말 어릴 때였는데 발을 막 구르면서 “이건 아니야. 공평하지 않아” 하면서 소리쳤던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거든요.(웃음)
로다: 저는 캐롤린과 다르게 매우 얌전했어요.(웃음)
캐롤린: 제가 고집도 있는 편인데, 다른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기가 어렵더군요. 그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공감하면서 들어주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편지나 전화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과분하게도 많은 이들이 저를 안전한 사람으로 느껴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안전함을 느끼는 가운데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거죠. 
AMBS에서 요더 사건 피해자를 위한 치유 모임이 있었는데, 첫 모임은 피해자들과 지지자들, 교수진들로만 구성이 되었죠. 자기가 피해자라는 걸 사람이들 알게 될까 봐 많은 분들이 오지는 않았어요.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많은 피해 여성들을 대표하는 셈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이어 공개적인 모임이 따로 열렸어요. 그 시간에 사라 총장님이 강력한 설교를 하셨고, 피해자가 증언을 해줬다는 데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 먼저 용서를 구했습니다. 사라는 요더를 만난 적도 없는데 신학교를 대표해서 피해자들을 향해서 공개 사과를 한 거예요. 사적으로는 사라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자리를 마련해서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다음으로 학교 이사회 대표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정책과 제도적으로 어떤 변화를 시행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어요. 
로다: 모든 시작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다음으로는 사과를 표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고요. 그러고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새로 만들었지요. 
캐롤린: 사라 쉥크가 이사회 대표이자 총장으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공적 선언을 했다는 점이 피해자들에게는 굉장히 큰 치유가 되었어요. 요더 성폭력 문제를 메노나이트 교단 차원에서 어떻게 다뤘는지를 연구한 책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를 보시면 제 피해 기록만으로 쓰인 챕터가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도나 애통, 시 같은 내용들을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예배 때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교회 안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게 해주면 좋겠어요. 책 속에 있는 내용들은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고,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돕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요더 문제에서 가장 복잡한 것은 그가 강하고 고집스런 인물이었다는 점과, 그가 신학교 측과 협상을 했다는 점입니다. ‘내가 학교를 나가는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노트르담 대학교로 떠나주겠다는 식이었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요더 문제에서 가장 복잡한 것은 그가 강하고 고집스런 인물이었다는 점과, 그가 신학교 측과 협상을 했다는 점입니다. ‘내가 학교를 나가는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노트르담 대학교로 떠나주겠다는 식이었죠. 말린 밀러 총장이 살아있을 때 제가 물었어요. “말린, 왜 이 이야기를 말하지 않나요?” 그는 자신이 요더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가 서랍장을 열어서 갈색 봉투를 보여줬는데, 겉면에 ‘영원히 봉인’(sealed in perpetuality)이라고 큰 검정 글씨로 써 있었죠. 봉투 안에는 요더와 나눴던 모든 대화들과 자백의 기록, 피해 여성들에게서 보냈던 편지들이 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perpetuality가 무슨 의미냐고 물으니 영원(forever)이라는 거예요. 남편은 증거인멸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태우지 않고 봉인해두었을 거라고 했지요. 나중에 총장으로 부임한 사라와 요더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다시 그 봉투 얘기를 하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그 안에는 죽은 두 사람(요더와 말린) 간의 비도덕적인 협정을 담은 문서가 들어 있는데, 만약 신학교를 치유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봐야 한다고 했죠. 그러면서 두 사람 간의 협정이 유효한지 봉투를 열어서 확인하려고 신학교 담당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열면 안 된다고 했다는 겁니다. 
로다: 봉투를 여는 게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해자나 다른 관계자들의 명예 훼손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캐롤린: 그런데 사라 말이 그 변호사가 말린 밀러의 사위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라에게 캘리포니아와 필라델피아의 변호사를 한 명씩 임의로 선택해서 물어봐 줄 것을 요청했죠. 요더도, 메노나이트도 모르는 변호사를요. 사라에게서 한 주 뒤에 연락이 왔는데, 놀랍게도 두 변호사 모두 열라고 했다는 거예요. 확인해 보니, 요더와 밀러가 대화를 할 때마다 메모를 남겼던 거예요. 밀러가 요더에게 전 세계 여성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남자답게 얘기하라고 말한 내용도 있더군요. 밀러가 A부터 H까지 요더의 행위가 담긴 긴 리스트를 만든 것도 있는데, 사라가 그걸 읽고는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건 알았지만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면서 내게도 읽어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세계 각국의 피해 여성들에게 확인한 내용보다 더한 피해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장기간에 걸친 요더의 성범죄와 권력남용 문제는 결국 사라 웽어 쉥크라는 여성 총장이 주도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의 말하기, 피해자에 대한 공개사과, 위로와 치유, 공동체적 회개 등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가 잘 마무리된 데는 책임자가 여성 리더였다는 점이 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캐롤린: 분명 그런 면이 있습니다. 말린 밀러 총장 후임으로 온 다른 분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요더 관련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수치감이 들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성이 총장으로 오자, 무엇보다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사라에게 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거지요.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이야기하기(고백)와 고백을 위한 안전한 여건/환경 제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피해자를 위한 안전한 환경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요?
캐롤린: 여성 피해자로서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 내에서 힘을 가진 여성이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문제 해결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여성이라면 그 자체로 상대적인 안전함을 느끼게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수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받았는데, 모두 익명으로 남길 원했어요. 그들은 저를 ‘이야기 전달자’로 신뢰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익명으로 남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자발적인 전달자가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은 이들에게서 안전함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성폭력 문제에서는 요더가 얘기한 것처럼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혼자 만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정말 경계해야 하는 거죠. 저는 매우 강한 기질을 지녔고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그런 저조차 결코 혼자서 요더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모든 문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힘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여성 피해자가 남성 가해자를 일대일로 만날 때 피해자는 절대 안전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제3자가 동행한 경우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교회나 기독교 기관의 책임자나 리더에 의해 피해자가 생겼을 경우, 마땅히 교회나 기관이 책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교회가 고백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교회가 가해자를 그런 폭력을 가할 지위에 앉힌 책임과 함께,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로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피해자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외부와 공유하는 게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이지요.
캐롤린: 교회나 기독교 기관의 책임자나 리더에 의해 피해자가 생겼을 경우, 마땅히 교회나 기관이 책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교회가 고백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교회가 가해자를 그런 폭력을 가할 지위에 앉힌 책임과 함께,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가해자는 자기 잘못을 절대 고백하지 않아요. 교회는 그를 리더로 세운 조직으로서 책임을 고백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한국의 한 개신교 교단은 젊은 여성 성도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유명 목회자에게 아무런 징계를 내리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교회 차원의 공개 사과를 했지만, 교단 차원에서는 하지 않았지요. 이 교단은 여성 안수를 반대하여 여성 목사가 없고 교단 총회 같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요.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는 교단 내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여성 리더들이 어느 정도 비율인지 궁금합니다. 
로다: 메노나이트 교단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가 성폭력 가해 이력이 있는 목회자가 발견되면 즉시 자격을 박탈한다는 겁니다. 미국 노스다코타에서 시스터 케어 세미나를 하는데 두 자매가 찾아왔어요. 자기가 다니는 교회 목사가 여전히 가해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가해 목사의 상위 기관 관계자를 찾아가서 얘길 했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기에, 다시 그보다 더 높은 관계자를 찾아가서 그 피해 여성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해 목사는 그 교회를 떠났지요. 문제는 그가 교회를 옮겨서 계속 목회를 한다는 거였지요. 그 목사가 옮겨간 다른 교회 사람들이 걱정된다는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교회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서를 바로 찾아가면 되지만, 많은 여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하길 원하지도 않아요. 노스다코타의 사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캐롤린: 우리는 여성이 목회자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리란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어요. 만약 목회자 그룹 안에 여성 목회자가 많다면 남성 목회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증언하는 데 좀 더 편안함을 느낄 거예요. 캐나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참석자 가운데 성공회 주교 한 분이 질문을 해왔어요.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교회 안의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 대답은 ‘더 많은 여성 목사를 고용하라’는 것이었어요. 

6년 전 한국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는데 실체적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변함없이 진실을 밝혀주기를 정부에 요구합니다. 앞서 요더 성폭력 문제에서도 처음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묻혀 있었고 진실은 봉투 속에 영원히 봉인될 뻔했습니다. 왜 우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진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이겁니다. 진실을 아는 것은, 그리고 진실을 다루는 것은 모두 치유의 시작이자 과정이라는 거지요.    
캐롤린: 교회가 학대와 폭력을 보지 않고 은폐하려고 하면 결국엔 파괴되고 말 겁니다. 건강하고 영적인 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로다: 저는 폭력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이는 언제나 진실이 밝혀질 때에만 가능합니다. 용서 받는다 하여 화해가 항상 가능한 건 아니지만요.  

   
▲ "목사가 성폭력 가해를 고백하면 교회가 너무 빨리 용서를 하곤 하지요. 그러면 목사는 또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요. 교인들이 그를 진정 사랑하고 그의 영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바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치료를 받고 왜 그 일을 저질렀는지 돌아보길 바랍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목사직을 박탈해야지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캐롤린: 몇 년 동안 교도소에서 크리스천 남성들을 대상으로 정신 치료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들 중 절반은 성폭력으로 수감된 목회자들이었어요. 정말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주말마다 그룹 치료를 했는데, 마지막 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들에게 만일 내가 피해자들을 만난다면 무슨 전해주면 좋겠는지 물었어요. 그러자 세 딸을 성폭행해서 수감된 사람이, 그는 목회자였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를 너무 쉽게 용서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세요. 우리가 행한 것들을 되새기며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까지 용서하지 말라고요.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요.” 목사가 성폭력 가해를 고백하면 교회가 너무 빨리 용서를 하곤 하지요. 그러면 목사는 또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요. 교인들이 그를 진정 사랑하고 그의 영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바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치료를 받고 왜 그 일을 저질렀는지 돌아보길 바랍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로다: 그리고 목사직을 박탈해야지요.  
캐롤린: 당연하죠. 그는 다시 목사로서 일하기에 안전하지 않아요. 다른 일을 해야겠죠. 

교도소에서 진행하는 정신 치료 세미나는 드문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성폭력 가해자인 목회자들 만났을 때, 그들에게 정신적인 문제나 성장과정의 어려움 같은 문제가 있진 않던가요? 
로다: 그렇지는 않았고 주로는 권력에 취한 목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성도들이 그를 신처럼 숭배하면, 그들은 일반 사람들이 지키는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초대를 받지도 않았는데도 목사들은 언제든 문을 두드리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어떤 전문가들도 그런 권력은 가지지 않았지요. 제 책에 나온 목회 성범죄에 대한 부분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캐롤린: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이유들이 많겠지만, 어느 것도 변명이 되진 않습니다. 그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겠지만, 책임을 다하고 나서 도움을 받아야겠죠.

마지막으로,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로서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요? 저희가 인터뷰한 사례 가운데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피해자가 ‘꽃뱀’이나 ‘이단’으로 거꾸로 몰리거나 비난을 당해 결국 교회를 떠난 이들도 있는데요. 
캐롤린: 만에 하나 그 여성이 정말로 유혹하는 행동을 했다 치더라도, 이에 맞서 한계를 정해야 할 책임은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거나, 얘기를 꺼냈더라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신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어떤 일이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일어났는지 말하세요. 그러다보면 마침내 사라 총장처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세요. 만약 당신이 속한 교회에서 아무도 당신을 믿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도 됩니다. 떠나서 더 안전한 공간을 찾아 가세요. 그러나 하나님을 포기하진 마세요. 목회자와 교회는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버리진 마세요. 목회자가 권위를 남용하는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은 마음 깊이 아파하실 거예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하나님은 마음이 찢어지고 분노하실 거예요.”
로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계속해서 시도해보세요. 비밀을 묻어두기만 하면 계속 우울해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성폭행이 아니라 해도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앞서 얘기한 노스다코타의 목사는 성경 구절을 잘라 붙여서 러브레터를 만들어서 한 여자아이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그녀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분노하나?” 이게 바로 가해자들이 실제로 자주 이용하는 트릭(속임수)입니다. 

   
▲ "교회나 목회자를 변화시키려면 5년, 10년, 심지어 20년 내에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우선적 돌봄 사역자로서 권한을 받은 여성들을 양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캐롤린: 그 목사는 기혼자였는데 그 소녀에게 아무와도 만나지 말고, 결혼하지도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가 죽으면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늘 말했다더군요. 잘 알다시피 우리의 언어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 살았을 때, 그곳 이슬람에서는 신을 묘사하는 99개의 언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신을 아버지로만 고정해서 부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남성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하나님을 쉽게 남성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자아이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아이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로다: 피해자 개인뿐 아니라 교회 차원의 노력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경청할 수 있고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현명하고 따뜻한 여성 평신도들이 나오도록 격려하는 일이 필요한 거죠. 전체 교회 시스템을 한 번에 빠르게 변화시킬 수는 없어요. 교회나 목회자를 변화시키려면 5년, 10년, 심지어 20년 내에도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우선적 돌봄 사역자로서 권한을 받은 여성들을 양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또 한 가지는, 하나님 곁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고 설교하는 일입니다. 

 

진행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 2020년 2월호(통권 351호) 6-30쪽.

캐롤린·로다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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