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호 에디터가 고른 책]

   
▲ 플레밍 러틀리지 지음 / 류호영 옮김
비아토르 펴냄 / 21,000원

“지금이 주일 저녁이 아니라 평일 저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많은 성도가 나오신 셈이지만, 종려주일이나 부활주일 예배와 비교하면 적은 편이네요. 괜찮습니다. 최초의 세족 목요일 예배 때도 그리 많은 회중이 모였던 건 아니니까요.” 

낯선 이름의 저자였으나 읽어나가다 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 설교자는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동자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핵심을 전하는 이라는 확신이었다. (알고 보니, 성공회를 대표하는 설교자였다!) 그녀가 26년간 고난주간과 부활절에 전했던 설교 41편을 모았다. 고난주일, 고난주간, 세족 목요일, 성금요일, 부활 전야 예배와 부활 주일 예배 등 7부로 나누어 구성됐다(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까지 ‘기쁨의 50일’에 어울리는 설교 다섯 편이 마지막 7부에 실렸다). 

단순한 설교 모음집이 아니라, 책으로서 완성도를 높인 편집이 눈에 띈다. 저자는 다른 곳에 실린 설교는 담지 않았고, 대부분의 설교를 책에 맞게 새로 썼다. 군데군데 예수의 모습을 그린 명화와 해설을 넣는가 하면, ‘죄’ ‘사망’ ‘세력’이라는 글자 일부를 굵은 글씨로 표기했다. 인간의 선택에 영향받지 않는 독립된 세력으로서의 사망을 강조하기 위해서다(책의 원제는 ‘The Undoing of Death’이다).

“죽음은 추합니다. 부당한 거래지요. 죽음은 사기꾼이고 도둑입니다. 해골처럼 히죽거리는 조롱입니다.”
“삶 한가운데서 우리는 죽음을 맞습니다. 우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세계질서 너머에서 누군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우리는 죽음 안에 그대로 있을 겁니다. 사망의 권세보다 더 크고 강한 권세만이 사정없이 재촉하는 사망의 소환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또 부활주간 저녁 예배 설교에서 이렇게 운을 뗀다.

“오늘 예배에 나온 여러분은 더 어려운 과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삭막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성경이 죽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성경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설교를 따라 어둡고도 어두운 곳으로 인도될수록, 십자가의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 이 책은 2011년 《죽음의 취소》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번에 삽화가 포함되고, 새롭게 번역됐다.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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