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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이후의 바울 1 ― 바울의 눈으로 다시 읽는 행전·살후

기사승인 [354호] 2020.04.17  18: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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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4호 제국과 하나님 나라]

 

바울 이후, 누가/행전의 바울
바울의 편지가 남지 않았다면 바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록에서 그의 자취 정도를 아는 데 만족해야 했을지 모른다. 스페인으로 선교를 떠나기 원했지만, 그의 여정은 로마에서 죽음으로 끝났다. 바울은 편지를 남겼고, 그가 세운 공동체가 그 편지를 간직했다. 지금까지 바울이 쓴 일곱 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아마도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질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일설에 따르면, 로마시민으로 재판을 받아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그가 참수당한 장소는 오늘날 로마의 관광지가 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사도행전에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시민이며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과연 사도행전의 저자가 실제 바울의 여정에 관심을 가졌는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보통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이하 ‘누가/행전’) 동일인이 썼다고들 말한다. 두 텍스트를 기록한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사람인데, 그는 사도행전의 절반 가까운 분량에 걸쳐 바울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바울의 편지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면 바울의 서신들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의 내용과 그 기록들은 사도행전 저자의 관심 밖이다. 무엇 때문일까?

누가/행전은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순교하거나 죽고 난 후, 공통시대(CE:Common Era, AD의 종교 중립적 표현) 66-70년경에 있었던 로마와 유대 사이의 전쟁이 끝난 후에 쓰였다.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성전은 기능을 멈추고 말았다. 다수의 학자들은 바울의 일곱 서신을 제외한 모든 신약성서의 기록들이 CE 70년 이후에 쓰였다고 생각한다. 로마는 유대인들의 저항을 뿌리 뽑기 위해 4개 군단을 투입하여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그 여파로 갈릴리에서 일어난 예수 운동으로 형성된 유대 지역의 메시아 공동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유대 지역 상황과는 달리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심어 놓은 묘목들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자라고 있었다. 특히 도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여러 박해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누가/행전의 기록자는 갈릴리부터 시작한 예수 운동이 로마에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하나의 역사로 매끄럽게 기록하고자 했다. 그 역사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을 선택할 때, 예루살렘과 로마 지역 선교를 이어주는 중요 인물로 바울이 선택되었다.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메시아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은 바울이 교회사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누가/행전은 세례 요한의 신비한 탄생 이야기를 시작으로 메시아 예수를 따르는 인물들의 선교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들의 선교는 메시아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고난받는 이유는 교만한 자를 낮추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눅 1:52-53) 누가/행전 저자는 처음부터 복음이 이방으로 전해져야 할 것을 예수의 입을 통해 선언한다.(눅 4:25-30) 이는 갈릴리 예수 운동이 유대 땅에서 일어난 개혁 운동임을 감안할 때, 저자에 의해 첨가된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승천 직전에 예수는 앞으로 메시아 공동체의 소명이 이스라엘 회복이 아니라 땅끝까지의 복음 전파라고 선언한다.(행전 1:6-8) 

베드로가 로마의 백인대장(백부장) 코넬리우스(고넬료)에게 세례를 줌으로 이방 선교가 공식화 된 이후(행전 10장), 바울은 이후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띤 베드로와 거의 동등한 인물로 등장한다. 예수와 베드로의 고난과 영광의 선교 행전을 바울은 그대로 답습한다. 기적을 행하고 고난 속에서도 능력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인물이 행전의 저자가 그린 바울의 모습이자, 이후 교회가 기억하는 바울이다. 열정적인 설교가, 감옥 안에서도 찬양을 부르며 쇠사슬과 결박을 풀어버린 믿음의 영웅. 왜 이런 역사 기록이 필요했을까? 예수의 제자들 시대 이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루살렘 멸망과 늦어지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했다. 바야흐로 메시아 공동체는 새롭게 변한 환경에 새로운 대답을 제시해야 했다. 

사도 바울, 성자 바울이 되다
예수는 로마의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부활했으며, 곧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메시아 공동체는 로마의 사형 틀에 달려 죽은 자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 의식과 세속 사회와의 날카로운 긴장은 당연했고, 이를 바울의 서신과 초기 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 읽을 수 있다.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시대에는 그 긴장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로마제국은 때가 되면 무너질 것이고 메시아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메시지는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소명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과 바울 같은 지도자들의 순교가 이어지고, 급기야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대 지역의 박해가 심해졌다. 제국과 세속 사회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메시아 예수를 새롭게 만났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으려는 묵시적 종파운동들이 일어났다. 세상은 곧 멸망할 것이라며 개인적 경건과 신비체험에 몰두하는 종파들도 생겨났다. 초기 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 이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놀라지 말아라.” (막 13:5-6a, 이하 새번역) 

이때, 소위 교회 일치 운동을 주장하는 공동체가 나타났다. 아마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전승과 기억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전 전통의 상속자들이라 생각했다. 곳곳의 여러 공동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그들은 전통과 권위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곧 바울이 예루살렘 공동체와 이방의 메시아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선택되었다.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 따르면, 생전에 바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전통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누가/행전의 저자는 초대교회의 주요 지도자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필자가 지금까지 바울이 직접 쓴 편지를 통해 그려왔던 바울이 아니라 보통의 기독교회가 기억하는 바울은 누가/행전이 그려낸 인물이다. ‘성자 바울’(Saint Paul)의 탄생이다. 

   
▲ Vatican StPaul Statue. (사진: 위키미디아 코먼스)

그러나 성자 바울이 나타나자, 원래 바울이 로마제국에 대해 가졌던 날카로운 비판들은 행전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의 법에 의지하고 그 보호를 받으며 선교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예루살렘 교회에 충실한 제자로서 할례와 음식법에 대해 가졌던 날 선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누가/행전은 바울을 충실한 로마 시민이자 유대의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남겨 놓았다. 결국 행전에 그려진 바울은 이후 바울 서신 해석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바울 제자들의 바울 그리기
바울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가 쓴 편지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누가/행전과는 달리, 바울 서신을 바탕으로 바울 이후 메시아 공동체를 지속하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편지들이 신약성서에 남아 있는데, 학자들은 이를 제2바울 서신이라 부른다. 데살로니가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가 이들이다. 제2바울 서신의 저자들은 스스로를 바울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자신이 쓴 편지의 저자가 바울이라 기록했다. 당시 유명인들의 이름을 빌려서 쓰는 편지나 작품이 흔했음을 감안할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바울과 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을 ‘바울의 제자들’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먼저 그 제자들 중 하나의 기록인 데살로니가후서를 살펴보면, 데살로니가후서 저자에게도 누가/행전의 저자와 비슷한 고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살후 2:2)

누가/행전과 비슷한 문제이긴 했지만 스스로를 바울의 후계자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자칭하는 바울은 주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 말했고, 편지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신약학자 J. 크리스티안 베커(Christiaan Beker)는 묵시사상은 바울의 신학 저변에 자리한 핵심이라고 말했다. 바울의 성령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의 사역, 메시아 공동체의 소명이 모두 그의 묵시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묵시’란 “결국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르는 세력을 물리치고 영원한 평안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를 뜻한다. 

바울은 이 사건이 긴박하게 곧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그날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고린도 교회에는 부활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바울의 세계관 안에서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질문들은 바울의 목회적 능력과 신학적 통찰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바울 사후, 사도들의 연속적인 순교와 역사적 예수의 증인들의 시대가 끝나고, 급기야 예루살렘 교회까지 궤멸되는 상황에 이르자 바울이 가졌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생존을 모색하는 공동체에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바울의 이름으로 바울을 고쳐 쓰다
만약 바울이 한 말이 맞다면, “주님의 날”은 벌써 왔어야 한다. 순교한 바울이 전한 말이 맞다면, 예수의 증인들이 모두 죽기 전에 메시아 예수의 날은 와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의 저자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열심히 읽고 많은 바울의 인사와 표현을 따르고 있지만, 재림에 대한 해석만은 양보하지 않는다. 아마 이때쯤 메시아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매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기네가 믿던 메시아는 로마의 형벌에 죽었고, 제국의 정치에 대안을 찾던 바울도 결국 순교당한 후였다. 바울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철학적 우주론이나 복음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 서신은 새로운 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위험한 기록이라 비난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서, 무식하거나 믿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 그것을 잘못 해석해서, 마침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벧후 3:16) 

바울의 제자였거나 스스로 바울의 후계자라 여긴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이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묵시를 과감히 고쳐 새로운 재림 기록으로 바꾸어 바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다. 임박한 재림의 기대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바울의 제자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는다. 예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롬 13:8-9)였다는 사실도 큰 위로가 되진 않았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따르면, 그 대신 언젠가는 꼭 갚아주시는 복수하는 주(Lord) 예수가 강조된다. 이제 메시아 공동체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주 예수는 괴로움으로 갚아준다. 그리고 괴로움을 받는 자들은 먼저 간 사도들,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와 함께 안식의 자리를 얻을 것이다.(살후 1:6-7) 이 모든 일이 “불꽃에 싸여” 나타나실 주 예수의 심판의 때에 있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한 바울의 제자는 새롭게 세우는 공동체의 “전통”(2:15, 3:6)에 예수의 사도들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대신 메시아 공동체의 새로운 목적을 다시 설정한다. 이제 공동체는 전통으로 확립된 명령과 그 권위를 이어받은 지도자들의 명을 따르고 또 계속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3:4) 권위와 전통을 바탕으로 그 명령 안에서 인내하며 사는 것이 메시아 공동체의 목표가 된 것이다. 아울러 전통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단절한다. 생전의 바울은 복음의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다른 가르침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를 통해 복음의 핵심을 재확인했지만, 그 바울이 전통의 권위가 된 시대에는 새로운 바울의 이름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국 비판에서 현실주의로 물러서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제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더 이상 중요한 관심이 되지 못했다. 바울의 제자들은 주의 심판의 날 이전의 정치적 세계관을 새롭게 재편했다. 그들은 주의 재림의 날이 오기 전에 있을 시나리오를 제시함으로써 임박한 재림의 기대를 희석시켰다. 데살로니가후서의 기록에 따르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불법자, 곧 멸망의 자식이 나타나고(2:3), 그 불법자를 억제하는 자가 나타나고(2:6-7), 그 억제하는 자가 물러날 때 나타나는 불법자를 주 예수가 죽이는 사건들이 일어난다(2:8). 이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나열은 메시아 공동체가 겪어야 했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 시대에 티베리우스 이후에 황제가 된 칼리굴라는 로마제국 역사에 끔찍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칼리굴라가 죽고 난 후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재위 기간 동안 제국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이후 재위에 오를 네로에 대한 기대를 드높였다. 네로는 이전 위대한 황제들의 핏줄을 이은 정통 후계자였고,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의 제자였으며 음악과 문학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네로가 전무후무한 폭군으로 변해가자 당시 제국에 희망을 걸었던 지식인들은 희망을 잃고 제국의 쇠락을 예견했다. 

주의 재림이 지연됨을 느끼며, 바울의 제자는 현실 정치에 최선(메시아)은 없지만 차악(억제자)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속 정치 현장은 폭군이나 폭정을 억제할 지도자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 바울의 제자는 불법자를 억제하는 정치를 말함으로써 바울의 날카로운 제국 비판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선한 정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 계기가 되었다. 이후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루터가 신앙인의 세계를 두 왕국으로 분리하면서, 세속 국가의 임무를 억제자에 둔 것도 바울 제자의 신학에 근거한 것이었다. 

바울의 제자가 이은 바울의 유산 
결국 분량은 짧지만 이후 나타나는 제2바울 서신들은 바울의 날카로운 비판을 무디게 하고 메시아 공동체가 세속 정치와 공존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바울서신의 핵심이던 현실 인식과 제국 비판, 그에 대한 대안 공동체의 믿음과 희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바울의 후예들은 교회의 예배와 교회 내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가 이전 바울 서신에서 다루었던 중요한 주제들을 기억해보자. 예수의 십자가가 인간의 삶과 공동체와 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 유대의 전통과 예수의 관계는 무엇인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역사는 무엇인가? 이제 이러한 질문들은 더 이상 관심을 얻지 못한다. 

그럼 무엇이 남았을까? 바울에게서 남겨졌던, 그리고 바울의 제자가 이은 유산이 무엇일까? 데살로니가후서만이 아니라 다른 바울 제자들의 서신들을 살펴보면, 바울이 생전에 강조했던, 소위 복음의 내용과 그 메신저의 삶 사이 관계는 여전히 강조됨을 알 수 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무절제한 생활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은 일이 없고, 도리어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살후 3:7-8)

고린도후서를 다루면서 필자는 바울이 왜 그토록 자비량을 고집하며 선교활동을 했는지 언급한 바 있다. 바울은 복음을 직접 몸으로 살아내지 않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했다. 그들이 상상해내지 못할, 겉치레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단계까지 자신의 삶을 훈련하고자 했다. 이런 삶의 자세는 바울의 이름을 계승한 이후 공동체에 남겨진 바울의 유산이 되었다. 그래서 복음의 순수성은 전하는 자의 삶의 자세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바울의 제자들이 강조하는 전통이다.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와 더불어 신앙인의 삶의 실천이 그의 영적 믿음을 결정한다는 신앙은 바울 이후 메시아 공동체의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공동체가 조직화된 교회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전통으로 남아 신앙의 순수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오늘날 바울이 역사적 예수의 삶을 뒤로 하고 오로지 추상적 믿음만을 강조해서 교회 타락의 원흉이 되었다고 비난받은 것을 생각해보면, 바울의 제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지킨 바울의 가르침까지 오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바울 생각하기
바울은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현실 정치와 역사를 고민했던 인물이었다. 바울의 편지들은 메시아 공동체가 현실과 부딪치며 빚어내는 충돌과 고민을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바울이 양보하지 않았던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나타내는 일뿐 아니라, 그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끊임없이 기억하는 신앙이었다. 당시 급변하는 교회의 상황 속에서 바울은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십자가를 살아낼 것인가? 타인을 환대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나는 세계를 희망하며,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통치와 승리를 이 땅으로 불러올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제자들은 그 소명을 공동체 안으로만 규정짓기 시작한다. 스스로 세운 전통에 반대하는 자들을 타자화하기 시작하고, 원수와 박해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노래했다. 바울의 제자들이 강조한 전통과 권위는 그 후 도래할 기독교회의 탄생을 준비하였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기독교회란 예수만이 아니라 그 제자들과 바울까지도 성자가 되고 전통이 되어 그들을 바탕으로 조직화된 종교 단체를 뜻한다. 다음 몇 회의 글을 통해 기독교회가 실체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한다. 

 

■ 참고한 책
Beker, J. Christiaan. Heirs of Paul:Their Legacy in the New Testament and the Church Today (Grand Rapids, Mich: William B. Eerdmans Pub), 1996. 
*각주는 생략했음을 알립니다.-필자

 

 

한수현
감리교신학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Th.M.), 시카고 게렛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M.Div)한 뒤, 시카고신학교에서 바울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분야는 바울 서신, 복음서, 유대 묵시문학이며, 박사 논문은 고린도전서 15장의 ‘죽은 자의 부활’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 짓는 연구 작업의 결과물이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강사로 바울 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교회와 사회를 바울 서신과 바울 신학에 비추어 살펴보는 여러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한수현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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