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호 독서일기]

 

   
▲ 《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 이수현 번역
아작 펴냄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우리 의식에 딱 들러붙어 있어, 구별해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이것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그런데 이 ‘낯설게 보기’가 특기인 장르가 있다.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소설)다. 허구적인 판타지와는 달리, SF는 ‘과학’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순수과학이 아닌 ‘개연성 있는 상상력’을 말한다. 즉,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혹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을 가상 시공간 속에서 있음직하게 그려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SF에서 묘사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시공간이다. 이곳에는 인간과 차이가 없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또는 끊임없이 되살려져 전투병이 되는 이미 죽은 자들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진짜 인간’과 ‘가짜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인간에게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가능하기에 발전시킨 기술로 인간이 착취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SF를 읽는 독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연스레 던지게 된다. ‘무엇으로 인간을 특정지을 수 있으며, 이를 묻지 않는 사회는 어떤 이들을 내모는가?’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이로운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기술인가, 가치인가?’ 
 

여성은 SF를 쓸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리다
이처럼 독자들을 사유하게 만드는 장르여서일까, 혹은 SF문학이 여성에게는 너무 ‘과학적’이라고 느껴져서일까? 초기 SF문학은 여성은 쓸 수 없는 장르로 여겨졌다. (남성 독자가 주된 독자층을 이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깨뜨린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역시 놀랍지 않다. 

《체체파리의 비법》을 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다. 저자는 전직 군인이자 CIA 정보원이었는데, 필명으로 남성 이름을 고른 것은 직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았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여성의 글이나 페미니즘 소설이 아닌 하나의 SF소설로 읽히길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크게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못생긴 소녀가 아름다운 기계 여성의 신체로 정신이 접속되어 대중에게 소비되는 이야기를 그린 〈접속된 소녀〉, 여성들만 사는 세상에 떨어진 남성들이 등장하는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등 한 편 한 편이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남성 이름을 쓰고, 여성을 성적으로 가감 없이 욕망하는 남성 화자를 주로 내세우지만, 역설적으로 그럼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표제작 〈체체파리의 비법〉은 다음과 같은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만약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여성 살해가 사실은 전염병에 의한 결과라면? 그리고 이것이 지구라는 (이를 파괴하는 인간만 없앤다면) 좋은 정착지를 차지하기 위한 외계인(소설 속에서는 이들을 ‘천사’로 묘사한다)이 꾸민 짓이라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구부정했던 몸을 곧추세우게 된다. 

지구에서 인간을 퇴치하는 방법: 여성 살해
생태학자 앨런은 줄기파리를 퇴치하기 위해 집을 떠나 이국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고, 성과를 내고 있다. 힌트를 얻은 것은 이전 과학자들이 체체파리를 퇴치했던 방법에서였다. 앨런은 줄기파리 종에서 수컷보다 드문 배란기 암컷을 단종시켜 생태계에 풀어 놓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의 집이 있는 미국에서는 ‘아담의 아들들’이라는 신흥 종교가 나타난다. 이 종교의 신봉자들은 여성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며 세계의 ‘정화’를 위해 페미사이드를 자행한다. 그뿐 아니다. 적도수렴대를 중심으로 일반 시민에 의해서도 여성 성범죄 및 여성 살해가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세계는 이를 방관한다. 공권력은 제재가 없고, 일반 종교마저 교리를 내세우며 이것이 온전한 인간(남성)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상한 건 아무도, 아무 대처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지. 너무 큰 일이라 그런 걸까. 셀리나 피터스는 신랄한 평을 몇 가지 내보냈어.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 같은 거.” (23쪽)

평범한 가장 앨런은 가족을 구하고자 미국으로 돌아오지만, 땅에 발을 들여놓음과 동시에 같은 병이 걸린다. 딸을 살해하게 된 남편이 자살한 후, 앤은 살아남기 위해 ‘사내애’ 같은 행색으로 도망을 전전한다. 그러던 차에 ‘천사’로 불리는 존재를 만난다. 

“난 놈들이 우리에게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아서 멸종하게 한 거죠. 왜냐고요? 사람들만 없으면 좋은 곳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없앨까요? … 이런 식으로 하면 혼란도, 호들갑도 없어요. 우리가 체체파리에게 했던 것처럼요. 약한 고리를 집어서 공격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53쪽)

낯선 세상에서 늘 마주하는 기시감
이 이야기에서 ‘낯선’ 것은 무엇인가? ‘천사’라는 존재, 이를 숭배하고 ‘정화의식’을 벌이는 사이비 종교, 적도수렴대 부근에서 전염되는 페미사이드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낯섦 속에 어딘가 ‘익숙한’ 것이 있다. 여성 성범죄를 교리로 정당화하는 일부 종교집단, 여성혐오를 옹호하는 문자적 성경 읽기, 만연한 성범죄와 끊임없는 여성 살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봉쇄조치가 내려진 국가에서 급증하는 가정 폭력이 그렇다. 또한 국내 바이러스 확진자보다 더 많은 수의 n번방 이용자들이 불법촬영물을 구경하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공유했음에도 국가적 ‘재난’이 되지 않는 우리 사회 모습과도 겹친다. 

온갖 낯선 것들이 등장하는 SF를 읽을 때마다 만나는 기시감을 오늘도 생경하게 마주한다. 무엇으로 인간을 특정지을 수 있으며, 이를 묻지 않는 사회는 어떤 이들을 내모는가?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