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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고린도를 걷다

기사승인 [0호] 2020.04.28  14: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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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 벤 위더링턴 3세 / 이레서원 펴냄

1,000년 후 사람들이 오늘을 '읽는'다면
지금은 저녁 9시 10분전. 내 앞에 앉아있는 큰아들은 조금 전 브루노 메이저라는 가수의 라이브 채팅에서 들었던 노래에 영감을 받아 조율이 덜 된 기타를 들고 영어 가사로 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가만히 살피며 물어보니 ‘Nothing’ 이라는 곡의 가사를 가지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며 녹음을 하고 있단다. 녹음이라고 해봐야, 아이폰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하다가 어색하면 끊고 추가로 녹음버튼을 누르는 아이디어 기록 수준의 것이지만. 가사는 동생이 새로 장만한 아이패드에서 크롬(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유사한 인터넷 브라우저)을 열어서 네이버 포탈에서 검색해서 나온 한 블로그에 나와 있는 영어와 해석 페이지를 보고 있다. 보통 저녁 시간에 아파트에서 노래나 악기 연주를 하는 것은 층간 소음 문제로 조심스러운 것이지만, 어쿠스틱 미니기타를 피크 없이 손톱으로 가볍게 스트로크 방식으로 연주를 하며 가성으로 부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위 문단을 1,000년 후의 유럽 사람들이 읽는다면 어떤 해설이 필요할까. 가수 이름부터 포털 사이트의 검색 시스템에 대한 설명, 어쩌면 층간 소음 문제가 발생한 배경을 아파트라는 당시의 주거형태를 묘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 알 만한, 추측 가능한 그런 부분들을 대강 건너뛰다가 나름 중요하다 생각되는 단어에 각주를 달거나 별항으로 자세히 설명을 하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별것 아닌 소소한 사건의 자세한 묘사를 통해 이 시대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얼마만큼 가능할까. 대답은 글쎄다. 하지만 이런 문단들이 흥미롭게 이어져서 적당한 분량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거기다 중요한 사회적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엮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만족스런 수준에 이를 수도 있겠다.

고린도에서 일주일 보내기
이 책은 대략 이천 년 전(몇 시간 전 우연히 본 책 제목 때문인지 갑자기 아라비아 숫자 대신 이렇게 적어본다), 조금 더 자세히 셈해보자면 일천구백육십팔 년 전의 고린도 지역에서 일어난 가상의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이미 언급한 긴 시간의 간격과 8,000 킬로미터가 넘는 지리적 거리를 갖는 이 소설의 배경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 피로감을 가져오지만, 제목에서 드러나는 ‘고린도’라는 지명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이야기와 맞닿는 이야기일 거라는 일종의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글 번역판에 붙여진(것으로 보이는) ‘바울 사역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 이야기’라는 부제에까지 시선이 가닿으면 곧 우리는 바울, 고린도교회와 서신, 초대교회 등의 단어들이 머릿속에 팝업창처럼 떠오르는 걸 경험하게 된다.

   
▲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벤 위더링턴 3세 / 오현미 옮김
이레서원 펴냄

파울로스, 즉 바울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기서 반가운 성경 본문들을 직접 듣고, 성경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당연히 예상되는 고린도서신에 나오는 본문들이 설교자로서의 바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장면이라니. 게다가 또 다른 공동체를 향한 서신서를 기록하는 역사적 순간과 과정,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재판장면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 속에 빽빽하게 우겨넣는 저자의 노력으로 우리는 낯선 지명과 단어, 묘사들을 지나 낯익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만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이라는 제목이 가져올 수 있는 사소한 오해도 있겠다. 자칫 주인공이 다른 곳에서 고린도를 방문해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예상하게 된다. 주인공이 긴 출장을 마치고 고린도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정작 고린도라는 낯선 곳에서 일주일을 새롭게 보내는 이는 바로 읽는 독자가 된다. 낯선 여행지인 고린도에서의 여러 경험들 중 개인적으로 자극적이었던 부분은 후각적인 묘사 부분이었다. 나름 후각에 민감한 편이어서인지 지나치게 자세한 여러 묘사들 중 유독 냄새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몸이 반응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달까. 추천사에서 한 교수님도 언급한 부분이니 나만의 경험은 아닌 듯 하다.

이 책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기’의 비중은 큰 편으로 총 15장으로 구성된 본문 222쪽(후기 제외) 중에서 24가지 항목으로 50쪽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략 책장 다섯 장을 넘기다보면 2쪽짜리 설명이 나오는 셈이다. 다루고 있는 소재들도 대체로 이야기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라서, ‘자세히 들여다보기’의 소재를 정하고 조사를 한 뒤 이들을 글감으로 엮는 과정으로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림도 31개(후기 포함)로 많은 편인데, 주로 유적과 유물 사진들이고 이해를 돕는 그림들과 도면도 있다. 그림과 관련해서는 아마존에서 미리보기를 훑어보다가 별것 아닌 것을 발견하는 의외의 기쁨을 경험했다. 원 출처 사이트의 변경이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영문판과 번역판의 사진출처 불일치 부분 일부와 9장에 나오는 ‘고관 의자’(curule chair) 사진이 번역판에는 누락된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난 그 의자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기어이 검색해서 다른 독자들은 보지 못했을 바로 그 의자의 모양을 알게 됐다. 천기를 누설하자면 고급소재의 접이식 낚시의자처럼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책들과의 비교
여기서 피할 수 없는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와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와의 비교를 간단히 하고자 한다. 이 소설의 특징을 짧게 잘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로버트 뱅크스의 이야기가 대체로 조용하고 묘사적인 편이라면 이 책은 훨씬 스케일이 크고 드라마틱하다. 물론 배경이 로마와 고린도라는 것, 해설 분량의 차이 등도 있다. 이야기 전개의 차이는 특히 중반 이후에서 그 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반까지는 사건의 급박한 진행보다는 상황과 사건의 배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중반 이후 이야기의 전개는 급물살을 타는데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다. 후반을 지나면서는 좀 급한 전개가 도리어 아쉬운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좀 더 길게 늘일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과 전반 부분에서의 꼼꼼한 부분들이 후반에서 성겨지면서 이야기에서 좀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띠는 것. 하지만 마음은 편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해피 엔딩’이 갖는 힘처럼.

마지막으로 후기를 중심으로 개인적 감상을 얹어 어쭙잖은 서평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 이야기는 허구이기는 하지만 바울이 세운 고린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 특히 로마서에 언급된 조영관 직분의 에라스도(에라스쿠스)의 사회적 역할과 상황을 소재로 하여 상상력을 동원한 것으로, 고린도 교회와 예배, 이를 둘러싼 사회적 정황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고린도 교회와 고린도서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신약배경사’를 수강한 일 없는 나로서는 이와 관련한 유용성을 가늠할 수는 없겠으나, 개인적으로 바울과 고린도서신, 데살로니가서신이 친근하게 다가온 것과 초대교회 관련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 내가 생각하는 서평쓰기의 원칙
이번 서평을 쓰기 전 뚜렷한 명분도 없는 나름의 원칙들을 정했는데 원칙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많은 이들이 작성하고 공유하고 있는 이 책의 서평을 읽지 말 것. 나도 모르게 자칫 다른 서평들의 짜깁기를 만들지도 모르니. 책에 정성스레 적힌 추천사를 꼼꼼히 읽고 나서 이미 그 내용들에 발목을 잡힌 느낌이다. 과연 추천사에 나오지 않은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내서 쓸 수 있을까. 둘째, ‘서평’에 관한 책과 글을 (다시) 읽지 말 것. 이미 읽은 내용의 어렴풋한 금기와 강조점들만으로도 글을 쓸 용기를 벌써 잃고 있는데 거기다 시험 직전 친구 노트 빌려보는 느낌까지 더하고 싶진 않다. 이럴 즈음에 한 페친이 올린 일종의 ‘서평 성공기’(?)는 너무 강력한 유혹이었다. 이제는 볼 수 있겠다.

 

성병혁

 

성병혁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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