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미디어 솎아보기]

 

식품위생법을 보면, 위해식품 등을 판매할 목적으로 채취·제조·수입·가공·사용·조리·저장·소분·운반 또는 진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쩌면 ‘가짜뉴스’에도 딱 들어맞는 법이라 생각한다. 위해식품은 몸을 망치고 가짜뉴스는 영혼을 망친다. 더군다나 한반도와 관련한 가짜뉴스는 남북·북미 관계를 갈라놓고 경제마저 위태롭게 한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 관련 가짜뉴스의 생산(출처), 유통 과정을 살펴보되 제대로 된 북한 관련 뉴스를 제공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짚고자 한다. 많은 언론이 가짜뉴스 유통자가 됐지만, 그렇지 않은 언론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 관련 뉴스의 생산·유통에 대하여
북한 관련 뉴스의 출처는 대북지원 국제기구, 한국·중국 등의 통계, 북한 언론, 정보기관, 탈북자나 조선족 등이다. 이번 ‘김정은 위중설’의 취재원은 탈북자를 통한 북한 주민으로 보인다. 김정은 수술설을 가장 먼저 보도한 〈데일리NK〉는 4월 20일 자 “김정은, 최근 심혈관 시술 받았다…여전히 특각서 치료 중” 기사에서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 내에 위치한 김씨 일가의 전용 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특각에 머물며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김정은 위중설’이 논란이 된 것은 〈데일리NK〉의 이 보도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 CNN 방송 탓이 컸다. ‘세계적 언론’이기에 그만큼 파장의 위력도 클 수밖에 없었다. CNN은 4월 21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은 〈데일리NK〉 보도를 CNN이 인용하면서 미국 관리의 확인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다. 이 속보를 국내 주류 언론들이 다시 인용해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탈북자 → 국내 언론 → 해외 언론 → 국내 언론’이라고 하는 북한 관련 가짜뉴스의 경로를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이번 김정은 위중설 가짜뉴스 논란과 관련해 가장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탈북민인 태영호·지성호 당선자다. 국회의원 당선인이라는 신분으로, 단정 지어 말한 책임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에게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과하다. 두 사람 외에도 김정은 위중설을 퍼뜨린 사람은 많았다.    

   
▲ YTN 뉴스 화면 갈무리

대표적인 사람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은 ‘김정은 위중설’이 이슈가 된 4월 2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 신변에 이상설이 제기될 만큼의 징후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상 징후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윤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최근 북한에서 평양시를 완전히 봉쇄한 상황”이라며 “국가보위부를 통해 (봉쇄) 조치를 취했는데 바로 며칠 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의원의 발언이나 신분의 무게는 태·지 당선자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지만, 비판의 강도나 빈도는 훨씬 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짜뉴스의 유통자들
무엇보다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은 가짜뉴스의 유통자인 언론들이다. 식품위생법상으로 치면 ‘위해음식’을 가공·사용·조리·운반·진열한 것이다. 여기서는 그 정도를 가려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노골적으로 가짜뉴스를 주장·유통한 기사들이다. 

〈연합뉴스〉(4.22, 김호준 기자)는 “북한에서 작년 말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긴급시 최고지도자 권한을 대행하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와 관련해서는 “고혈압과 심장병, 당뇨병이 복합적으로 악화해 프랑스 의사단이 1월 북한을 방문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중설을 넘어 김여정 후임설을 주장하는 외신 보도를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헤럴드경제〉(4.22, 김수한 기자)는 “기습적으로 터져 나온 북한 지도자 건강 이상설로 최근 대중의 뇌리에 잊혀졌던 미국의 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며 이른바 2009년 미국에서 나온 ‘북한 분할통치’를 지도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국민일보〉(4.22, 조성은·손제호 기자)는 “한미 당국이 김정일의 뇌졸중 CT(컴퓨터단층촬영) 자료를 입수해 그의 여생이 3-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추정했는데 적중했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 역시 선대와 동일한 수준의 극비 정보로 다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현재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을 경우 앞으로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했다.

〈세계일보〉(4.23, 박병진 기자)는 “2014년 10월 영국의 한 일간지가 김정은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비만 치료를 위해 중국에서 ‘위 밴드 수술’(고도비만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사진을 보면 이런 노력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중앙일보〉(4.27, 사설)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터질 경우 우리가 의지할 가장 중요한 보루는 역시 한·미 동맹일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과의 물샐틈없는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양보할 것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그러려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조속히 타결 짓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뉴시스〉(4.29, 김지현 기자)는 국회 입법조사처가 4월 29일 발행한 〈북한 당 정치국 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비교적 상세히 소개했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김여정의 지위와 역할이 ‘당중앙’(후계자)의 역할까지 확대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감한 시기에 국회까지 나서서 김정은 중병설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남성 중심성이 강한 북한에서 여동생을 미리 옹립하려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지적도 덧붙였다.

가짜뉴스를 노골적으로 보도했다가 낭패를 당한 언론도 있다. 북한·통일 전문 매체인 〈통일뉴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0시 30분에 현지지도 길에서 급변으로 서거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오전 보도했다”는 기사를 냈다가 삭제하고 사과문까지 게재했다. 이 오보로 편집국장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가짜뉴스의 소스, 대북 소식통들
기사에서 익명이 등장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아주 민감하거나 거짓말이거나. 이번 김정은 위중설에 등장한 익명들은 후자였다. 앞서 윤상현 의원이 김정은 신병 이상설을 사실이라고 말한 소스는 ‘북한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누구냐는 기자들 질문에 윤 의원은 “정부 소스는 아니고, 북한의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장 정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얼굴빛이 이상하다고 보도했던 〈세계일보〉의 소스 역시 ‘대북 소식통’이었고, 김정은의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했던 지성호 당선자의 근거도 ‘밝힐 수 없는 정보원’이었다. 4월 21일 미국 NBC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심각한 상태에 있으며 통치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고 한 사람은 ‘복수의 (미국) 정부 관계자’였고, “미 정부가 김 위원장의 유고 상황에 대비해 광범위한 계획을 갖고 있고 이 계획이 김 위원장의 사망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감안하고 있다”는 폭스 뉴스(Fox News)의 보도는 ‘국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한 것이다.

   
▲ CNN 뉴스 화면 갈무리

4월 22일 자 〈조선일보〉의 1면 기사 ‘북한의 심장이 이상하다’(조의준 워싱턴 특파원)는 ‘복수의 워싱턴 외교 소식통’, ‘트럼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이 심장수술을 받았고 뭔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심지어 전문적 식견을 갖춘 실명의 가짜뉴스도 선보였다. ‘오랫동안 북한을 취재해온 애나 파이필드 WP 베이징 지국장’은 “김 위원장의 행방과 건강 상태를 놓고 며칠째 온갖 설들이 난무한 가운데 평양에서 사재기가 벌어지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보도했다. 평양 주민들이 처음에는 수입품 위주로 사들이다가 며칠 전부터는 생선 통조림과 담배 등 자국 제품도 사재기하고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 “평양에서는 헬리콥터들이 저공비행 중이며, 북한 내 열차와 중국 국경 밖 열차 운행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4.26, 윤고은 기자)가 전했다.

이처럼 익명으로 밝힌 주장들은 하나같이 가짜이거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모두 과녁을 빗나갔다.

김정은 관련 가짜를 바로잡으려 한 기사들 
반면, 김정은 관련 가짜뉴스를 의심하고 검증하고 반박한 기사도 적지 않다. 〈미디어오늘〉(4.21, 조현호 기자)은 “(김정은 위중설에 대한) 탈북민 출신의 반론도 있다”며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21일 낮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인용했다. 주 기자는 “완전 확실한 정보 받았다”며 “민감하니 나중에 풀겠지만 결론은 김정은 향산, 평양 병원 의사 수술설은 100% 오보라고 단정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4.21, 정아란 기자)는 정부가 일관되게 ‘북한에 어떤 이상징후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장지도를 위해 원산에 머물고 있다’고 언급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며 “일파만파 퍼지던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한국 등 각국 정부가 이러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수그러드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의 또 다른 기사(5.2, 최선영 기자)는 “북한 권력에 대한 기초 정보와 실상에 어두운 외신들에 의해 ‘대북 소식통’을 가장한 탈북민들의 주장은 ‘신빙성 있는 사실’로 둔갑했고, 이는 탈북민과 보수 매체의 주장이 사실인 양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은 국내외를 돌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이기도 하고 병자로 만들기도 하면서 분단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김정은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임으로써 ‘김정은 위중설’은 막을 내렸지만, 일각에서는 후속편이 이어지기도 했다. “오늘(2일) 공개된 모습을 보면 김 위원장이 전반적으로 건강한 건 맞는데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도 일부 있기는 합니다.”(SBS, 5.2, 안정식 기자) 심지어 탈북자나 보수 유튜버 사이에서는 20일 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한 김정은은 가짜라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위해식품이 끊임없이 제작·유통되는 것은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듯, 북한 관련 가짜뉴스가 반복해서 생산·전파되는 것도 누군가의 끊이지 않는 필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해식품의 제작·유통은 처벌을 받지만, 가짜뉴스의 제작·유통은 처벌받지 않는다. 처벌이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는 것이다.  

 

 

김성원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뉴미디어학(석사)을 공부했다. CCC 간사, 〈국민일보〉 기자,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상임이사로 일했다. 지금은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유코리아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다. 통일은 장밋빛 환상이 아닌 분단의 아픔과 죄악을 회개하고 고치는 데서부터, 나 자신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썼고, 《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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