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호 메멘토 0416]

거짓 평온을 무너뜨린 핵폭발,  4·16
달력에 적힌 공휴일은 국가나 사회가 정하여 다같이 쉬는 날이다. 대부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기념비적인 날이거나 역사적인 전기가 되는 날인 경우가 많다.

올해 내 달력에는 새롭게 빨간 공휴일을 하나 더 써넣었다. 물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기념일은 아니다. 나 홀로, 아니 이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함께 아파하는 이들이 스스로 정한 날이다. 4월 16일.

이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수학여행 길에 해상 사고를 당한 학생들을 정부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무능을 보여준 참사가 일어난 비극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념하는 슬픈 날, 생떼 같은 자식들을 구조하지 않고 바다에 수장시킨 대한민국의 무능과 집권자들의 악함에 치를 떨던 날로 기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이다.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부여된 정부가 자국 영해에서 사고를 당한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하고 침몰하는 배에 갇혀 있던 시민들과 학생들의 구조를 포기하였다. 무슨 이유로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4·16 참사의 핵심이다.

세월호 참사는 시민운동이나 민주화 투쟁으로 인한 희생이 아니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아니 학교수업의 연장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 304명이 한꺼번에 꽃다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이날 우리는 언론의 거짓 생중계를 통해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생한 영상으로 지켜보았다. 잔인한 날,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평온한 줄 알았던 우리의 삶이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들로 겹겹이 포위당해 있음을 절감하는 날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거짓 평안 위에 세워진 것임을 깨달은 날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 나라가 국민 개개인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다. 나라가 있으되 그 나라가 재난의 위기로부터 국민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파괴할 괴물이 되어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난 1997년의 IMF 금융위기 때처럼, 정권을 잡은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되고 무능한 국가 운영을 감추고 국민들을 속였다. 정부의 무능한 위기 대응 능력은 국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국가적 차원의 재난 대처 시스템과 안전망이 허물어진 나라는 그 자체로 언제라도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폭발물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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