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커버스토리]

이광하 담임목사와 강경희 운영위원. Ⓒ복음과상황 정민호<br>
이광하 담임목사와 강경희 운영위원. Ⓒ복음과상황 정민호

“파괴하고 무너뜨려라. 그것이 은혜의 시작이다.”

2013년 겨울,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의 《특강 예레미야》(IVP)가 출간되고 몇 달 안 된 시점이었을 거다. 표지 문구가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당시 유명 목회자 성 추문을 비롯해 한국교회를 잠식해가던 얼룩들, 신앙의 사사화(私事化)만 부추기는 출석 교회 내 설교와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지난 신앙 실천들이 모두 사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함은 아니었나 심각하게 돌아보면서 이내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질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특강 예레미야》는 정의와 공의에 대한 예레미야서의 전망을 통해 오늘날 교회와 사회 현실까지 살펴보고, 뿌리 뽑힌 듯한 자리에서도 회복의 여명을 엿보며 기다릴 수 있음을 일깨웠다. 굳어진 상태에 균열을 내어 각성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복음의 공공성》·《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구약으로 읽는 부활 신앙》 등, 김근주라는 신학자가 쓴 거의 모든 저서가 그랬다. 김 교수는 구약학자로서 정의와 공의, 희년 사상에 주목하며, 마냥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활동가·운동가의 정체성도 묻어나는 호소력 짙은 저술을 생산성 있게 쏟아냈다. 특히 그는 성경의 줄기찬 관심사가 약자에 대한 긍휼임을 그간의 저술을 통해 짚어온 터라, 동성애자 혐오를 앞세우는 교회들에 침묵하기 어려웠을 거다. 최근 5년을 전후로 한국의 주요 장로교단들이 그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이유를 들어 소속 교회에서의 특강을 금지하고(예장합동, 2019년), 일산은혜교회를 향해 청년부 담당 협동목사인 그의 사임을 권고하고(예장합신, 2021년), 그의 이단성을 조사하는(예장통합, 2022년) 등 사건이 속속들이 일어난 것은 올곧은 신앙 양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2022년 9월 말 일산은혜교회 교인이자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지지향갤러리 강경희 대표가 ‘김근주읽기’를 제안하는 글을 본지에 투고해 383호(2022년 10월호) 온라인판에 게재했을 때1)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응당 한국교회에 필요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여겼다. 더군다나 충분한 대화와 숙의 과정을 거쳐 김 교수를 협동목사에서 사임시키지 않고 소속 교단이던 예장합신 탈퇴를 선택한 일산은혜교회의 교인이 쓴 글이라서, 시대착오적 이단 시비로 곤욕을 겪는 신학자에게 힘을 더해주는 유의미한 구호이겠거니 싶었다. 이 제안에서 출발한 모임이 햇수로는 3년, 월수로는 16개월을 채우고, 120여 명(70%가 일산은혜교회 바깥의 신자)이 참여하는 ‘읽기 공동체’로 꽃피울 줄은 몰랐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복음의 공공성》·《구약으로 읽는 부활 신앙》·《구약의 숲》·《다니엘처럼》 등을 같이 읽었으며, 현재 참여자 중 일부가 김 교수의 ‘에스겔서’ 특강(일산은혜교회 수요성서학당)을 듣는 중이다.

얼핏 보면 김근주 교수 팬덤이 아닌가 싶지만, 들여다보면 그런 추측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김근주읽기는 공공성·민주성·개방성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복음’과 ‘상황’을 잇는 읽기 공동체로서 평신도 독서운동/신학운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2023년 6월부터 발행해온 뉴스레터를 읽어보면, 참여자들의 서사는 김근주‘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늘날의 치열한 신앙 현실을 드러내는 몸짓으로 읽힌다. ‘함께 읽고 쓰고 노는 김근주읽기’에 얽힌 사연을 듣고자 인터뷰를 청했다. 그러자, 강경희 대표는 김근주읽기를 제안하도록 촉발하고 이를 이끌도록 독려한 이가 있다며, 일산은혜교회 이광하 담임목사를 대화 파트너로 지목했다.

2월 1일 일산은혜교회에서 두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강 대표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김근주읽기 운영위원 4인(강경희·강미경·김은석·황상수)의 목소리를 담아 A4 9페이지짜리 참고 자료를 인터뷰 전에 보내오는 열정을 보였다. 다음 내용은 대면 인터뷰와 참고 자료2)를 정리한 것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김근주읽기를 제안하시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강경희: 이광하 목사님이 2022년 9월 8일 동성애 이슈를 앞세워 김근주 목사님을 부당하게 탄압하는 교단의 행위에 대한 심경을 SNS에 올리셨는데, 그 글이 제 마음을 찔렀죠. 비통한 슬픔과 통탄할 절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김근주 목사님 한 개인을 향한 몰상식한 공격과 비난에 분노와 모욕감을 느꼈어요.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고, 어떻게 행동할까 고민하면서도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망설였습니다. 궁리 끝에 행동을 위해 두 가지를 고려했어요. 가능한 한 ‘선한 방식’으로 대응하자. 시간이 걸려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방법을 찾자.

이 사태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잖아요? 한국 교계의 뿌리 깊은 문제가 표면화된 사건이니까 간단히 해결되거나 변화될 수 없겠죠. 김 목사님에 대한 총회 결정이 해결의 본질일 수도 없고요. 사안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도 개개인의 인식 전환과 공동체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느꼈어요. 저술·설교·강연·기고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꾸준히 활동을 해오신 김 목사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이 많으니까 함께할 분들이 계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이광하 목사님도 응해주실 것 같았고, 교회 내에서도 마음을 모아주지 않을까 싶었죠.

비교적 제가 잘하고 오래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공동체 책 읽기 모임’으로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2022년 9월 18일 주일 저녁에 이광하 목사님에게 김근주읽기를 제안하는 메시지를 드렸어요. ‘초교회적이고 공공성을 살리는 모임이 되면 좋은 반응도 끌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만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근주읽기를 제안하는 글을 써주면 〈복음과상황〉에 보내겠다고 하셨어요. ‘김근주 읽기를 함께하자’는 글을 써서 전달했고, ‘독자의 소리’란에 게재됐습니다. 첫 시작은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였고요. 교인들과 외부 참여자를 포함해 65명이 2주 동안 함께읽었고, 10월 22일 첫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nbsp;<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목사님은 어떤 생각으로 저 제안을 받으셨나요?

이광하: 김근주 교수님에 대한 교단들의 횡포에 분개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기성 교단의 교권이 교리적 잣대로 한 신학자의 인권과 그의 학문적 결과물을 이렇게 정죄할 수 있나 싶었죠. 상식적으로만 봐도 한 개인에 대한 폭력이잖아요. 다 함께 아파해야 할 문제인데도, 많은 교회가 이런 폭력에 무감각하더라고요. 한국교회가 이데올로기화되어 ‘동성애’라는 프레임으로 김 교수님이 그동안 일궈놓은 성과를 훼손하는 일도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김근주는 공공재다’라고 생각해요.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 가톨릭은 한 신학생이 신학자가 되고 신학적 결과물을 내면 교회 자산으로 관리·보호·육성하거든요. 신학자는 개인 결단만으로 나오지 않아요. 공동체의 협력과 이야기가 필요하죠. 여기 얼마나 많은 공적 자산이 들어가겠어요?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키워낸 분인데, 교권 세력에게 무자비하게 훼손된 거죠. 하나님 나라 희년 생태계에 갑자기 공룡들이 나타나 막 밟고 뭉개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상황인 거예요. 생태계를 회복할 방도가 없었죠. 이때 김근주읽기를 제안받았어요. 이건 김 교수님 개인의 진실을 알리고 공적 자산으로서 그를 보호하는 방식이기도 하겠다 싶었어요.

한 개인이 교권 세력에 대응하려면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하잖아요? 김 교수님의 진실과 진의를 함께 나누고 공론장에서 대화하도록 이끄는 자원이 필요했어요. 하나의 팬덤이 아니라 공론장을 만들어가는 시민운동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김근주읽기를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2022년 예장통합 총회에서는 김근주 교수님에 대한 조사가 ‘이단성 없음’으로 결론이 나왔잖아요? 만약 실제로 이단 정죄가 벌어지면, 교회는 대응할 만한 창구가 못 되거든요. 의사 결정의 과정과 절차가 복잡하고 교인들이 다 신학자가 아니다 보니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거든요. 이렇게 울타리를 칠 필요도 있는 거죠. ‘이 사람, 친구 많으니까 건드리지 마.’(웃음)

강경희 대표는 현대시를 공부해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4권의 시 평론집을 출간했다. 20여 년간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2021년 가을부터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의 지지향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강경희 대표는 현대시를 공부해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4권의 시 평론집을 출간했다. 20여 년간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2021년 가을부터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의 지지향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강경희 대표님은 2022년 4월 일산은혜교회에 등록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얼마 되지 않아 김근주읽기까지 제안하시는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이전부터의 신앙 내력이 궁금합니다.

: 기독교 신앙이 증조부 대부터 시작된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가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에요. 성장하면서 일제강점기에 굳세게 믿음을 지킨 증조부와 할아버지로 이어진 신앙인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들었고요. 아버지는 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실천에 이르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빈 껍데기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규범과 의무가 강제되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이 캠퍼스에 가득했던 시절을 보냈는데, 제겐 소위 모범적으로 보이는 신앙인들의 삶이 너무 안일하고 평온해 보였어요. 목사님들 설교 말씀도 은혜롭기보다 현실을 배제한 공허한 소리와 관념적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교회와 다소 거리를 두며 엉거주춤하고 어물쩍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지속했죠. 2006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평생을 기독교인으로서 일관되게 사셨던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이때 진지하게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되물었고, 기독인의 양심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근주읽기는 이런 제 내면의 생각과 다짐이 촉발된 일이기도 해요.

일산은혜교회는 김근주 목사님 영상을 보고 알게 됐어요. 코로나 시기 신학을 전공한 조카가 김 목사님 영상을 처음 소개해 주었는데요. 유튜브로 강의와 설교를 보면서 ‘그동안 내 질문과 고민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위안받게 되었죠. 그전에는 ‘나는 왜 항상 교회를 은혜가 충만하게 다니지 못하고 못된 습관처럼 설교에 의문과 비판이 생길까.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실은 한국교회가 주입한 신앙의 틀에 저를 억지로 끼워 맞추겠다는 생각이 문제였는데 말이에요. 제 고민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맞는 안경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김 목사님 영상을 보다가 책도 찾아서 몇 권 읽어봤죠. 결론적으로, 교권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단 탈퇴 결정을 내린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 분들과는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산은혜교회에 등록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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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목사님은 혹시 강경희 대표님이 처음 오신 날이 기억나시나요?

: 일산은혜교회도 예배 시간에 맨 앞자리는 보통 수석장로님이나 안수집사님 자리예요. 그래서 성도님들이 1열부터 3열까지는 앉지 않고 비워놓는 경향이 있어요. 어느 날 자매이신 강경희 집사님 부부와 강미경 집사님 부부가 오셔서 3번째 줄 빈자리 양쪽에 앉으시더라고요. 어떤 교회의 기둥 같은 분들이 어쩌다 방문 예배 오셨나 했죠. 그런데 그다음 주에도 앞쪽 자리에 앉으셨어요. 왜 오셨는지 계속 궁금했었죠.

나중에 등록 과정에서 일산은혜교회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교단 탈퇴에 이르렀는지 유심히 보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응원이라도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셨다고. 그때가 교단을 탈퇴하고 나서 바깥에서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고 있을지 몰라 무척 조심스러운 시기였어요. 정치적 입장이나 동성애 문제로 부정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생각도 했는데, 두 가정이 응원 메시지를 주셔서 성도님들도 큰 격려와 위로를 받았어요.

김근주읽기도, 기존 제직분들이 아니었는데도 새로 오셔서 좋은 제안을 주신 거잖아요? 일산은혜교회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향을 보여주신 셈이죠. 모든 성도가 주체성을 갖고 공동으로 합의하며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런 미래를 보여주는 분들이라 따라 걷고자 합니다. 김근주읽기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 교인분들에게 진심의 환대를 경험했죠. 진정한 환대는 낯선 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교회에 처음 왔을 때부터 교인분들이 함께할 자리를 내어주셨어요. 그게 참 어렵잖아요?

처음 김근주읽기를 제안했을 때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었어요. 제 나름대로 취지나 목적은 있었지만, 방법론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느꼈죠.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의 문법을 배워가며 김근주읽기를 꾸리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참여자 중 교인이 30%, 외부인이 70% 정도인데요. 처음에는 참여자 중 절반 이상이 일산은혜교회 교인분들이셨어요. 이분들 정서와 생각을 존중하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교회의 문법을 알아가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담임목사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김근주읽기 기본 원칙이 공공성이에요. 운영위원 세 분(강경희·강미경·황상수) 모두 교회에 등록하신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운영위원을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던 거고요. 〈뉴스앤조이〉 사역기획국장이었던 김은석 선생님은 교인이 아닌 외부인인데요. 김근주읽기가 교회에 한정되지 않아야 하고 운영 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개방성이라는 가치를 따라 함께해달라 요청드린 셈이죠. 김근주읽기는 전체 교인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 아니고, 교회 내 자율 모임 중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공공성을 지향하도록 지원하는 입장입니다. 지금은 외부에서 훨씬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어서 성도님들이 놀라워하시죠.

김근주읽기 홍보와 모임 운영을 위한 기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23년 8월 진행 한 텀블벅. 김근주 교수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봄이다프로젝트와 협력하여 준비했 다. (사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갈무리)&nbsp;<br>
김근주읽기 홍보와 모임 운영을 위한 기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23년 8월 진행한 텀블벅 펀딩. 김근주 교수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봄이다프로젝트와 협력하여 준비했다. (사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갈무리)

- 김근주읽기에 어떤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 개교회 사역이 아니라 공교회를 위한 일, 시민운동 같은 모임으로 참여의 폭이 넓다는 사실이에요. 온라인 모집을 했을 때 프랑스, 미국, 튀르키예 등지에서 참여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이제 김근주읽기는 실제 과정에서 평신도 신학운동처럼 진행되고 있어요. 김근주 교수님은 치밀한 방법론을 갖고 성경을 양심적이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구약학자잖아요? 그 점을 참여자들이 새로 깨닫고 김 교수님의 연구와 이야기를 이해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평신도 참여자들이 직접 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신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법에 관심을 두면서 참여하고 있다는 게 놀랍죠.

다른 의의로는 김 교수님의 경우처럼, 교권에 의한 피해자가 발생하면 얼마든지 성도들이 함께하는 김근주읽기 같은 모임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이죠. 새로운 저항 사례와 변화의 길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 김근주읽기는 현재 두 개의 단톡방에서 120여 분의 참여로 진행되는데요. 활발한 분도 있고, 소극적인 분도 있고, 관망하는 분도 있어 다채로운 모습입니다. 주체적이고 자율성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 김근주읽기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책 읽기 모임이 거듭되고, 밀도 있는 독서와 묵상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깊이 연결된 존재임을 확인했습니다. 단톡방의 읽기 소감과 뉴스레터 원고를 받아볼 때마다 김근주 목사님과 읽기 공동체를 향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느끼죠. 각박한 시대에 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뭉클한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귀한 분들이에요. 제게 김근주읽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우정의 회복과 연대’라 말하고 싶네요.

인간은 공동체로 관계하고,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사회를 만들어왔죠. 이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유효한 가치라 생각해요. 신뢰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의 기초는 절대 사라지고 포기될 수 없는 정체성이라고 봐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구성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서로를 분리하고 신뢰를 파괴하고 경쟁 체제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도록 하는 건 악의 프레임이 아닐까요?

작은 공동체의 책 읽기 모임을 통해 저는 관계의 신뢰가 주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경험했어요. 지지하고 격려하는 공동체, 서로 믿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 어떤 문제와 갈등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작지만 연대하고 협력해서 새로운 모험과 시도를 펼칠 수 있는 모임이 김근주읽기가 낳은 성과이기도 합니다.

김근주읽기 1주년 모임. (사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갈무리)&nbsp;<br>
김근주읽기 1주년 모임. (사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 갈무리)

- 김근주읽기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가 특별하게 다가오던데요.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담아낸 진한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참여자들 개개인의 삶과 신앙, 사회와 교회 상황이 텍스트와 교차되며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김근주읽기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읽기 공동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 어느새 우리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것 같아요. 뉴스레터와 단톡방에서 나눈 진지한 이야기들이 포개지고 쌓이면서 공동체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동시대의 사건과 경험을 통과하며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사지요. 오늘날을 서사가 사라진 시대라고 하잖아요? 김근주읽기는 휘발되는 말이 아니라 기록하고 책임지려는 주체들의 이야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히 응답하고 분투하는 신앙인들의 이야기예요. 김 목사님 책을 단순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기에,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믿음도 생겼어요. ‘우정의 회복’이라 말했는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런 글들 못 내놓거든요. 함께하는 분들에 대한 연대, 신뢰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읽기 공동체는 이제 이야기 공동체이기도 해요.

: 이분들 이야기가 소중해요. 교권에 의한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면서 우정과 연대의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김근주읽기가 새로운 매체, 의사소통 경로를 만들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죠. 우리는 보통 독서, 묵상, 큐티를 다 개인적인 읽기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도사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할 때 함께 읽었어요. 그런데 루터가 렉시오 디비나의 3단계로 ‘시련’을 언급하거든요? 시련 속에서 텍스트를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살아내는 거죠. 김근주읽기는 현대적 의미의 렉시오 디비나 같아요. 시련 속에서 말씀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공동체적으로 함께 경험하는 읽기 공동체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시련 속에서 성경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험이랄까요. 김근주읽기를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한국교회가 겪는 시련에 함께 참여하면서 공동체적 읽기를 경험하는 듯해요.

저는 교회를 사람책도서관(Human Library), 이야기 공동체로 정의해요. 서사를 상실한 시대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를 살아내는 사람들, 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될 때 존재 의의가 있어요. 김근주읽기에는 가나안 성도, 사역지 없는 목사, 소속감이 불분명한 분들도 참여해요. 이들이 함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가나안 성도가 늘고, 플로팅 크리스천(Floating christian, 여기저기 떠도는 크리스천)이 많다는데, 김근주읽기가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우리 시대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닐까요?

2023년 8월 9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전성민 원장(왼쪽)과 함께한 《구약의 숲》 북토크. 김근주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칠십인경 이사야서에 나타난 애굽 디아스포라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산은혜교회 협동목사이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김근주읽기 제공)&nbsp;<br>
2023년 8월 9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전성민 원장(왼쪽)과 함께한 《구약의 숲》 북토크. 김근주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칠십인경 이사야서에 나타난 애굽 디아스포라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산은혜교회 협동목사이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김근주읽기 제공)

- 김근주 교수님은 김근주읽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김근주읽기 첫 북토크가 열린 2022년 10월 22일에서야 저는 김근주 목사님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뵈었죠. 그때 사회자가 ‘김근주읽기 제안과 함께 읽기 과정을 보면서 어땠는지’ 소감을 물었는데 김 목사님 답변을 들으면서, 김근주읽기를 계속해야겠다고 확신했어요. 정리하면, ‘김근주읽기 광고가 나올 때마다 너무 과하고 송구하게 느껴져 난감했지만, 당신이 겪은 일에 대해 일산은혜교회 교인들로 대표되는 분들이 함께 표하는 항의이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간절함이 반영된 공동체의 의사라는 점에서 김근주가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이었어요. 개인적으로 만나 교감하지 않았지만 김근주읽기의 취지와 뜻을 이미 정확히 알고 계셨어요. 분명한 전언을 통해 읽기 모임에 대한 김 목사님의 사랑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제안해서 시작했지만 죄송한 마음도 있죠. 김근주라는 한 인간을 어떤 대표성에 고정해놓은 느낌도 드니까요. 김 목사님이 외연을 확장하는 데 제약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기꺼이 공공재로 자신을 던지겠다고 말씀하셔서 감사했죠. 지금껏 김근주읽기를 진행하며 지키려 애쓴 것은 한 사람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 ‘함께 읽고 쓰고 노는 김근주읽기’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더라고요.

: 김근주읽기는 읽고 쓰고 움직이는 공동체죠. 쓰기가 사람을 정확하게 만들잖아요? 생각을 표현하고 발화하는 순간, 그 사람에게 자기 언어의 책임이 주어지는 셈이니까요. 그렇게 자기 결실을 만들자는 측면에서 쓰기에 주목했고요. 그러고 나서 ‘실천하기’ ‘행동하기’를 떠올렸는데 이광하 목사님이 라임을 맞춰주셨어요.(웃음) 가장 좋은 싸움의 방식은 상대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즐거워야죠. 즐겁게 놀며, 축제처럼 책을 계속 읽으면 제대로 갈 수 있겠다 싶었죠. 김근주읽기는 소진되고 탈진되지 않는, 독려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를 꿈꿔요. 그 걸음에 모두가 기쁘게 함께해 주시고요. 김근주읽기의 최종적 성공이요? 저는 ‘행복한 해체’라고 생각해요.(웃음) 더 이상 우리 모임이 필요 없어진다면 그야말로 완전한 성공이 아닐까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인터뷰 지면을 내어주시니 저희 홍보를 해도 될까요? 4월에 《특강 예레미야》 함께 읽기를 해요. 여러분, 같이해요.

■ 주

1) “정직한 독자라면 저자가 쓴 말을 바르게 읽고 소화하려 애쓸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이란 ‘사람을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떠도는 말, 억측, 예단, 정치적 음해로 한 사람을 재단하지 말자. … ‘김근주 읽기’는 정직하게 그를 함께 읽고 생각하자는 단순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신학자이자 목사, 선생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인 그의 생각과 분투를 함께 들여다보자는 뜻이다.” (본지 온라인판 2022년 10월호(383호) ‘독자의 소리’(‘김근주 읽기’를 함께하자) 참조.)
2) 이 내용은 추후 김근주읽기 뉴스레터(https://maily.so/foucault)에 소개될 예정이다.


진행 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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