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폭력 피해 전문상담가 홍보연 감리교 양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 홍보연 목사는 올초 창립 때부터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원장을 맡았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3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일산 킨텍스홀에서 열린 제50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여 “요즘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여성들의 차별과 아픔에 대해 다시 한 번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고통받은 피해자들을 위한 따뜻한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교계 역시 권력형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운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은 미투운동 이전부터 교계는 이미 목사들이 여성도나 미성년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사건들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터였다. 대표적인 예가 전병욱(전 삼일교회)·문대식(전 늘기쁜감리교회)·이동현(전 라이즈업무브먼트) 목사 사건이지만, 이밖에도 남성 목회자들의 성추행 및 성폭력 보도는 계속 있어 왔다. 최근엔 종교계 미투운동의 맥락에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서울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성폭력 의혹이 폭로됐다. 문제는 교계 성폭력 범죄 역시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전병욱 목사 성폭력 사건 당시 피해자들이 ‘꽃뱀’이나 ‘이단’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반면, 가해자인 전병욱 목사는 교회 재판에서 파면되지 않았고 교회를 개척해 지금도 목회 중이다.

우리 사회에 봇물처럼 터진 미투운동 맥락에서 교회 내 성폭력을 주제로 대한감리회 선교국 양성평등위 공동위원장인 홍보연(54) 목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홍 목사는, 올초 창립 때부터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에서 원장을 맡았다. 신대원 졸업 이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일했으며, 현재 맑은샘교회 목사로 섬기면서 한국영성치유연구소 부소장으로 지속적인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 미국에서 시작한 미투운동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피해자 분들이 엄청난 용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로하는 분들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를 보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의 젠더감수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도요. 우리처럼 여성문제 및 성폭력 관련 활동을 해온 사람들은 그분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치유받을 수 있게 도울 지 애를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미투운동은 이미 종교계로도 확산이 되고 있는데요. 이미 목회자들의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던 한국교회 맥락에서 종교계 미투운동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며칠 전에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어요. ‘교회 안에서 더 폭로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기자가 묻더라고요. 맞는 소린데, 폭로보다도 그 이후가 문제예요. 피해자분들이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느끼면 웬만해선 절대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없어요. 이런 면에서 교회 풍토는 일반 사회보다도 척박합니다. 기자가 미투운동을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요. 어렵게 조성된 이 분위기에서 피해자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노력이 참 많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 피해 사실을 밝혔다가 더 큰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을 텐데요. 1년 전쯤 본지에서 전병욱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2017년 4월호 “전병욱 성범죄 피해자의 고백”). 그분은 온라인상에 고발했다가 큰 상처를 입었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증언을 했습니다.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당장 2016년에 기사화까지 됐던 사건도 정작 교회 안에서는 묻혔어요. 교회 부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는데, 피해자는 현명하게도 피해 다음날 가해자를 고소했고 대법원 재판까지 갔어요. 현재 가해자는 실형을 받고 수감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피해자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후 용기를 내서 스스로 언론사에 제보를 했는데도 조용히 묻혀버린 사건입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상황인데 미투운동이 일어나면서 다시 찾아오셨어요. 교회에서 2차 가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 2차 가해가 보통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피해자들은 다들 알고 있을 거예요. 위 사례 피해자는 부목사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담임목사에게 알렸는데, 담임목사는 ‘해결해줄 테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교회에 가면 피해자를 이상하게 보는 눈길과 분위기를 느꼈고, 어떤 교우에게는 노골적으로 ‘나 같으면 그런 일 당하고 교회 안 나오겠다’라는 말도 들었어요. 알고 보니 교회에서 불륜녀로 소문이 퍼져나갔고, 이 상태에서 담임목사는 계속 고소를 취하하라고, 그래야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답니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가 가해자를 조사해보니 피해자가 당신 한 명이 아닐 거라면서 다른 피해자도 찾아보라고 했다더라고요. 실제 다른 피해자들이 있었고요. 의심 가는 분들을 찾아가 이야기했지만 연루되지 않고 싶다며 입을 다물겠다고 했대요. 이미 교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간접적이지만 뚜렷하게 목격한 다른 피해자들은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지요.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 상황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가해자는 뻔뻔하게 교회에 남고요. 가해자가 담임목사인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 가장 최근의 ‘전문직 성폭력 발생 건수’ 조사를 보면, 종교인이 단연 1위입니다. 교세로 추정해보면 목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수일 텐데, 가장 그러지 말아야 할 종교인, 목사들이 성폭력 범죄자가 되는 건 왜일까요?
1위가 종교인이고, 의사, 예술인, 교수 순입니다. 지금 사회에서 드러나는 그대로예요. 이는 권력 혹은 위계가 얼마나 작동하느냐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의미지요. 권력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을 거느리게 되고, 그 권력자는 마음만 먹으면 추종세력 사이에서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좋은 구조에 놓입니다. 교회가 대표적이지요. 가장 남성 중심적이고, 특히 목사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됩니다. 성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교인들은 목사를 의지하고 믿고 따르고 자주 만나고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목사는 도움을 주는 위치이고요. 또한 성서해석 권한이 목사에게 있고, 교인들은 목사의 성서해석이나 설교에 질문을 품으면 불신앙으로 간주당합니다. 무조건 아멘하고 순종하라는 분위기도 여전히 팽배합니다. 누구도 설교를 자유롭게 비판 못합니다. 그 구조 안에서 권력이 얼마든지 오남용될 수 있어요. 남성 목사가 마음만 먹으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지점들이 아주 많지요. 여기에 성도가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는다면 아무리 잘못된 말이라도 당장 거역할 수 없고요. 이런 권력형,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에서는 언제나 피해자를 길들이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그루밍’이라고 하지요. 자기 행동이 결코 성적 행동이 아니라고 학습시키는 과정입니다. 20년 전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요더 성폭력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요. 어느 순간 피해자가 거부하면 도리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협박의 대상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길들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 과거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일하실 때 성폭력에 관한 지침서를 만드신 것으로 아는데요.
여신협 기독교여성상담소에 있을 때 1998-2005년 사례를 중심으로 지침서를 만들었습니다. 개념, 실태, 유형, 대처, 사례까지 총망라하는 자료인데요. 가해자 대다수는 종교 행위를 빙자하여 폭력을 저지릅니다. 안수, 치유는 기본이고 성교육을 해준다는 명분도 있었어요. 이외에도 여러 목적을 갖다 붙이지요. ‘나는 영적인 아버지다’ ‘내가 하는 행위는 성적인 것이 아니고, 내 앞에서 옷 벗는 건 부끄럽지 않은 거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에서 부끄럽지 않았다’ 식의 말로 길들이기도 하고, 레아와 라헬의 비유도 흔히 들이댑니다. ‘내 아내는 레아고 내 사역을 도와줄 진짜 사랑하는 라헬은 너다’라는 식이지요. 나중에 알고 보면 한 교회에 그런 라헬이 한두 명이 아니죠. 대개는 피해자가 자기 한 사람이 아닌 걸 알게 되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가, 다른 피해자가 또 있음을 알면 그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는 거지요. 

   
▲ "요더 사건을 보면 범죄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20년간 피해자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대신 모두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러싼 교회 관계자들 역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1970년대에 벌어진 요더 성폭력 사건 때와 지금이 거의 변한 게 없어요. 요더 사건을 보면 범죄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20년간 피해자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대신 모두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는 왜 그렇게 했을까’를 시작으로, 어떻게 소문을 막고 가해자를 보호할지 등 자기들끼리 논의하는 동안 피해자는 사라집니다. 요더 사건 당시야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시대 분위기가 없었다 쳐도, 2018년 현재도 여전히 마찬가지예요. 모두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요. 사실은 성폭력 발생 시 이게 젠더문제라는 의식도 별로 없습니다. 개인의 일탈로 보거나, 여성의 처신 문제로 문제를 비틀면 편한 거지요.

― 이 문제를 어떻게 여성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나요? 여성이고 신학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 사안을 젠더 관점에서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저는 중학생 때부터 서원을 하고 신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제가 다니던 교회 교단에 여성 목사가 없었고, 저도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집안에서 혼자 교회를 다녔고, 신학대는 아버지가 보내줄 거 같지 않아서 일반 여대에서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때 여성학 강의를 듣게 되었고, 선배들을 따라 학습 단체에 들어가서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감리교 신대원에 입학했는데, 당시에 여학생들 의식이 상당히 높았어요. 학부 때부터 신학을 하고 신대원에 온 친구들은 기존에 없던 여성신학회와 여학생회를 조직할 정도였지요. 당시엔 지금처럼 전공 공부에만 매진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어서, 전공 외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죠. 교회 성차별에 문제의식을 갖고 교단 내 여성이 총회 총대가 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감리교는 여성 목사 안수를 일찍부터 준 교단이었고요. 감리교회를 바꿔야겠다는 비장한 결의들을 했어요.(웃음) 졸업 논문도 여성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땐 매매춘이라고 불렀는데, 국가폭력에 의한 성매매를 다루면서, 기지촌, 정신대 문제들로 논문을 썼어요. 졸업 후 여신협 회원 활동을 꾸준히 했는데, 거기서 성폭력 워크숍 활동을 했지요. 공부하고 활동해서 결과물까지 내는 프로젝트여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활동했어요. 그 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하는 상담원 교육을 이수했고, 2-3년 자원 활동을 했습니다. 기독교여성상담소 일도 하게 되었고요. 여성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다룰 수밖에 없었죠.

― 목사님도 젠더차별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결혼 때도 남편과 합의하에 언제든 목회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도 저를 언제 목회하게 하나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남편이 먼저 목회를 시작하면서 저도 전도사로 함께했습니다. 감리교 목사가 되는 과정은 좀 독특한데요. 당시에 1년간 서리 전도사를 하면 준회원이 되고, 2년 후에 정회원 되면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지방회에서 1년 서리 파송을 하면 연회에서 서류를 받아줘야 하는데 제 서류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부부 목회를 하지 말라면서요.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었는데, 감독님이 따로 불러서 작은 교회에서 왜 부부 목회를 하냐면서 저에게 사모 역할이나 하라시더라고요. 저는 목사의 부르심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처음부터 전도사로서 남편과 목회를 같이 하면서 목회 훈련을 함께한 건데 말이에요. 그다음에 바뀐 감독님도 서류를 안 받아주고 결국 세 번째 감독님이 받아줬어요. 통상 서리 파송을 받고 1년을 훈련하는데 저는 5년을 하고서 겨우 준회원이 되어 8년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었지요. 남편이 기관으로 가면서 제가 혼자 교회 목회와 기독교상담소 일을 병행했어요. 목회 시작은 고등공민학교 청소년들과 함께였습니다. 학위 과정이지만 야간학교 학생들이었어요. 목회로는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상담소 일은 물론,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연구원 일도 병행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기독교여성상담소 일을 계속 해오셨는데 중간에 그만두신 이유는 뭔가요?
8년을 일했는데, 저를 추스를 필요가 왔어요. 제가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좌절감도 들었고요. 보통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는 그게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가해자는 발뺌하거나 빠져나가고 그 와중에 용기를 냈던 피해자는 결국 숨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저도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싸울 힘이 소진됐지요. 그만두고 한국영성치유연구소에서 기독교 상담을 박사까지 공부했습니다. 한국영성치유연구소는 지금은 많이 소개된 관상기도를 훈련하면서 영성지도를 하고, 개인 상담과 영성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세워진 기관입니다. 그렇게 상담도 배우고 기도도 배우면서 한국샬렘영성훈련원에서 기도 훈련을 더 받았어요. 더불어 침묵기도와 관상기도를 공부하고 훈련했지요. 기도 훈련 후에 돌아보니, 제가 젠더차별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이전에는 운동 차원으로만 접근했던 거 같아요. 굉장히 옳고 마땅한 일이라는 일종의 신념으로 일한 거지요. 그래서 더욱 맹렬하게 하지 못하는 제 성격을 자책했고요. 이후에도 저는 사실 기도만 하고 지내고 싶었는데 최근의 상황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 "기도 훈련 후에 돌아보니, 제가 젠더차별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이전에는 운동 차원으로만 접근했던 거 같아요. 굉장히 옳고 마땅한 일이라는 일종의 신념으로 일한 거지요. 그래서 더욱 맹렬하게 하지 못하는 제 성격을 자책했고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성폭력, 젠더차별 이슈를 다루는 공론회 장소에서 목사님 입장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재작년부터 각 교단에서 성폭력문제가 계속 언론을 통해 드러났잖아요. 물론 그 이전에도 전병욱 목사 사건이 있었지만요. 문대식 목사의 청소년 성폭력 범죄는 심지어 다른 성폭력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도 계속해서 목회를 하고 집회를 인도했던 겁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피해자가 생겼고, 교단 안에 아무도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제보할 기구를 교단 안에 만들라고 요청해왔는데 아직도 안 되고 있어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소환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야기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 2-3년 동안은 스스로 갈등이 많았어요. 그동안 기도로 다스렸던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고, 과거에 부딪혔던 좌절감까지 다시 겪으면서 ‘내가 다시 이 일을 해야 하나’ 계속 되물었습니다. 기독교 밖에서는 그래도 성폭력 논의가 다양해지고 활동하시는 분들도 꽤 있지만 기독교 안에는 아직도 부족하거든요. 또 한 편으로는, 문제는 그대로인데 나몰라라 하고 떠나온 것 아닌가 싶어서 죄책감도 있고요. ‘어떻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변한 게 없을까’ 속상하고 수만 가지 생각이 들어서 나름 이 문제로 고심하고 다시 일하기로 결심했지요.

― 앞으로 교회 성폭력 문제는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요? 가해자가 더 나오지 않도록 가해자를 예방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거에 일하면서 제도만큼이나 개개인 인식 변화가 근원적인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제도가 있어도 개인 인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제대로 영향이 발휘되지 않고, 편법으로 사용되기도 하니까요. 이런 예방교육은 목회 훈련생인 신학교에서부터 있어야 합니다. 현재 목회자는 안수 과정에서 (감리교의 경우) 준회원이 될 때 서류에서 건강검진 및 인성교육에 대한 성격검사 자료를 내도록 하는데, 단순 인성검사뿐 아니라 성에 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성을 어떻게 느끼고 사고하는지, 강박은 없는지, 중독 성향은 없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요. 교회 목사들은 특히 신도들을 바로 대하고 돌보는 사람인데, 자기 돌봄이 없는 사람이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 제도도 계속 정비해야 할 텐데요.
물론 예방교육뿐 아니라 구조적 예방도 필요합니다. 이미 교회 여성단체에서 꾸준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감리교, 기독교장로회(기장) 등 교단의 여성단체나 양성성평등위원회 등에서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성폭력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촉구하였습니다. 이중 예장 통합은 목회자들과 새로 임명되는 항존직 임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 법안이 통과돼서 현재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고요.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노회와 개교회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교단의 남성 총대들이 여전히 성문제를 여성에 국한된 사소한 문제로 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습니다. 감리교회는 아직 교회법으론 안됐지만 여선교회나 여교역자 등 여성단체들이 모이는 곳에서 계속 교육을 이어가려 합니다. 감리교 연수원에서 이미 목회하는 정회원 목사들과 장로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교육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올해부터 요청이 와서 목사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할 텐데 걱정이 되네요. 강의 때 남성 목사님 장로님들 분위기를 아니까요.

― 어떤 분위기 말인가요?
‘왜 남자만 갖고 그러냐’ ‘왜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냐’부터 해서 ‘우리는 아무 힘이 없다’ ‘오히려 장로들 등살에 못 견디겠다’는 흔한 태도들이지요. 성폭력 근절 운동,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한다는 건 그동안 남성 목사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에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교회 민주주의와 연결되지요.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들로서는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설득하고 추슬러야죠. 마음에 부담이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혼자 가기보다는 위원들과 함께 가서 모니터링도 해야죠.(웃음) 한두 시간 교육받는다고 젠더감수성이 생기진 않겠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실제로 교회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교회 성폭력을 다룰 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인 간 일어나는 성폭력과, 목사와 장로 같은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으로요. 교회 안에서는 어떤 문제든 다 벌어질 수 있는데, 호기심이 생기는 나이인 유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인 간 사건은 비교적 해결이 수월합니다. 법적 해결도 훨씬 낫고요. 물론 여기서 교회 공동체와 목회자가 같은 교인인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살필 것인가, 이 사건의 또 다른 상흔을 입는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방관할 수 없어요. (대부분 그렇지만) 억지로 잠잠하게 만들면 가해자와 같이 있을 수 없는 피해자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 간 성폭력의 경우 교회가 이에 대한 대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목회자가 저지른 성폭행은 더 심각한 후유증이 있어요. 목회자에 대한 신뢰, 하나님에 대한 신앙, 교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다 무너지고 수많은 영혼들이 피폐해집니다.

―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보통 목회자가 가해자인 경우 목회자를 치리하는 상위기관인 노회에, 감리교 경우는 연회에 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폭력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둘만 있을 때 벌어지기 때문에 대개는 증거와 증인이 없고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언인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개인이 상위기관에 신고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을 때 즉시, 정말 가깝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정황을 이야기해야 해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당했으며, 내 감정과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서요. 최근 어떤 분은 목사가 자기 딸을 성추행해서 목사에게 직접 항의했더니 목사가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비난을 했어요. 다행히도 장로님들이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목사에게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워낙 평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많이 했던 터라 장로들도 피해자의 편을 들어준 것이지요. 목사가 사과하지 않아서 장로들이 대책 모임을 갖고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어요. 피해자는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심적으로나마 지원한 드문 사례입니다. 현재 각 교단의 노회(혹은 연회)들이 피해자 중심으로 성폭력을 처리할 만한 경험과 의식은 없을지라도 절차상 노회나 연회에 신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믿을 만한 조력자를 찾고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는 전문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아요. 기독교반성폭력센터도 7월 개소 예정입니다. 권력형 성폭력 경우는 특히나 혼자서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대처 요령을 담은 성폭력예방지침서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성경은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해도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교회 성폭력의 발생과 이후 과정은 교회 내 여성의 지위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교회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는,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없는 원인도 큽니다. 피해자(여성) 개인보다 교회, 직장, 단체(조직)의 이미지가 더욱 중요한 거지요. 외경에 수록된 다니엘서 13장을 보면 돈 많은 과부 수산나가 재판관 2명에게 희롱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건이 나옵니다. 두 재판관이 희롱하려 했으나 수산나가 거절하자 간통죄를 뒤집어 씌워 재판에 넘기지요. 당시 여성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으니 여성은 자기 억울함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교회 상황이 썩 다르진 않은 거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어 사건을 해결하고 불의한 재판관은 처형당합니다. 이 말씀도 기자가 다니엘의 영웅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썼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억울한 여인의 음성을 들었다는 점이 정말 중요해요.

― 교회 여성의 젠더 문제제기에 반기를 드는 것은, 비단 남성들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내 권력 이데올로기를 신앙으로 내면화한 여성들도 많은 듯한데요.
이미 남성적 구조를 뿌리 깊이 내면화한 분들이 있습니다. 나름 지도력을 행사하는 여선교회 임원을 대상으로 성폭력 통념들을 설명하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요. 안 받아들이셔요.(웃음) 그래도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시면서, ‘옷 그렇게 입지 말라’ ‘낯선 곳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면서요.
 
― 올해부터 본지에 ‘믿는 페미들의 직설’이라는 연재가 시작됐는데, 남녀 가릴 것 없이 반응이 두 부류로 갈렸습니다. 필요한 담론이라는 쪽과,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지 그런 논의는 무익하다는 쪽으로요. 양쪽 다 신앙을 근거로 드는데, 그렇다면 대체 신앙은 뭘까요?
신앙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어떤 사건이 교회 안에서 발생했을 때 ‘교회에 덕이 안 된다’며 사건을 덮는 경우가 흔하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교회인가’ ‘누가 교회인가’ 묻고 싶어요. 성경은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해도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소자는 연약하고 취약한 사람이에요. 자기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하진 않지요. 정말 취약하고 도움이 절실한 이에게 폭력이 더욱 가해집니다. 넘어질 만한 사람을 골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거예요. 이건 더 악질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자, 연약한 이들을 위해 주님이 오셨다고 믿는다면, 죄인들, 소외된 이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떠들면서, 한 사람의 영혼을 그렇게 피폐하게 하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고 변명하고 발뺌하는 것이 신앙일까요? 신앙은 결국 하나님과 나의 관계이기도 한데, 그게 신앙이라고 말하는 분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는 걸까요? 물론 목사도 한 사람의 인간이니 유혹받을 수 있고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라도 하나님께 묻고 사죄할 수 있어야 신앙인이지요. 제가 볼 때 한국교회의 ‘신앙’은 자기 성찰이 없이, 단지 욕망을 부르짖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미투운동에 동참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교회)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선은 여성운동을 해온 사람이자 한 명의 목사로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혹시 용기 내어 미투운동에 동참하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 일에 함께 동참하는 모든 분들은 단순히 개인 폭로가 아니라, 교회의 폭력적 풍토를 바꿔 나가는 연대의 씨앗을 뿌리는 행동이에요.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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