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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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기억, 여자가 ‘성적 도구’이던 시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서야 대두된 여자들의 저항과 공적 목소리가 ‘새로운’ 것이지. 헐리우드발 미투(MeToo)운동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진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더 이상 ‘가부장적 전제’로 작동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징후이다. 돌이켜 보면, 도대체 언제 여성이 온전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나? 학자들이 말하는 가부장제의 기원이 동서양 할 것 없이 기원전 3천 년쯤부터라 하는데, 그럼 그 이전에 성(性)은 평등했을까?

한때 가모장제가 존재했던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가부장제 이전의 사회는 ‘모계제’(matrilineal)였을 뿐, 여자들이 수장으로 사회구성원들 위에 군림한 역사는 없었다. 전(前)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물려줄 가산도 변변치 않고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신분도 확립되기 전이니 제도적인 성 통제는 드물었을 것이고, 아빠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분명히 알겠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가계는 엄마 라인을 타고 정리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 시절 여자는 적어도 집안 재산으로 여겨지거나 성적 도구로만 응시되는 ‘만행’은 저질러지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굳이 우리가 회귀하여야 할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회였다고 확신하기에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사회는 5천 년 동안의 가부장제 사회이고 그 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자를 출산의 도구, 욕정을 푸는 대상 정도로 여겨 왔다. 아주 오랜 동안 이것이 문화적 ‘당연’(taken-for-granted)이었다.

남자가 욕정의 동물이고 여자가 그 대상물이라고 여겨지는 가부장 사회에서 만약 ‘적법한’ 성관계 이외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전적으로 여자 책임이었다. 여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주체’였던 적이 없었는데도, 자기 의지로 여자의 몸을 범한 남자보다 그걸 방어하지 못한 여자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존재로 응시되다니, 어이없기는 하다. 우리나라 경우도 정숙하지 못한 여자에 대한 일반적 경멸의 의미를 담은 “화냥년”의 유래는, 남자들 사이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쪽의 여자들이란 이유로 중국에 끌려갔다가 제 힘으로 돌아온 사람들(“환향녀”)을 경멸하여 부르던 용어였다.

그녀들을 볼 때마다 자기들의 패배와 수치심이 더 드러났기 때문일까? 잘못한 일 하나 없이 최선을 다해 생존 귀환한 여인들은 남자들의 잘못을 ‘대신’ 다 짊어져야 했다. 하긴, 돌 맞아 죽을 짓을 한 현행범이라고 예수 앞에 끌려왔던 여자도 홀로 그 비난을 다 받았지. ‘상간녀’라는 말은 자고로 그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현장에서 잡았다면서 어찌 여자만 끌고 왔단 말인가. 그날 예수 앞에 그녀를 잡아온 사람들이나 구경꾼들 모두 이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문화적 전제는 작동 방식이 그치고 난 뒤에도 그 관성이 오랜 법이어서, 가부장제가 끝난 오늘날까지도 성폭력이 발생하면 대부분 미처 방어하지 못한, 혹은 유혹의 대상으로 행동한 여자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너의 치마가 짧았겠지, 네가 웃음을 흘리며 여지를 주었겠지, 그도 아니면 ‘너무 늦은 밤에 혼자 돌아다님으로써 범죄 동기를 부여했겠지. 그러니 부모도 교사도 아들 단속보다는 딸 단속을 하는 방향으로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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