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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2018)와 〈오빠생각〉(2015)에 담긴 전쟁과 평화

기사승인 [341호] 2019.03.29  15: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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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1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라라랜드〉(2016)의 감독 데미안 셔젤은 데뷔작 〈위플래쉬〉(2014)의 마지막 시퀀스를 불같은 재즈 연주로 완성했습니다. 독기를 품은 천재 드러머(마일스 텔러)와 광적인 지휘자(J.K. 시몬스)의 애증을 담아낸 연주였는데요. 둘은 결국 피땀이 범벅된 얼굴로 마주보며 웃습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분노와 상처, 용서와 이해가 담겨 있는 장면이었어요. 〈라라랜드〉에서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재즈는 “매 순간 악기들 사이의 충돌과 타협이 만들어내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즉흥 연주인 재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전쟁 중인 상대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대신 리듬과 곡조의 충돌을 선택한 영화를 두어 편 찾아보았습니다.

“싸우고 싶거든 싸워라. 하지만…”
이한 감독의 2015년 영화 〈오빠생각〉에서는 전쟁고아들이 노래를 합니다. 참혹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상렬(임시완) 소위는 후방 부대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부임하는데요. 앵벌이와 좀도둑질을 하던 소년이 불발탄에 희생되는 것을 목격한 뒤 상렬은 합창단을 만들기로 합니다. 아이들의 슬픔을 달래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자신이 인민군가를 불러서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믿는 순이(이레)는 다시는 노래를 하지 않겠다며 입을 떼지 않구요, 순이의 오빠 동구(정준원)와 춘식(탕준상)은 심하게 다툰 후 노래를 멈춥니다. 춘식은 ‘빨갱이’ 동구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와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믿고 있어요.

아이들을 부당하게 전쟁과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악당들에 맞서는 것도 힘이 드는데 아이들끼리도 원수가 된 현실이 괴로운 상렬은 춘식과 동구를 앞에 세워 싸우라고 부추깁니다. 그리고 눈치만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해요. 동구에게는 “대니 보이”를, 춘식에게는 “애니 로리”를요. 먼저 가사나 음이 틀리는 쪽이 지는 싸움이었어요. 시작은 “라”음입니다. 라이언 고슬링의 대사와 〈위플래쉬〉의 연주가 생각났던 것은 바로 이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너 때문에 아비를 잃었다고, 서로 원망하고 증오했던 아이들은 그렇게 노래로 싸우게 되었는데요. 둘이 노려보며 각자 부르는 노래의 화음과 리듬이 기가 막히게 어울립니다.

현란한 편집 없이, 공포와 분노를 담은 눈빛과 목소리가 감동인 이 노래 장면으로, 영화는 제 할 말을 다 해냈어요. 그래서 한상렬의 다음 대사는 차라리 사족이 되었더랍니다. “합창은 서로 다른 노래를 불러서 화음을 만드는 거다. 지금처럼 멋진 노래가 되는 거야. 싸우고 싶으면 싸워. 싸우더라도 화음으로 만들고 노래로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싸움을 하길 바란다.” 이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선한 영화의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고 말했어요. 〈완득이〉(2011)의 감독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증인〉(2018)을 연출했습니다.

“빌어먹을 이데올로기 따위(Fucking Ideology)!”
놀랍게도 이 말은 〈스윙키즈〉의 댄스 공연 제목입니다. 한국전쟁기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 팀 ‘스윙키즈’가 공연을 합니다. 브로드웨이 댄서 출신 미국인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과 북쪽의 러시아 댄스 유학생이었던 인민군 로기수(도경수), 인해전술로 내려온 중공군 샤오팡(김민호), 트럭에 올라탔다가 얼떨결에 포로 신분이 된 북의 민간인 강병삼(오정세), 만주에서 살았던 덕에 4개국어를 하는 양판례(박혜수)가 우여곡절 끝에 한 팀이 되었어요.

포로수용소 소장이 댄스 공연을 지시한 경위에 어떤 철학이나 평화 감수성이 작용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제네바 협약’ 덕에 포로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중국과 북한에서 끌려온 포로들 중 자유송환(원하는 이들만 송환)을 원하는 이들이 생겨났는데요, 전체 송환을 주장하는 급진파 포로들이 이들을 향한 테러와 폭동을 일삼으면서 수용소 내 갈등이 또 다른 ‘전쟁’으로 번지고 있던 중이었죠. 댄스팀은 포로들을 서구 세계의 자유로 ‘중독’시키고 평화로운 그림을 만들어 자신의 업적으로 치장하기 위한 신임 소장의 전략이었습니다.

흑인 장교 잭슨이 팀을 이끌게 된 배경도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멉니다. 소장은 일본에 현지처와 아이를 두고 있는 잭슨에게 공연 후 일본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동기가 있었죠. 정치적으로야 중공군과 인민군, 미군과 남북한의 민간인은 모두 입장이 다르지만 이들은 어쨌든 함께 춤을 춥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설정은 이들이 모두 편견과 차별에 노출된 약자라는 점입니다. 판례가 사는 피난민촌을 찾아간 잭슨이 제 나라에서 흑인은 “존재 자체가 트러블”이라고 말하자, 판례는 “트러블이기로는… 여자가 더 세지. 전쟁 통의 여자.”라고 답합니다. 사실 “Fucking Ideology”를 처음 내뱉은 것은 판례였어요. 이후 판례는 “뭐라 설명할 수 없어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춤은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샤오팡과 강병삼이 빗속에서 댄스로 대화하는 장면을 볼까요?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각자의 막사 앞에서 둘은 마주보며 춤을 춥니다. “어이, 영양실조는 좀 어때?” “괜찮아. 거긴 지낼 만하나?” 멀찍이 앉은 기수가 이들의 춤을 ‘듣고’ 있습니다. 절벽 위에서 기수와 잭슨이 함께 춤추는 장면도 참 좋습니다. 흑인이어서 입성 불가능했던 카네기 홀의 사진을 내보이는 잭슨과 나도 언젠가는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속내를 말하는 인민군 기수. 앙숙처럼 다투던 그들은 여기서 춤으로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스윙키즈〉는 〈과속 스캔들〉(2008)과 〈써니〉(2011)로 유명한 강형철 감독 작품입니다.

최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총과 칼만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호기롭게 등장했지요. 일제 강점기가 배경인 〈자전차왕 엄복동〉(2019) 이야기입니다. 자전차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업가로 배우 이범수가 출연했어요. 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데요, 자전차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외치면서 결론은 왜 ‘총질’이어야 했는지, 이 영화는 전혀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네. 어떤 자전차는, 어떤 신문물은 세상을 바꾸겠지요. 어떤 영화도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건 목청껏 주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스스로도 주제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감당할 의지가 없다면 더욱 그렇죠. 하여 노래와 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총 맞아가며 비장하게 외치는 대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우리는 노래할 수 있고, 우리는 계속 춤을 주겠다고 말해주는 영화들이 반갑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어떤 일이 생기는지,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조용히 청해오지요.

〈오빠생각〉에서 소년들의 노래 대결처럼, 〈스윙키즈〉의 댄스처럼, 다툼이나 이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협상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결론을 이뤄내지 못했다고 해서 회담이 실패인 것도 아니겠지요. 기대했다가 몹시 실망했던, 최근의 남북정세를 떠올립니다. 우리 힘으로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고 함께 출 수 있는 춤이 있을 겁니다. 도보다리 건너고 꽃 피는 봄이 와도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 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작은 믿음과 소망도 그렇습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영화이론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CBS TV 아카데미 ‘숲’에서 강의했다. 영화평론가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공저인 《영화와 사회》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가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최은 goscon@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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