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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성소수자가 있겠냐고요?

기사승인 [343호] 2019.05.27  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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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3호 믿는 '페미'들의 직설]

성소수자에 관한 소문 혹은 주장들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배정을 앞둔 교실에는 소문이 하나 돌기 시작했다. 
“폴짝아, 너 그거 알아? ◯◯여중에 가면 있잖아, 무서운 언니들 진짜 많대. 그리고, 언니들끼리 좋아하고 사귀고 그런대!!”

그 친구는 이후로도 바로 옆에 있는 남중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면 담벼락으로 축구공을 넘겨 보낸다는 이야기, 체육 시간이 끝나면 복도와 계단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교실까지 온다는 이야기, 급식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6학년이었던 나의 뇌리에 남는 것은 ‘무서운 언니들’과 ‘언니들끼리 사귀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와전되고 와전되어 ‘언니들끼리 사귀는 언니들=무서운 언니들’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렸다. 이때가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동성끼리 사랑할 수 있구나’를 인지한 때이자, 동시에 무지가 공포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한 때이다.

당시 나는 이사를 하면서 내 상상 속 무서운 언니들이 있는 여중이 아니라 남녀공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무서운 언니들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여자와 여자가 연애하는 것이란 초등학교 때 한 번씩 나를 공포에 밀어 넣던 ‘빨간 마스크’나 ‘물갈이’(물갈이는 가장 센 일진들이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세대교체를 한다는 소문이었다)처럼 소문만 무성하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21살에 혼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오후 일정을 함께하게 된 분이 “저는 양성애자에요”라며 시작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 동성끼리 사랑하는 게 이상하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일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청난 정보나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는 사람은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동아리 선배들의 의견은 달랐다. 동아리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당시 리더였던 분이 정색을 하면서 “동성애 그거 병이고 죄야. 그 사람들 다 회개하고 치료받게 해야 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분은 지금은 동성애를 더 이상 죄와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창세기나 로마서를 읽으면 꼭 그렇게 ‘동성애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른다’면서 역정을 내거나 ‘동성애=죄’라는 주장이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논리라도 되는 것처럼 설명했다. 지금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교회와 동아리 선배의 의견이 당시에 신앙생활을 막 시작한 나에게는 ‘기독교는 당연히 성소수자를 싫어하는구나’로 받아들여졌고, 개신교 신앙을 갖기로 한 이상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라는 나의 입장과 ‘죄’라는 교회의 입장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존재는 동의하지만 내 가족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도였다.

당시에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 입장은 시혜적이고 혐오적이었다. 이러한 내 입장을 바꾸는 데는 다민족의 무슬림들과 관계 맺었던 경험과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문화와 타종교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른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경우 그 다양성이 삶과 사회를 다채롭게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페미니스트가 된 이후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어떤 방식으로 다양성을 훼손해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중심주의만큼이나 이성애중심주의가 사회의 많은 정상성을 정의하고 있음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가, 목사가, 리더가 말하는 것이 늘 진리이자 정답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내 의견과 다른 그들의 의견에 지나치게 많은 권위를 실어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가족이 아니었으면 싶었던 이들이 비로소 ‘나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 2018년 9월 8일 열렸던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사진: 폴짝 제공)

일방적 혐오와 폭력을 행하는 기독교인들 

작년 9월 인천에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기뻤고, 그 시작의 발걸음을 내디딘 이들에게 고마웠다. 축제 당일인 9월 8일 광장에서는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본적 없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혐오를 선동하는 개신교인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일방적인 폭력을 퍼부은 것이다. 언어적인 폭력뿐 아니라 물리적인 폭력을 가했다. 다양한 형태의 일방적인 폭력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동안 참가자들은 경찰에게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오히려 보호를 명목으로 광장 한쪽에 갇혀 있어야 했다. 오랜 시간 기다린 후 행진을 할 때 역시 폭력은 계속되었고, 내가 들고 있던 깃발은 뜯기고 깃대는 부러졌다. 행진을 마치고 한참이 지나서야 팔에 몇 군데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9월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에게는 일상적인 공간 중 하나였던 지하철이 무서웠다. 특히,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탑승할 때면 몇 번이고 큰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날 광장에서 폭력을 행했던 이들이 같은 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가방에 달고 다녔던 10여 개의 배지들 때문에 내가 혐오 세력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긴장이 심했던 축제 직후에는 지하철에서 눈을 감거나 졸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배지들을 빼지는 않았다. 같은 공간에 혹시 나와 같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가방에 달린 배지를 보며 안도하는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른 이에게 나는 안전한 사람임을,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9월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방식으로, 또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를 이어갔다.

나는 지난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교회를 다니는 여성 성소수자 6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늘 성소수자들을 반대한다는 혐오 세력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성소수자들의 목소리, 그중에서도 교회 안에 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그들을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나에게 돌아왔던 반응의 대부분은 “교회에 성소수자가 있다고?”였다. 사람들에게 교회는 성소수자를 반대하고 미워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성소수자가 남아 있을 수가 있느냐고, 당연히 교회를 떠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교회가 죄를, 반대를, 혐오를 이야기하는 사이에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큰 목적이나 사명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글의 유일한 목적은 그들을 열렬하게 편들고 싶다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고, 나는 그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에 임하기를
내가 인터뷰했던 6명은 별나고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등부 교사를 하고, 찬양팀과 성가대를 하고, 소그룹에 나오고, 목회를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직간접적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각자의 역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웃거나 울면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고백했다.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힘들 때 언제나 옆에 계셨던 하나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처음으로 자신을 만나준 하나님, 지금은 조금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다시 가깝게 지내고 싶은 하나님….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안전한 교회를 꿈꿨다. 

나와 ‘믿는 페미’도 그들과 같은 교회를 꿈꾼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정죄당하지 않는 교회, 성경을 폭력과 혐오의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 교회,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는 교회,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숨죽이지 않고, 내가 나일 수 있는 교회. 이미 왔지만 또 아직 오지 않은 그 나라가 우리의 교회에 임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5월 31일, 6월 1일에 진행된다. 믿는 페미는 5월 31일(금) 핑크닷 행사에서 ‘마주보는 축복식’이라는 주제로 부스를 운영한다. 

*〈믿는 ‘페미’들의 직설〉은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님들과 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폴짝(필명)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아동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여성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전공보다 ‘캠퍼스와 세상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더 열심히 했지만 캠퍼스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성평등 없이는 하나님 나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장래희망은 ‘이야기 수집가’다. 

폴짝 goscon@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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