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호 독서일기] 오수경의 독서 일기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희정 지음 / 오월의봄 펴냄 

우리 옆에 퀴어가 ‘함께’ 살고 있다
2019년 11월 9일, 레즈비언 회사원 김규진 씨는 동성 애인과 결혼했다. 물론 그가 결혼을 한다 해도 ‘혼인 신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동성혼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굳이 결혼식을 선택했을까. “일반 시민사회에는 법적으로 보장받지 않은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는 일반 시민이고, 자기 실명을 걸고 의견을 내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일상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우선 자신의 결혼 계획을 회사에 알린 후 결혼 휴가와 경조금을 신청했다. 회사는 그 신청을 승인했다(외국계 회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이성애 커플이 그러하듯 ‘스.드.메’를 고민하고, 웨딩 촬영을 하고, 평범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대개의 예비부부가 그러하듯 이른바 ‘청첩장 모임’을 통해 지인들의 축복도 받았다. 모든 과정이 지극히 평범했다. 그들이 동성 커플인 것만 빼면.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과 제도가 자신에게는 존재를 건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도 그는 슬기롭고 유쾌하게 인륜지대사를 치렀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옆에 퀴어가 함께 살고 있다’는 일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어떤 이는 이런 김규진 씨의 일상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신앙이나 관습에 따라 자신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내 눈에 안 보이고 조용히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혐오하는 것과, 혐오하지는 않지만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같다. 둘 다 성소수자를 ‘인간’ 혹은 ‘시민’으로 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는 모든 순간: 차별
성소수자는 죄인이 아니라 인간이고 시민이며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들이 인간이고 시민이라는 건, 사회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소수자는 매일 우리 옆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매일 가는 편의점 알바 청년일 수도 있고, 아까 통화한 콜센터 직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난주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린 성도일 수 있고, 직장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동료일 수 있다.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런 존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퀴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게 바로 차별이죠.” 성소수자 당사자의 말이다.

입장 바꿔 성소수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떤 나라에서 이성애자는 연애는 할 수 있지만(이것도 못 하게 막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결혼은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한다면 그 법은 합당할까? 이성애자라서 취업을 못 하고, 취업했다 하더라도 이성애자인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해고를 당한다면 어떨까? 그 ‘어떤 나라’인 한국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일이 이와 같다.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혐오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고 인간/시민으로 승인되지 않는 모든 순간이 이미 차별이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는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이 지배적인 사회의 경계 바깥에서 차별당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르포다. 20대와 30대 성소수자 스무 명을 인터뷰한 기록노동자 희정은 ‘노동’이라는 키워드로 그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저자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이들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마늘은 임용 고시를 준비하는 중산층 가정의 장남, 우연은 기독교 신자이자 초등학교 교사, 하늘은 중소기업 정규직, 정현은 사무 보조, 채연은 제조업체 생산직, 규원은 편의점 알바…. 성 정체성만큼이나 하는 일도 다양하다. 이들이 사회 속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이성애자라는 역할극을 하기에 가능하다. ‘여자여야’ 채용되고,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무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보편’은 언제든 밝혀지면 사회 구성원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될 가능성이 있는 불안정한 보편이다. 책은 이들의 이야기를 사려 깊게 전달하는 한편, 곳곳에 다양한 성 정체성에 관한 개념 정리, 노동권이나 건강권 등 성소수자들이 침해당하는 제도적 차별에 관한 통계를 제공하여 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을 환기한다.

성소수자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일상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각종 불평등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세상에 성소수자이기만 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콜센터 직원인 마늘이 겪는 일상은,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꾸밈 노동’을 강요당하고, ‘어린 여자’라서 무시당하는 여성 성소수자의 현실은,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 성차별적 상황과도 연결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질이 낮고 불안정한 노동을 해야 하는 성소수자 청년의 얼굴은 모든 청년의 얼굴이기도 하다. 즉, 성소수자를 노동자로 소환하는 일은 별스러운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바로 우리, 우리 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누군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음란하고 문란한 영’을 땅의 존재로 소환하여 우리 옆에 앉힌다. 우리 옆에서 매일 노동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인간/시민 말이다. 그 시민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내한 공연을 한 록그룹 ‘U2’는 공연 중간에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모두가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아마 많은 이가 이 문장에 위로를 받았으리라. 종교는 무엇을 하고 있나? 복음주의, 하나님나라…. 지금의 나를 형성한 신앙적 가치들이 내 옆의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걸 막아내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믿는데 눈앞에 있는 사람을 ‘없는’ 존재로 여긴다면 나는 이 신앙 안에서 어떤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여기,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 ‘오수경의 독서 일기’는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지면을 빛내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독서 일기’는 일부 필자가 바뀌어 계속 연재합니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노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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