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박용희의 독서일기]

   
▲ 피에르 바야르 지음 /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펴냄 / 2008년

책 한 권이 만들어져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동에 비유하자면 팀플레이가 중요한 농구라고나 할까. 경기는 작가의 손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손을 떠난 책은 디자이너, 편집자가 패스를 주고받으며 하프라인을 통과한다.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다양한 전술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종이를 뭘 쓸지, 목차는 어떻게 구성할지 등등. 다음은 마케터의 몫이다. 마케터의 기술이 들어가면 책은 필요한 독자를 향해, 골을 향해 전달된다. 가끔 적절한 드리블과 정확한 슛으로 독자의 림을 정확히 관통하는 경우도 있다. 아쉽게 빗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허공을 가르는 실속 없는 슛이 되기도 한다. 준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역시 강력한 수비수의 방해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슛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1-2주 사이에 결정이 난다. 특별히 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책은 대체로 골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독자의 손에 전해지기도 전에 판매대에서 내려오고, 서가에 꽂히며, 반품되어 창고로 돌아간다. 경기는 만만치 않다.   

짜릿한 ‘책의 귀환’
종종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다. 다시 슛 찬스를 얻는 경우다. 농구로 비유하자면, 리바운드라고 한다.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내 골을 넣는다면 (상대의 공격 기회를 빼앗아) 두 골의 효과가 있기에,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 방이 되기도 한다. 출판에도 이런 리바운드가 종종 일어난다. 일전에 죠이북스에서 판매 부진을 이유로 《십자가와 구원의 문화적 이해》(조엘 B. 그린, 마크 베이커 지음)를 재정가도서로 판매한 적이 있다. 재정가란 말 그대로 정가를 다시 책정하는 것으로, 주로 판매가 부진한 도서의 정가를 다시 책정해 (사실상 할인해) 판매한다. 재정가로 등록된 수많은 책 중에 유독 이 책을 눈여겨 본 한 독자가 글을 올렸다. “이 좋은 책이 재정가가 되다니!” 

이 글 하나가 계기가 되어 책 좀 읽는다는 독자들은 왠지 그 책을 사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게 되었고, 출판사의 기대를 훨씬 웃도는 결과를 얻었다. 최근 서울 중랑구에 있는 기독교백화점 주인의 눈에 띄어 집중적으로 소개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빌헬무스 아 브라켈 지음)는 그곳을 통해서만 50세트 가까이 판매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총 4권 세트의 정가는 18만 원이었다.) 조용히 사라질 수 있었던 책이 이렇게 독자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보는 일은 의외의 순간에 터지는 골만큼이나 짜릿하다. 

책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순간을 더 자주 경험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에 관한 이야기는 의외로 제한적이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은 한두 건의 전문가 리뷰와 소수의 애독자 리뷰를 제외하면, 그 이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꽤 책을 읽는다는 분들도 “제가 감히 어떻게 리뷰를 하나요”라며 발을 뺀다. ‘감히’라는 수식어가 독자들의 이야기를 막고 있는 것이다. 

책은 꼭 ‘완독’해야 할까?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독서의 금기를 언급한다. 어떤 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완독’해야 하고, 그 책에 대해 ‘정확히’ 말해야 한다고 우리도 모르게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금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위선과 거짓을 낳는다고 신랄하게 고발한다. 대체 ‘책을 읽는다는 것인 무엇인지, 완전히 읽는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심지어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 우리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누군가와 열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화 상대 역시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책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 뿌리 깊은 변화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책은 저자에게서 시작되지만, 독자의 손에 들려 읽히는 순간 독자의 것이 된다. 독자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굳이 뭔가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 권의 책으로 열 가지, 백 가지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골의 여부를 떠나 경기 자체가 흥미로워야 관중도 모이는 법이다. 

얼마 전부터 용서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기독 출판물 중에 눈에 띄는 신간을 골라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최근 타개한 젊은 복음주의 저술가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다시 성경으로》, 에라스무스와 도서출판100이 함께 기획한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로완 윌리엄스의 신간 《루미나리스》, 동방 정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 알렉산더 슈메만의 《우리 아버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톰 라이트의 《바울 평전》, ‘시선’이라는 찬양으로 널리 알려진 김명선의 《사랑이 남긴 하루》 등이 소개를 통해 판매로 이어졌다. 이 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책도 있고, 중요한 부분을 훑어가며 읽은 책도 있다. 어떤 책은 본문을 전혀 읽지 못했지만 편집자를 통해 책의 맥락을 충분히 소개받은 책도 있다. 어쨌든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얹어서 나는 지인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제안한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채널에서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좋은 조짐이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둘 쌓이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게는 책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박용희
부천시 역곡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운영한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온갖 작당을 하며 산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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