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호 에디터가 고른 책]

성서를 열다 / 토마스 머튼 지음 / 정다운 옮김 / 비아 펴냄 / 13,000원<br>
성서를 열다 / 토마스 머튼 지음 / 정다운 옮김 / 비아 펴냄 / 13,000원

‘은둔하는 수도자, 문필가, 활동하는 예언자’(키스 제임스, 《토마스 머튼》)였던 토마스 머튼이 쓴 이 책은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 논한다. 단순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성서를 여는 그 사람 자신과, 성서의 세계를 열어젖힐 때 발생하는 ‘위험’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책이다.

‘성서는 어떤 책인가?’ ‘성서를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성서에 들어가는가?’ ‘성서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성서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성서에서 무엇이 열리는가?’ 각 장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성서 읽기’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씩 던지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볍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묵직하고 심오하게 다가오는 물음들이다. 이 물음들 앞에서 진지하고 정직한 태도로 성서를 대해야 한다는 점이, 이 책에서 머튼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아닐까.

“정직하게 성서를 읽으려면 온갖 공식 입장들 뒤로 숨지 않아야 합니다. 종교적 입장이든, 문화적 입장이든, 성서를 옹호하든 반대하든 그 입장을 핑계로 나의 입장을 견고히 해서는 안 됩니다. 성서는 온갖 신화와 미신, 종교적 신화와 반종교적 신화, 유신론적 신화와 무신론적 신화, 과학적 미신과 반과학적 미신에 에워싸여 있으며, 현대 독자들은 의식적이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성서를 열기도 전 이미 그 긴장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성서를 읽고 설교 말씀에 귀 기울여온 그리스도인이라면 익숙한 텍스트가 갖는 함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서적을 읽다가도 낯익은 구절과 맞닥뜨리면, 해당 구절을 건너뛰고 바로 다음 글로 넘어가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텍스트 자체의 익숙함에 숨지 않고 성서의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낯섦에 자신을 열어젖히라고 말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머튼이 인용하는 꽤 많은 성서 구절을 건너뛰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히는 나 자신을 보며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자극이 누구보다 필요한 독자는, 성서를 굳어진 태도로 읽어온 탓에 읽기의 긴장을 놓쳐버린 그리스도인이겠다.

성서를 진지하게 마주한 사례로 언급되는 파졸리니, 에리히 프롬, 윌리엄 포크너의 경우나, 성서와 동양 경전의 비교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부록인 로완 윌리엄스의 해설(말, 전쟁, 그리고 침묵 – 오늘날 토마스 머튼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은 토마스 머튼이라는 인물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고 그의 저작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된다.

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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